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관념이 아니라면, 모든 것은 이미 자연 속에 들어있었다. 혼돈과 질서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엄정한 수학과 수열마저도. 자연 속에는 이런 수학과 수열이 만들어준 문양과 패턴이 있다. 정형의 패턴이 있는가 하면, 비정형의 얼룩이 있고, 정형과 비정형이 서로 내포하는 유기적인 카오스며 종잡을 수 없는 프랙털이 있다.
그 문양과 패턴들이 잠자리 날개 속에 숨어있었다. 모든 것은 이 날개 속의 문양과 패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니면 그저 우연하게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정경희가 잠자리 날개가 만들어준 문양과 패턴에 주목했다는 사실이며, 그로부터 그림의 물길을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에게 잠자리 날개는 정작 문양과 패턴으로서보다는, 그러니까 수학과 수열의 표상 내지 메타포로서보다는 기억의 실마리로서 더 살갑게 와 닿았다. 아마도 잠자리 날개의 꿈꾸듯 하늘거리는 투명한 날갯짓이나 규칙적인 듯 불규칙하게 뻗어나가면서 확장되는 맥에, 그 맥이 떠올려주는 정서적 환기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자라나는 기억을 그리기 시작했다.
기억은 결코 기억의 원형에 정박되지가 않는다. 현재의 상황논리에 따라 기억은 쉽게 변형되고 변태되고 변주된다. 기억을 위한 처음의 계기는 말 그대로 기억의 씨앗일 뿐, 일단 싹이 트고 난 연후에는 현재의 상황논리에 의해 그 형태가 영향을 받고 그 의미가 결정된다. 그렇게 기억은 자라면서 변형되고 부풀려지고 확장된다. 그렇게 잠자리 날개로부터 시작된 기억은 자라면서 사슴의 뿔로 변형되고, 존재의 그림자로 부풀려지고, 인간관계의 네트워크로 확장된다. 꿈꾸듯 아롱거리면서, 비현실적인 듯 가물거리면서 맺혔다가 풀어지고 쏠리면서 흩어지고 또렷하다가 흐릿해진다. 그렇게 작가는 기억의 실마리며 맥이며 망을 그렸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얽히고 풀리는, 맺히고 트이는 저마다의 기억 앞에 서게 만든다.

작가는 그렇게 기억의 실마리며 망을 그리다가 마침내 기억을 경작하기에 이른다. 먼저 잡풀을 뽑아내고 돌을 골라내 옥토를 만든다. 그리고 풀을 심는데, 잠자리 날개의 문양이며 패턴을 따라서 풀을 심는다. 이렇게 풀 잠자리 날개 밭이 조성되면 작물을 키우듯 밭을 돌본다. 그렇게 풀밭은 자란다. 풀밭과 함께 다른 풀들도 자라 마침내 잠자리 날개 문양이며 패턴의 경계가 지워질 만큼 무성해지고, 시들해지고, 최소한의 흔적으로만 남겨진다. 그리고 종래에는 그 흔적마저도 자연 속으로 완전하게 흡수될 것이다. 여기서 기억을 경작하는 작가의 행위는 생과 사가 순환되는 자연의 섭리를 체득하는 과정이며, 기억의 생리를 자연의 섭리에 일치시키는 과정이다. 자연처럼 기억도 생성되고 또렷해지고 흐릿해지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흔적의 뒤편으로 사라져버린다. 기억은 어쩌면 기억의 원천으로부터 까마득해진, 그래서 기억 자체와는 상관없는 순전한 흔적일지도 모른다. 기억은 복원이 아니라 순수한 재구성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기억에 천착한다는 것은 사실은 흔적에, 부재에 투신하는 행위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작가는 기억을 경작하는 과정이며 행위를 매개로 기억의 생태학으로 부를 만한 지경을 열어 놓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기억을 뜨개질한다. 한 올 한 올 뜨개질하는 손길 위로 꿈꾸듯 기억이 자란다. 잠자리 날개로부터 시작된 기억이 사슴의 뿔로 변형되고 존재의 그림자로 변주된다. 그렇게 기억의 망은 무슨 담쟁이 넝쿨처럼 이곳에서 저곳으로 정처 없이 옮겨 다니면서 벽면 위로 증식되고 공간 속으로 확장된다. 그래서 종래에는 공간 자체를 기억의 방이며 회상의 방, 의식과 무의식이 때로 치밀하게 그리고 더러 느슨하게 교직되는 존재의 방으로 만들어 놓는다. 기억을 경작하는 행위(퍼포먼스)가 기억의 생태학을 예시해주고 있다면, 이처럼 기억을 뜨개질하는 행위가 촉각적인 기억을 떠올려준다.

작가에게 기억은 흐릿하고 또렷한 시각정보로(기억의 이미지), 자연처럼 생성되고 소멸되고 순환하는 과정으로(생태적인 기억), 그리고 부드럽고 우호적이고 아픈 경험으로(촉각적인 기억) 되살아난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기억을 자라나는 것으로 보는데, 이처럼 기억을 재현하는 다른 형식의 지점들이 기억의 정처 없는 성질에 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기억은 웃자랄 것이고, 또 다른 형식으로 그렇게 웃자란 기억을 붙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