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6321
정정주 / 구조를 변화시키는 힘
이선영
2012. 06. 04.
/ 정정주 전 (3.28-5.10, 갤러리 조선)

모터가 장착된 비디오카메라가 360도로 빙빙 돌면서 주변을 어지럽게 투사하는 작품 [inner brain]은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을 ‘낯선 방문’(전시부제)자로 만든다. 정정주는 자신의 작업 속 건축모형들을 신체와 비유하면서, 타자와의 조우에서 기인하는 낯섦과 긴장을 표현한다. 우리는 낯선 건물에 진입하듯 타자에게 들어가며, 타자와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나 또한 타자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타자가 들고나는 구멍과 경계, 공백들은 보다 민감하고 밀집된 구조를 가진다. 기계적 접촉면들로 이루어진 건축은 고정된 구조와는 상이한 것들이 발생하는 장이다. 공간과 공간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부딪힐 때 둘 중의 하나, 또는 둘 다 파열음을 내고 구조를 변경시킬 것이다. 모형 내부의 빛이나 카메라의 시선, 그리고 소리들은 낯선 방문에서 야기되었던 지각과 기억을 새롭게 만든다.
축소모형이 벽에 붙어있는 작품 [Lobby]에서 건물은 타자처럼 얼굴을 내밀며, 상대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작품 [10 houses]에서 집들은 인간처럼 고유의 실루엣들을 중첩시킨다. 어떤 대상이 실루엣이나 형태를 넘어 살아있는 것으로 도약하는 징후는 바로 움직임이다. 정정주의 작품에서 움직임을 만들고 극적으로 고양시키는 요소는 빛이다. 빛은 정적인 구조에 잠재적이고도 실제적인 움직임을 준다. 빛은 구조를 활성화시키고 다양한 면모를 드러내며, 구조를 재배치한다. 3D 애니메이션인 [room]은 빛의 추이에 따라 건축을 이루는 구조들이 다양하게 배치된다. 공간에 침투하여 공간을 극화시키는 빛은 때로 공격적이다. 그것은 인간을 포함한 공간 내부의 것들을 여러 면으로 조각낸다. 스캐닝하듯이 공간을 훑고 지나가는 빛의 궤적은 모든 것을 낱낱이 밝혀 코드화 시키려는 듯하다.

오늘날 발달된 정보문화는 코드의 조합을 극대화시켜 그자체가 또 다른 자연처럼 다채롭게 다가온다. 작품 [Crash]는 여러 공간 구조물이 뒤엉켜 있고 맞은편 벽면에서는 공간 구석구석과 만나 충돌하는 역동적 시각이 펼쳐진다. 건축으로 대변되는 구조들은 인간에 의해 인공적으로 제작된 것이지만, 구조는 마치 그자체가 무기물처럼 고정되어 지배적 질서로 화하는 경우가 많다. 고정된 구조가 유동화 되는 사건을 통해 낯섦이 생성된다. 정정주의 작품에서 구조의 운동은 동물적이다. 그는 먹이가 던져지자마자 납작 엎드려있던 악어 떼들이 만들어냈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또한 낯섦은 가장 낯익은 것으로부터 발생하는데, 그 공간중의 하나가 바로 집과 일상이다. 그는 유난히 강했던 독일의 햇빛이 자신의 작은 보금자리를 강하게 침투해왔던 것을 기억한다.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극화된 것은 물상화 된 구조의 움직임이다. 오늘날 모든 것이 구조의 부속품으로 환원되고 있는 마당에, 가상으로나마 구조의 움직임을 야기하고 더 나아가 그것으로 게임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자유에 속한다. 건축적 구조는 정정주의 작품을 강하게 특징지어 왔다. 건축은 틀에 짜져진 단면들 내지는 형식들을 지닌다는 점에서 개념과 비교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예술은 집과 더불어 시작된다고 말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건축은 예술의 으뜸이며, 예술은 숱한 우회와 복귀, 분할 선들, 정도와 단계들의 변화와 같은 새로운 지각과 정서들을 창조한다. 구성은 닫힘이 아니라, 열리고 트이기를 목표로 한다. 어떤 구조나 구축과의 만남에서 가능한 복잡한 게임을 보여주는 작품 [room]과 [crash]는 구성요소들은 서로에게 포개지는 무한한 운동들로 이루어진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듯, 개념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조합이다. 건축은 끊임없이 구조들과 단면들은 만들어내고 결합시킨다. 건축은 다각적으로 방향 지어진 틀들의 끼워 맞춤으로 정의된다. 건축에서 이러한 틀들의 끼워 맞춤, 혹은 벽면, 창, 지면, 경사면 등의 모든 구도들의 접목은 숱한 접점과 대위법으로 이루어진 구성체계이다. 틀들과 그 틀의 결합들은 감각의 구성물들을 떠받치고 형상들을 지탱하게 한다. 틀 또는 단면들은 좌표들이 아니라, 감각 구성물들에 속하면서 그 구성물의 서로 포개지는 여러 국면들을 구축한다. 정정주의 작품에서 건축과 건축의 연장으로 다가오는 도시는 하나의 장소이기 보다는, 여러 기복을 가지는 벡터들의 변주이다. 이러한 변주는 장소의 동일성을 해체한다. 이러한 구도에서 만들어진 기하학적 형상들은 서로 대치하고 융화되며 상호 변형되는 힘들로 전화한다.
출전; 계간조각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