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선이 최근 3-4년간 집중하는 소재는 나무로, 이를 통해 ‘생성과 소멸’이라는 주제를 표현한다. 태양을 향해 뻗은 가지만큼이나 지하로도 뿌리를 내린 나무는 그자체가 땅과 하늘을 연결해주는 가장 안정적인 형식이며, 사계절의 순환을 체현하는 가장 가시적인 생명체로 간주된다. 그래서 나무는 공간적 연결과 시간적 변화라는 은유를 내포한 가장 보편적인 소재이자 주제이다. 그러나 나영선의 소재인 나무는 판으로 특화되어 있다. 서로 다른 곳에서 벌목된 나무들이 경제원리에 의해 얇게 저며지고, 강도를 위해 여러 겹 붙여져 만들어진 판이 인간을 위한 물건으로 만들어져 잠시 사용되다가, 시간의 흐름을 통해 다시 자연의 원소로 해체되는 과정 중에 있다. 작품 속 낡은 나무들은 고목에 새겨진 시간의 흐름과는 차이가 있다. 그것들은 약해진 표면의 한 부분부터 인공적 결합의 끈을 서서히 놓아간다. 또한 그림 속 나무 판들은 무엇의 일부인지 확인하기 힘들다.

그것들은 어떤 전체의 일부인지 불확실한, 요컨대 부분이 전체인 구성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디자인, 또는 기하학적 단위로 나뉘어 또 다른 무늬로 이합집산 중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미시적인 변화를, 후자는 보다 거시적인 차원의 순환을 표현한다. 나영선의 작품에서 미시적 우주는 화면을 충만하게 채우는 기념비적인 형상을 갖추기도 하고, 거시적 우주는 먼지나 모래 입자 같이 느슨하기도 하다. 어떤 차원이든 정지된 현상 형태가 아니라, 무엇인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과정 중에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풍경의 부분으로 온전한 나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작품의 기조를 이루는 것은 나무판의 평면적인 배열이다. 그것은 온 화면을 꽉 채우기도 하고, 배후의 또 다른 공간을 암시하는 통로를 마련하기도 한다. 나무판의 배열은 화면의 평면적 속성을 강조하면서도 환영(illusion)을 배제하지 않는다. 배열된 판이 기하학적으로 단순화 될 때 평면성은 더 강화된다. 기하학적 구성이 두드러진 작품에서 나무는 물질성을 최대한 털어내고, 나무 무늬 종이 같은 표피적 양상을 띈다.

화면에는 나무 도시락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얇은 나무판이 오브제로 붙어있기도 한다. 이미 인류 문명사에서 오랫동안 있어왔지만, 조형적 방식으로서 꼴라주를 ‘발명’한 입체파들이 사용했던 최초의 평면적 사물 중의 하나가 나무 무늬 종이였다는 점도 시사적이다. 꼴라주가 현대미술에 도입된 이래, 사물의 환영으로부터 사물 자체로의 이행은 큰 발걸음을 디뎠다. 그것은 실재와 환영을 나누는 이원론으로부터 표면이라는 일원론으로의 이동이었고, 복제 매체와 결합된 표피들은 현실을 기만과 다양성 사이에서 요동치게 했다. 나무판이 창처럼 저편으로 뚫린 구멍을 감싸는 틀이 되기도 하며, 실제의 나무가 붙여지기도 하는 나영선의 작품에는 여전히 환영과 사물 간의 게임이 실행되고 있다. 오브제를 붙이고 그림자는 물감으로 그리는 등의 눈속임도 사용한다. 작품들은 회화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창, 평면, 꼴라주라는 회화의 진화상에서 등장했던 변주들이 공존한다. 그것들은 분명 회화로 한데 분류될 수 있지만, 가상과 실재의 관계에 있어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는 형식들 간의 유희가 있다.

작가는 나무 평면의 구성 뒤로 또 다른 차원의 공간이 보이게끔 창, 또는 구멍, 또는 작은 틈들을 마련한다. 뒤로 보이는 것은 무한한 우주, 산과 강 그리고 나무가 보이는 풍경 등이다. 때로 그 틈으로 꽃이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한 송이 꽃부터 암흑에 감긴 우주까지, 그리고 그 사이의 일상적 시공간까지 생성과 소멸이라는 주기에 속해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도 있듯이, 꽃은 빠른 생멸 주기를 가지는 대표적인 소재이고, 사계절을 표현한 작품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소재와 색감, 분위기를 통해 변화를 표현 했다. 나무로 된 수레바퀴는 생멸의 주기를 돌고 도는 윤회의 이미지와 교차시킨다. 작품 [생성과 소멸-숲속 음악]이나 [생성과 소멸-울림]처럼, 피아노 건반이나 기타 같은 소재가 등장하는 작품은 시간을 흐름 속에 생성 소멸하는 시간예술을 대표하는 음악을 도입한다. 악기는 꽃과 함께 생성과 소멸이라는 주제를 보다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소재이다. 나영선의 작품에서 악기와 꽃은 버려진 낡은 사물들이 주는 우울하고 사색적인 느낌보다는 화사하고 동적인 느낌을 준다.

 

 



그것은 원래 제목이 ‘소멸과 생성’이었던 것처럼, 소멸보다는 생성에 보다 방점이 찍힌다. 많은 작품의 명제에 포함되어 있듯이 ‘생성과 소멸’이라는 주제는 가장 먼저 작품을 통해 낡고 폐기된 것들이 다시 소생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평소에 아무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들이 단지 그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주목의 대상이 되는 일은 흔하다. 근래에 몰두하는 나무판 그림이 시작된 것은 배 선착장에 버려져 있었던 낡은 판자의 층들이 흐들흐들 헤진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나무판을 있는 그대로 화면 가득히 그렸지만, 요즘은 나무 조각이 떨어진 것을 추상적으로 변주한다. 나무판은 폐기된 목선이나 생선 담는 궤짝, 나무 바퀴 같이 낡은 사물의 일부라는 점은, 나무 자체에 내장된 시간의 흐름 외에, 인간의 역사 속에 포함된 사물의 시간성을 내포한다. 그것들은 어떤 변주의 흐름 속에 있든 자연의 사물화, 사물화 된 자연의 면모를 가진다. 최초에 명백한 자연적 형태와 사물로서의 기능을 가졌을 나무(판)는 화석이나 지층처럼 시간의 층을 켜켜이 늘려나가면서 수수께끼 화 된다.

칸칸으로 나뉜 기하학적 구성 속에 관찰된 여러 나무 조직들의 미시적 차원부터 나무판 뒤로 펼쳐진 검은 우주 같은 거시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온 우주가 생성과 소멸이라는 공통의 법칙 속에 연결된다. 여기에서 자연은 그자체로 머물러 있는 법이 없다. 나무판들은 이미 죽은 자연이나 쓸모없는 사물이지만, 그림을 통해 또 다른 생멸의 주기에 끼어든다. 구성상의 변주를 위해 여러 크기와 형태, 두께, 색감으로 펼쳐진 나무판 이미지(또는 나무판 그자체)는 조직된 유기체의 출발점이 될 원소적 차원의 단위로 보여 진다. 그것들은 화면 속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그 차이들이 서로 다른 작품을 파생시킨다. 분할은 연결을 위한 출발이다. 연결은 리드미컬한 방식을 따르지만, 수직 수평이라는 정적인 양식을 취할 때조차도 창 틀 같은 방식을 통해, 그 너머의 또 다른 차원과 연결시켜 준다는 점에서 잠재적 움직임이 있다. 변화무쌍한 구성을 통해 모든 존재를 과정으로 나타나게 하는 나영선의 작품은 사물의 양태뿐 아니라, 회화적 형식의 차이에서도 변화를 지속시킨다.

 

출전; 미술과 비평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