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덕의 사진과 하상림의 그림이 만난 ‘길을 걷다_풀잎의 사유’ 전은 호젓한 오솔길을 걸으며 발견했을 자연의 경이가 담겨있다. 자연이 생명과 예술의 영원한 원천임을 생각할 때, 이러한 만남은 새삼스럽거나 극적인 것은 아니지만, 두 작가는 각각의 미디어를 통해 식물에서 유려한 선을 추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거친 자갈밭과 이름 모를 풀잎들에 내재된 보편적인 리듬, 그 자연의 율동은 예술 언어로 압축된다. 1990년대 초반부터 제주에서 찍어온 주명덕의 산죽 작품들은 장소 옆에 건조한 일련번호만 매겨진 제목의 흑백사진이며, 다양성 가운데에서도 시각적인 통일성이 있는 하상림의 최근작은 [무제]라는 제목으로 일관된다. 작품을 이루는 여러 요소 중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위해 나머지를 최대한 단촐하게 제시한다는 점 또한 공통적이다.

 


 


 

자연의 복잡다단함에서 조화롭고 간결한 형과 선이 추출되는 이들의 사진과 그림은 자연이라는 참조 대상을 괄호 치지 않으면서도 3차원적 대상을 2차원적인 패턴으로 강하게 변형시킨다. 주명덕의 사진은 식물 잎의 외곽선을 도드라지게 표현하며,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긴 풀잎 군락, 그것들에 내재된 자연의 패턴을 표현한다. 또 다른 작품군은 하얀 포말같이 보이기도 하는 눈이 얇게 덮인 돌밭 사진인데,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이 관통한 결과물일 미묘한 굴곡 면들은 특정 지역의 반영을 넘어선다. 고체와 액체, 흑백의 대조가 있는 사진은 온갖 생명이 출몰했던 지구별이라는 무대의 다채로운 표면 질감들을 강조한다. 물 또는 눈 같은 액체적 요소는 거대한 바위 같은 고체를 잘게 부스러뜨린다. 여기에서 물질과 에너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다른 형태로 끊임없이 변화할 뿐이다. 주명덕의 사진은 이러한 장기적인 변화의 단면을 포착한다.

주명덕과 하상림의 작품에 공통적인 식물은 에너지의 궁극적인 원천을 태양으로부터 받아들인다.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에서 생명은 열려진 계(界)로서 물질이나 에너지를 외부와 교환하는 복잡한 변화를 되풀이한다고 말한다. 생명반응은 살아있는 이상 평형상태에 도달하는 일이 없으며, 주변의 사용 가능한 에너지를 계속해서 섭취함으로서 생명을 유지한다. 에너지는 생명의 기반인 동시에 문화의 기반이기도 하다. 하상림의 작품은 꽃과 씨앗, 풀잎 등 식물 이미지가 간결한 선의 언어와 강렬한 색의 언어로 전개된다. 아크릴로 화사하게 칠해진 단색 면 위로 다양한 굵기와 굴곡으로 이루어진 선의 흐름은 자연에 내재된 다양함과 통일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는 섬세한 그물망이다. 색의 대조로 강조된 식물의 윤곽은 새로운 지각의 장을 연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선들은 마치 지도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유려한 선들은 자연 그 자체처럼 유연성으로부터 비롯된 견고성을 가진다. 이를 통해 자연 또는 예술이라는 유기체는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살아남는다. 자연적 참조대상과의 지표(index)적 연관관계를 가지는 주명덕의 사진은 마치 기(氣)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동양화처럼 보이며, 고도로 정제되어 추상화 된 하상림의 그림은 식물학자가 보면 종을 알아볼 수도 있는 실증적 요소가 있다. 중세시대 채색 사본을 가득 채웠던 선의 흐름 및 동양화의 먹 선과, 생물학자의 도감 및 사진자료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자연에서 공통적 요소를 뽑아내려는 이들에게 무한대의 자료축적과 그로부터 분석적 시점을 끌어낼 수 있게 하는 것은 사진이다.

 


 



사진은 다양한 자료들을 최대한 간단한 법칙으로 환원하는 과학적 잠재력이 있다. 물론 그대로 두면 무의미할 실증적 자료들에서 종합적 비전을 찾아내는 것은 시적 심미안이다. 형태 속에 과정이, 과정 속에 형태가 있는 작품 속 자연의 구조는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다. 자연을 이루는 기본 입자의 배열 및 결합 방식은 한 순간도 정지되지 않는 동적 체계이며, 이 체계는 다양한 형태와 질감을 만들어낸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패턴처럼 보이지만, 균질한 표면은 아니다. 각각의 요소들은 비대칭을 이룬다. 생명체는 항상성을 가지지만, 완전한 항상성은 죽음이다. 유기체는 생태계로부터 에너지를 유입하고 방출하면서 끝없이 변화한다. 그것들은 생겨나고 자라며 소멸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미세한 연결망은 정적인 조화가 아니라, 동적인 연속성이다. 이들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연 간에 그리고 예술 간에 성립되는 유사한 형상은 재현주의적인 유사가 아니라, 구조적 유사이다.

유사는 자연과 예술을 관통하는 질서를 예시한다. 현대에 와서 이러한 유사관계를 한눈에 파악하게 하는 것은 신학적 사고가 아니라, 자연과 인공, 미시와 거시, 안과 밖 등을 두루 시각적인 정보로 만드는 사진이다. 사진자료들은 시간과 공간을 압축하며 반복과 차이를 가늠하게 한다. 다양한 차원의 시각적 정보에서, 에너지의 축적이나 분배의 패턴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유사한 형상을 낳는다. 주명덕과 하상림의 작품은 자연에 내재한 유사 관계를 통해 질서화 된다. 유사의 계열은 소우주로부터 대우주까지 한없이 확장될 수 있다. 그들이 발견한 풀잎-우주는 최소의 요소로 최대의 기능을 발휘하는 유기체이며, 군더더기 없는 경제성과 합리성에서 파생된 아름다움이다. 생존에 적합한 최적의 기능과 미는 불가분의 관계로 서로의 가치를 상승시킨다. 그들의 작품에서 자연의 법칙과 예술의 규칙은 충돌하지 않고 수렴한다.

출전; 퍼블릭 아트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