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는 오랫동안 패션 디자이너로 일을 하다가 화가로 전업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우드락을 이용하여 조성한 두툼한 바탕에 금박과 은박, 반짝이와 가짜 보석 등, 다양한 소품을 사용하여 화사한 장식적 효과가 두드러지는 작품들은 그녀 안에 아직도 남아있는 ‘패션 유전자’에서 기인한 것이다. 미술은 원래 장식이었고, 앙리 마티스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현대미술에 와서도 장식은 살아남았다. 정미의 작품에서 장식성은 그녀가 국내외에서 수집해 왔던 생활 소품들에 우연찮게 많이 발견되는 동물 문양, 그리고 해골과 사과 같이 유행하는 디자인 쪽에서 끌어온 소재들, 그리고 작은 작품들을 모아서 설치형식으로 전시하는 방식에서도 발견된다. 2009년에 열린 [소울 메이트] 전은 평생의 ‘소울 메이트’를 찾는 첫 번째 발걸음이 되었다. 개 또는 말같이 보이는 동물이 어디론가 달려가거나 날개를 달고 하늘로 향한다. 디자이너, 또는 주부로서의 일은 그녀에게 항상적인 일상의 삶을 유지시켜 주었지만, 직장 동료와도 가족과도 다르게 끝까지 자신과 함께 할 ‘소울 메이트’를 찾아 탈주하는 일은 뛰어오르는 말과 같은 도약을 필요로 했다.
첫 개인전에서는 말 뿐 아니라, 까치와 호랑이 같은 전통적인 소재부터, 부엉이, 고양이, 기린 등이 구체적인 디테일을 재현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난 낙서화 형식으로 자유분방하게 나타난다. 동물 도상이 가지는 상징성은 민화적 전통부터 현대적 패션까지 이른다. 작품에는 상상과 재미가 어우러진 이야기가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글을 써 넣기도 한다. 작품에 새겨진 글은 그림일기 같은 내용부터 간절한 염원을 담은 불교의 사경, 팝송 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글과 그림이 어우러지는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동경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 [커넥션](2010)은 수 백 개의 작은 작품들을 이어서 그 관계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이야기를 중시하는 태도는 현실의 단편이나 관념이 순간적으로 고정된 것일 뿐인 완전한 구상화도 완전한 추상화도 거부하게 했다. 의인화된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는 동물은 서사를 시작하고 이끄는 매개체가 된다.
잊고 살기 쉽지만, 인간 역시 동물이다. 생물학자 R. 도킨스는 모든 유기체를 유전자를 영속시키는 매개체로 간주한다. 동물이나 인간은 유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일시적인 ‘생존 기계’라는 점에서 질적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인간성에 붙어 다니는 동물성은 상상력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한다. A. 쇼파르는 [철학자들의 동물원]에서 가축, 야생동물, 괴물, 또는 만들어진 동물들로 크게 분류되는 범주들이, 동물이라는 지시대상에 대한 세 가지 측면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그것은 길들임을 통한 정복의지, 짐승 같은 성격이나 야만성에 대한 두려움, 정체성의 혼합과 상실에 대한 강박관념 등이다. 아담을 꼬셔서 선악과를 따먹게 한 뱀을 비롯하여, 인간이라는 동일성의 타자로 자리매김 된 동물은 인간 상상력의 총아인 신화 또는 종교의 시작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로 시작된다. 쇼파르는 [리트레 사전]을 인용하면서, ‘동물’이나 ‘거칢과 난폭함’, ‘짐승’이나 ‘무능, 무지, 이성의 부재’, ‘야수’나 ‘사나운 성급함과 제멋대로의 방종과 함께 맹목적인 잔인성’ 등을 열거한다. 반면 정미의 작품 속 동물은 동화 속 그것처럼 긍정적으로 변형되어 있다. 동물의 낯섦은 인간 질서를 소격시키는 신선한 충격과 매개로 등장하는 것이다. 동물과 인간을 일체화시키는 심적 과정을 통해, 질곡의 현실로부터 탈주하는 변신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원시의 토테미즘 이래, 지배적 질서에 의해 억압되었던 이질적인 환상의 전통에 합류한다.
정미의 작품에서 동물과 함께 많이 등장하는 도상은 해골과 사과이다. 두 도상은 2012년 열린 3회 개인전 [메이크 업] 전에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메이크 업의 본질을 ‘바탕이 해골이고, 사과로 완성 된다’고 말하는 정미의 관점은 패션 디자이너만이 가능한 통찰일 듯하다. 크고 비쩍 마른, 쿨 한 모델들이 지배하는 패션계는 시각중심주의가 낳은 기형적인 규범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골’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해골 그자체가 아니라, 탐스러운 사과 같은 이미지일 것이다. 요컨대, 패션을 통해 해골은 사과가 된다. 섹스어필을 향한, 패션에 깔려 있는 성적 지향성은 죽음과 에로티즘을 연결시킨다. 정미의 작품에서 해골은 얼마 전에 타계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인 알렉산더 매퀸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매퀸의 디자인에는 해골이 많이 등장한다. 작품 [메이크 업](2011)에는 해골을 들고 있는 희미한 유령 같은 이가 서있고, 마치 조서와도 같은 글자들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2011년에 제작된 [메이크 업] 시리즈에는 해골과 사과의 도상이 대세이다. 사과 또한 한 시대의 획을 긋고 타계한 첨단 IT산업의 선구자를 떠오르게 하는 도상이다.
첫 개인전에서는 말 뿐 아니라, 까치와 호랑이 같은 전통적인 소재부터, 부엉이, 고양이, 기린 등이 구체적인 디테일을 재현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난 낙서화 형식으로 자유분방하게 나타난다. 동물 도상이 가지는 상징성은 민화적 전통부터 현대적 패션까지 이른다. 작품에는 상상과 재미가 어우러진 이야기가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글을 써 넣기도 한다. 작품에 새겨진 글은 그림일기 같은 내용부터 간절한 염원을 담은 불교의 사경, 팝송 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글과 그림이 어우러지는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동경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 [커넥션](2010)은 수 백 개의 작은 작품들을 이어서 그 관계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이야기를 중시하는 태도는 현실의 단편이나 관념이 순간적으로 고정된 것일 뿐인 완전한 구상화도 완전한 추상화도 거부하게 했다. 의인화된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는 동물은 서사를 시작하고 이끄는 매개체가 된다.
잊고 살기 쉽지만, 인간 역시 동물이다. 생물학자 R. 도킨스는 모든 유기체를 유전자를 영속시키는 매개체로 간주한다. 동물이나 인간은 유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일시적인 ‘생존 기계’라는 점에서 질적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인간성에 붙어 다니는 동물성은 상상력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한다. A. 쇼파르는 [철학자들의 동물원]에서 가축, 야생동물, 괴물, 또는 만들어진 동물들로 크게 분류되는 범주들이, 동물이라는 지시대상에 대한 세 가지 측면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그것은 길들임을 통한 정복의지, 짐승 같은 성격이나 야만성에 대한 두려움, 정체성의 혼합과 상실에 대한 강박관념 등이다. 아담을 꼬셔서 선악과를 따먹게 한 뱀을 비롯하여, 인간이라는 동일성의 타자로 자리매김 된 동물은 인간 상상력의 총아인 신화 또는 종교의 시작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로 시작된다. 쇼파르는 [리트레 사전]을 인용하면서, ‘동물’이나 ‘거칢과 난폭함’, ‘짐승’이나 ‘무능, 무지, 이성의 부재’, ‘야수’나 ‘사나운 성급함과 제멋대로의 방종과 함께 맹목적인 잔인성’ 등을 열거한다. 반면 정미의 작품 속 동물은 동화 속 그것처럼 긍정적으로 변형되어 있다. 동물의 낯섦은 인간 질서를 소격시키는 신선한 충격과 매개로 등장하는 것이다. 동물과 인간을 일체화시키는 심적 과정을 통해, 질곡의 현실로부터 탈주하는 변신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원시의 토테미즘 이래, 지배적 질서에 의해 억압되었던 이질적인 환상의 전통에 합류한다.
정미의 작품에서 동물과 함께 많이 등장하는 도상은 해골과 사과이다. 두 도상은 2012년 열린 3회 개인전 [메이크 업] 전에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메이크 업의 본질을 ‘바탕이 해골이고, 사과로 완성 된다’고 말하는 정미의 관점은 패션 디자이너만이 가능한 통찰일 듯하다. 크고 비쩍 마른, 쿨 한 모델들이 지배하는 패션계는 시각중심주의가 낳은 기형적인 규범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골’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해골 그자체가 아니라, 탐스러운 사과 같은 이미지일 것이다. 요컨대, 패션을 통해 해골은 사과가 된다. 섹스어필을 향한, 패션에 깔려 있는 성적 지향성은 죽음과 에로티즘을 연결시킨다. 정미의 작품에서 해골은 얼마 전에 타계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인 알렉산더 매퀸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매퀸의 디자인에는 해골이 많이 등장한다. 작품 [메이크 업](2011)에는 해골을 들고 있는 희미한 유령 같은 이가 서있고, 마치 조서와도 같은 글자들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2011년에 제작된 [메이크 업] 시리즈에는 해골과 사과의 도상이 대세이다. 사과 또한 한 시대의 획을 긋고 타계한 첨단 IT산업의 선구자를 떠오르게 하는 도상이다.

자신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동시대성에 대해 작가는 ‘2012년에 살았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다’고 했다. 이 또한 창조 및 독창성에의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난 전직 디자이너다운 발상이다. 작품 [메이크 업-오마주]는 피부 빛을 떠오르게 하는 분홍 바탕에 여러 크기와 형태와 표정으로 반짝거리는 화려한 재료들로 화장한 해골들이 배열되어 있다. 크기가 달라서 공간감이 느껴지고 해골들이 말하거나 웃거나 우는 소리가 울려 퍼질 듯하다. 사과 역시 해골처럼 다양한 크기와 색과 표정을 가진다. 공중에 붕 떠 있는 해골과 사과는 인간의 머리를 떠올리며 관객에게 말을 건다. 가면처럼 보이는 해골과 사과는 문신을 하기도 한다. [메이크 업]이라는 같은 제목을 가진, 여러 색과 크기의 사과가 자라는 화려한 나무는 풍요로운 결실을 맺는다. 이 사과나무는 우주 질서의 근간이 되는 만유인력의 법칙에도 순응하지만, 동시에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성실한 다짐이 있다. 사과와 해골의 관계처럼, 삶 속에 죽음이 있으며, 양자의 관계는 단절되지 않고 순환한다.
이러한 순환의 관계 속에서도 차이는 발견된다. 동물과 인간의 가장 극적 차이는 직립보행을 통해 획득한 뇌의 용적과 손의 해방이다. 그것은 노동과 언어 능력을 낳았고, 가장 지적인 반응의 하나인 웃음을 낳았다. 정미의 작품에 나타나는 언어적 요소와 해골의 웃음은 인간만의 특징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인간적 요소는, 작가가 끌어오는 패션계의 도상에 깔려 있는 에로티즘과 그에 딸려오는 죽음의 인식이다. 아무리 동물들이 멋진 무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패션이란 인간만의 전유물이다. 쇼파르에 의하면, 자신이 벌거벗었음을 알고 그 나신을 보호하는 것, 이것이 창세기에 의하면 낙원에서 나올 때 인간을 옷을 입지 않는 동물로부터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거기에는 ‘알몸 생활에 대한 공포, 그렇지 않으면 동물들과 비슷하게 될 것이라는 공포’(바타이유)가 있다. 패션과 에로티즘의 관계는 삶/죽음을 매개로 한다. 바타이유는 [에로스의 눈물]에서 동물이 에로티즘을 모르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에게 죽음의 인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반대로 우리가 극단적 차원의 에로티즘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죽음의 암울한 전망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인식을 계기로 동물로부터 구분된 인간은 에로티즘이 육체 기관의 맹목적 본능을 의도적 유희, 하나의 계산, 즉 쾌락의 계산으로 대체시킴으로서 다시 한번 동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다. 바타이유는 [어떻게 인간적 상황을 벗어날 것인가]에서도, 동물은 지속의 시간을 통해 아무것도 포착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인간만이 포착가능한 지속의 시간 속에 위치시킨다. 이러한 지속의 시간 속에 죽음이 인식된다. 이 죽음의 전망 속에서 극도로 짧은 순간인 에로티즘이 빛을 발한다. 죽음과 에로티즘의 긴밀한 관계는 삶 속에 죽음이 죽음 속에 삶이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극단의 것이 병존하는, 이러한 양가감정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역설에 대한 인식은, 패션은 물론 예술을 비롯한 인간세계의 모든 창조물에 스며있다.
출전; 미술과 비평 봄호
이러한 순환의 관계 속에서도 차이는 발견된다. 동물과 인간의 가장 극적 차이는 직립보행을 통해 획득한 뇌의 용적과 손의 해방이다. 그것은 노동과 언어 능력을 낳았고, 가장 지적인 반응의 하나인 웃음을 낳았다. 정미의 작품에 나타나는 언어적 요소와 해골의 웃음은 인간만의 특징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인간적 요소는, 작가가 끌어오는 패션계의 도상에 깔려 있는 에로티즘과 그에 딸려오는 죽음의 인식이다. 아무리 동물들이 멋진 무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패션이란 인간만의 전유물이다. 쇼파르에 의하면, 자신이 벌거벗었음을 알고 그 나신을 보호하는 것, 이것이 창세기에 의하면 낙원에서 나올 때 인간을 옷을 입지 않는 동물로부터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거기에는 ‘알몸 생활에 대한 공포, 그렇지 않으면 동물들과 비슷하게 될 것이라는 공포’(바타이유)가 있다. 패션과 에로티즘의 관계는 삶/죽음을 매개로 한다. 바타이유는 [에로스의 눈물]에서 동물이 에로티즘을 모르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에게 죽음의 인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반대로 우리가 극단적 차원의 에로티즘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죽음의 암울한 전망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인식을 계기로 동물로부터 구분된 인간은 에로티즘이 육체 기관의 맹목적 본능을 의도적 유희, 하나의 계산, 즉 쾌락의 계산으로 대체시킴으로서 다시 한번 동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다. 바타이유는 [어떻게 인간적 상황을 벗어날 것인가]에서도, 동물은 지속의 시간을 통해 아무것도 포착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인간만이 포착가능한 지속의 시간 속에 위치시킨다. 이러한 지속의 시간 속에 죽음이 인식된다. 이 죽음의 전망 속에서 극도로 짧은 순간인 에로티즘이 빛을 발한다. 죽음과 에로티즘의 긴밀한 관계는 삶 속에 죽음이 죽음 속에 삶이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극단의 것이 병존하는, 이러한 양가감정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역설에 대한 인식은, 패션은 물론 예술을 비롯한 인간세계의 모든 창조물에 스며있다.
출전; 미술과 비평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