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상의 작업은 사진과 조각의 장르적 특수성을 재고하게 하며, 더불어 그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하나로 통합되는 제3의 지점을 예시해준다. 이는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인식론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그 변화된 패러다임에 걸맞게 형식 또한 변화된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사진은 평면이고 조각은 입체다. 사진은 이미지가 강하고 조각의 존재방식은 이미지보다는 공간적이다. 따라서 외관상 두 장르는 서로 통합될 수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회화도 사진과 마찬가지로 평면이지만 실제를 재현하는 능력 면에서 회화는 사진에 비교대상이 안 된다. 적어도 외관상 현실성을 획득하는 재현능력 면에서 사진을 따라잡을 수 있는 매체는 없다. 


그렇다면 조각은 어떤가. 조각은 사물과 마찬가지로 3차원의 현실공간을 점유한다는 점에서 현실성을 획득한다. 조각이 구조적인 닮은꼴로 인해 현실성을 얻는다면, 사진은 표면적인 닮은꼴로 인해 현실성을 획득한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현실성의 계기를 하나로 연결시킬 수는 없을까. 실물처럼 공간을 차지하면서 실물과 닮은 유사 실물을 만들 수는 없을까. 여기서 사진과 조각은 하나로 통합된다. 구조적인 닮은꼴과 표면적인 닮은꼴이 서로 만나 일종의 유사현실을 구현해내기에 이른 것이다. 


권오상은 이렇게 구현된 유사현실을 데오드란트 타입(Deodorant Type)으로 명명한다. 데오드란트는 향기로 냄새를 잡는 일종의 방향제 내지 탈취제다. 냄새를 잠정적으로 억제할 수가 있을 뿐 원천적으로 제거할 수는 없다. 작가는 여기서 일종의 속임수를 본다. 냄새가 제거된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인데, 이런 착각 내지 속임수가 데오드란트 타입 시리즈를 지지한다. 이를테면 수백 수천 장의 부분 이미지를 일일이 따 붙여 전체 형상을 짜 맞춘 작가의 작업은 원형 그대로를 닮아있을 것 같다.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그 닮은꼴은 다만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닮은꼴일 뿐 사실은 원형과는 다르다. 더욱이 작가는 짜 맞춘 흔적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강조하기조차 한다. 원형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닮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이 기묘한 형상을 매개로 작가는 일종의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일련의 형상들은 부분과 전체와의 유기적인 관계에 대한 신념이 막연하거나 허구적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를테면 부분 이미지를 짜 맞춘다고 해서 전체 형상이 오롯이 복원되지는 않는다. 부분은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순간 자족적인 논리를 갖는다. 부분의 논리와 전체의 논리는 다르다. 부분과 전체는 동일성의 논리가 아닌, 비동일성의 논리를 매개로 연결되거나 연관된다. 비동일성의 논리로 축조된 형상, 현실적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형상, 현실과의 닮은꼴로 인해 오히려 더더욱 오리무중인 형상이다. 이처럼 기묘하고 오리무중인 형상이 동일성의 논리와 재현적인 일루전으로 축조된 현실인식을 의심하게 한다. 프로이트 식으론 캐니가 은폐하고 있던 언캐니가 출현한 경우로 볼 수가 있겠고, 라캉 식으론 상징계의 틈새로 불현듯 혹은 공공연히 실재계가 출몰한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작가는 이처럼 피상적인 닮은꼴을 매개로 현실에 간섭하고 현실을 파열한다. 그의 지향은 현실을 재현하거나 복원하는데 있지 않다. 외관상 그렇게 보이는 것은 다만 속임수에 지나지가 않을 뿐, 오히려 당연한 현실을 의심하게 하고 낯설게 하는데 맞춰져 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작가는 인터넷을 끌어들인다. 전에는 피사체를 일일이 사진으로 찍었었다. 그 과정이 근작에선 인터넷 서핑으로 대체된다. 사진을 이미지로 본다면 인터넷은 이미지의 보고다. 인터넷에는 세상의 모든 이미지들이 다 들어 있고, 실시간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작가는 그렇게 인터넷을 서핑하면서 필요한 이미지를 캡처해 사진형상을 만들고 사진조각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사진조각의 표면에는 해상도가 떨어지는 이미지의 픽셀이 여실하다. 멀리서 보면 현실과의 닮은꼴이 보이고, 가까이서 보면 미디어가 보이고 화소가 보인다. 또 다른 속임수와 착각이 꾀해지고 있는 것이다. 


현실은 현실이 아니다. 혹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은 현실이 아닌 현실과의 닮은꼴일지도 모른다. 인터넷 속 세상은 세상이 아니다. 다만 현실과의 닮은꼴일 뿐인 가상현실에 지나지가 않는다. 현실과의 닮은꼴을 현실이라고 착각하지도 말고, 가상현실에 빠지지도 말 일이다. 작가의 작업은 그렇게 주문을 걸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