Shade Tree. 이병호가 이번 전시의 주제로 설정한 이 말은 대략 그림자 나무 내지는 나무 그림자 정도를 의미할 것이다. 이 가운데 그 의미의 울림이 나무 그림자보다는 그림자 나무가 더 크게 와 닿는다. 나무 그림자가 단순한 사실과 현상을 의미한다면 그림자 나무는 나무 자체에 일종의 유기적이고 상징적인 메타포를 덧입힌 시적 발상이며 시적 번역이랄 만하다. 여하튼 이 주제를 매개로 작가는 오래된 옛 집을 재현하고 재구성한다. 그 집에는 아마도 크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나무가 있었을 것이고, 작가는 그림자가 실재를 자기 속에 싸안는 것처럼 그 그림자(의식의 그림자? 무의식?)에 파묻힌 옛집을, 자신의 유년시절을, 존재의 원형을 회상하고 싶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회상, 기억, 환기와 같은 단어들은 그 실체가 애매한 편이다. 상당할 정도로 그 의미가 고정되지 않거나 소실된 부분이 있기 마련이며, 그 빈 부분을 저마다의 의식으로 채우도록 종용하는 암시적 공간이 특유의 분위기며 아우라를 발한다.

공교롭게도 작가가 전시하는 공간은 원래 이층 양옥집을 개조한 것이기에 이처럼 옛집을 추억하고 재구성하기에 적격이다. 아마도 공간을 먼저 본 연후에 주제를 떠올렸을 것이다. 여하튼 장소특정성을 작업의 핵심요소로 끌어들이면서 전시공간을 옛집으로 재구성했고, 그 옛집에 옛 사람들이 서성거리게 했고, 옛 사람들의 흔적이 머물게 했다. 주지하다시피 흔적은 부재하는 것들을 존재의 층위로 불러내는, 어쩌면 불가능하고 불완전한 기획이다. 부재하는 것들을 현존시키는 것, 저마다의 부재(이미 과거지사가 된 자기, 그래서 없는 자기)와 대면하도록 제안하는 것, 부재와 존재와의 미묘한 경계 위로 초대하는 것, 그렇게 그 비정상적 현존이 불러일으키는 시적 감동을 공유하는 것이 작업의 관건이다.
이런 시적 감동을 공유하기 위해 작가는 존재의 흔적이 될 만한 단서들을 소재로서 끌어들인다. 색 바랜 흑백사진들을 불투명한 간유리 속에 가둔다. 이렇게 가둬진 사진 속 인물들은 그 실체가 선뜻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희뿌연 간유리는 의식에 덧입혀진 일종의 오물이며 오점이다. 나는 그 의식의 오물이며 오점을 통해서만 겨우 무의식의 실체와 대면할 수가 있다. 자신이 자신의 흔적과 대면한다는 것, 의식적 자기가 무의식적 자기와 마주한다는 것, 존재가 부재와 만나진다는 것은 분명 존재론적 사건이다. 그리고 작가는 희뿌연 간유리로 사방이 막힌 상자 속에 사람 형상을 들여다 놓는다. 간유리가 사람 형상을 불분명하게 하면서 오히려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부재가 부재로서 산화하는 대신, 부재에 물적 실체감을 부여한 작가의 감각적 아이러니(불투명함으로 인해 오히려 생동감이 느껴지는)가 돋보인다.

이 집에는 지하실이 있다. 작가는 그 지하공간을 무슨 유년시절의 원형처럼, 존재의 모태처럼 꾸민다. 칠흑 같이 어두운 자궁 속에 작가는 늙은 인형을 들여다 놓는다. 늙은 인형은 작가 자신의 압축된 삶의 표상이며 시간의 표상이다. 지하공간은 무슨 무의식으로 건너가는 관문 같고, 그 어둑한 층계 아래서 저마다의 늙은 존재며 원형과 만나지게 한다. 모든 존재는 진즉에 이미 늙었는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이미 늙어버린 인형에서 작가는 존재의 부조리를, 일종의 그로테스크리얼리즘을 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