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요청에 늘 시달리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숲 속 새들의 울음소리는 잘 이해하면서 미술작품은 그냥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미술을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미술은 신비스럽고, 우리의 정신과 영감에 관여되는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애초부터 쉬운 것이 아니다. 미술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사물을 이해하려는 태도로 미술작품을 대하는 것이 미술을 어렵게 한다.

세계도자비엔날레가 열렸던 지난 2개월 여 동안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한 것은 작품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관람객들의 비판이었다. 매일같이 진행되는 관람객 설문조사 내용을 살펴보면 설명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매일 아침 나는 전시작품에 대해 제대로 설명문을 붙이지 않은 죄인이 되었다. 그러한 관람객들에 대해 내심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이상 얼마나 더 설명을 해달란 말인가? 전시실을 온통 설명문구로 채우란 말인가?”
미술을 감상하는 법을 아는 사람들에게 개별 작품에 대한 설명문은 사실 불필요한 것이다. 전시 전체에 대한 개념이나 전시구성에 대한 설명문들은 물론 충실히 갖추어 놓았다. 설명이 필요한 특정 작품에 대해서도 설명문을 달아 놓았다. 그리고 음성안내 시스템을 통해 전시작품의 절반 이상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 소감을 묻는 질문에 “설명이 없어서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답변하는 것이다. 그러한 답변 속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 아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나는 동시대 미술에 대한 그러한 친절한 설명문이 오히려 관람객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설명문들은 감상자들이 작품과 충분히 교감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술작품은 느끼고 교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느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작품을 이해할 수 없다. 오직 느낌을 통해서 감지할 수 있는 세계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작품을 이해할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세계도자비엔날레 전시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미술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줄지어 전시관으로 들어오는 학생들의 태도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학생들은 작품을 느끼고자 하는 태도가 아니라, 숙제를 하고자 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설명판넬 앞에서 열심히 베껴가지고 돌아가는 학생들은 숙제를 훌륭하게 완수할 수는 있지만, 미술관에 간 소득은 전혀 없는 것이다.
미술작품에 대해서 사람들은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한다. 느끼려 하지 않고 알려고 하기 때문이다. 감상한다는 것은 작품을 보고 느낌을 갖는 것이다. 그 느낌은 새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작가의 의도가 반드시 아름다움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미술은 아름답다”라는 고정관념이 미술감상을 어렵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관람문화의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다. 나는 행사가 끝난 요즈음 설명이 부족하다라고 불평한 관람객들에 대해 가졌던 반감 대신에 그들의 말을 깊이 되새겨야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감상하는 법을 교육해야 한다. 모든 전시작품에 설명문을 붙일 수는 없지만, 미술에 문외한인 수많은 관람객들이 미술에 대해 친근감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도록 뭔가 방법을 연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 서정걸(1960- ) 홍익대 미술사학 석사. 월간미술 기자,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 역임. 현 세계도자기엑스포 조직위원회 전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