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의 방 전 (7.18-7.31, 관훈갤러리 전관)
‘3개의 방’전은 중견 조각가 고경호, 문주, 김종구 3인이 각각 전시실 하나를 개인전 형식으로 꾸민 전시로, 각기 다른 만큼이나 비슷하다. 동식물과 금속, 그리고 물과 바람이 있는 각 방에서 발견되는 소재와 감수성은 자연에 바탕 하지만, 그들의 작품은 자연주의에 전제될 법한 실체적이고 본질적인 사고와는 거리를 둔다. 그들의 작품은 자연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자연에 어떤 고정관념을 묶어 두지 않는다. 그들에게 자연은 확실한 실체라기보다는 불확정적인 과정으로, 자연에 쉽게 가정되곤 하는 체계의 완결성은 와해된다. 방이 주는 밀폐감은 역설적으로 자연이라는 무한을 담기 위한 조건이다. 지상의 가장 육중한 생물체 중의 하나인 코뿔소를 작은 오목거울에 쏙 집어넣은 듯한 고경호의 방, 끝없이 밀고 밀리는 바다에서 자연의 영원한 과정을 보는 문주의 방, 단단한 통 쇠를 가루로 만들어 시간의 흔적을 공간화한 김종구의 방이 그러하다. 이들의 작품에서 자연을 비롯한 순수한 자기 동일성을 근저로부터 무너뜨리는 결정적 요소는 시간이다. 시간은 서서히 동일성을 침식하고 그 자리에 차이를 들여 놓는다. 더 나이가 차이 자체가 동일성을 형성한다. 동일성을 해체하는 차이는, 고경호와 문주의 방에서의 끝없이 변하는 물의 이미지나 김종구의 방에서 녹슨 막 위에 새겨진 텍스트들에 선명하다. 유동적 성격을 가지는 물과 텍스트는 차이적 관계 속에서 어떤 사물이나 관념으로 나타난다.
1층의 고경호의 방은 둘로 나뉜다. 밝고 큰 방에는 거대한 코뿔소 앞에 작은 오목 거울을 배치해 놓은 작품 <흰 코뿔소의 여정>(1993년 작 , 2012년 재조립 복원)이 있는데, 작품에 내재된 시선은 같은 방 벽에 붙은 그림 <Reflection-tree>처럼 속도감 있게 자연을 통과하는 시간을 흐름을 뒤로 한 채 오목거울 안을 향하는 듯하다. 어둡고 작은 방의 <Reflection-window>에는 양동이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일으키는 파문이 벽에 투사되어 움직이는 허상을 만든다. 시간의 간격이 드러나 있는 그의 작품은, 코뿔소 뿐 아니라 관찰자와 그 주변공간까지도 쏙 집어넣은 왜상(anamorphosis)과 어두운 방의 일렁이는 반영상은 동물과 식물, 물같이 강력한 현전의 총아라 할 만한 자연적 대상을 모호하게 만든다. 이미지란 본래 모호한 것이지만, 그가 연극적 무대 연출에 활용하는 거울이나 창문이라는 장치는 모호함을 더욱 극적인 것으로 부각시킨다. 최초의 있음이란 있었음, 또는 그 흔적으로 흐릿해진다. 고경호의 방은 현전이 아니라 흔적을 강조하는 장이다. 데리다에 의하면 흔적은 현존의 환영(simulacrum)으로, 정확하게 말해 위치가 없다. 존재를 흐리는 것이야 말로 흔적의 속성이다.

1층 고경호의 방이 연극 무대 같다면, 2층 문주의 방은 실험실 같은 분위기이다. 작품 <Horizontal-blue>은 갖가지 모양의 실험 용기 안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그 안의 푸른 액체들을 움직인다. 바닷물 같은 각 용기의 액체들은 한 줄로 죽 그어진 수평선을 만들 듯 말 듯 움직임을 이어간다. 그것들은 벽에 어슷하게 붙여놓은 풍경사진인 <twinight memory>의 지평선들이 그렇듯이, 명확한 줄로 맞추어지기는 힘들 듯싶다. 수평선에 대한 기하학적 공리는 작품에 도입된 시간화 작용에 의해 영원히 지연된다. 문주는 결론을 유보하고 진행의 과정들을 중시한다고 말한다. 그의 전략인 ‘결론의 지연’이란 예술 자체에 내장되어 있다. 마이클 라이언의 [해체론과 변증법]에 의하면, 심지어 과학조차도 세계에 대한 절대적이고 확고한 진리를 단호하게 설명하는 수정 불가능한 형식적 공리의 집합이 아니라, 현재의 공리가 완결된 것이기를 그치고 보충을 요구하기 시작하는 한계상황, 즉 미 결정성을 발견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바닷물이 들고나는 해변 영상을 보여주는 작품 <영화가 잃어버린 상상력>은 차이(differ)와 연기(deffer)가 한 묶음 된 차연(différance)을, 차이적 관계가 놀이하는 장(場)인 해안에서 발견한다.

쇳가루 산수화로 둘러쳐진 3층 김종구의 방은 흘러내리는 녹이 만들어내는 묵직한 고색창연함으로 가득하다. 풍경이자 글자들은 숙연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공간 전체를 뒤덮은 녹슨 벽은 그 누구도 이러한 시간의 작용에 예외가 없을 것이라는 단호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의 작품은 자연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와의 합작품이다. 쇳덩어리를 깎아내어 만든 ‘수묵’의 재료는 산수를 이루는 금속성 물질이다. 자연은 원소의 차원으로 치환되어 재구성된다. 그의 <쇳가루 산수화>는 수성접착제에 적신 광목 위에 쇳가루를 흘려서 만든 시어로 되어 있다. 중력의 작용을 받는다는 것과 녹이 스는 과정은 인간사의 기쁨 보다는 슬픔과 더 잘 어울린다. 인간사는 빛나는 비상의 이야기보다는 색 바랜 추락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한계를 가진 인간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서, 인생을 또 다른 방식으로 살게 하는 몇 안 되는 인간만의 창조물이다. 명확히 결론지어지지 않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인생의 비참함을 더욱 비참한 색조로 과장하거나 그것의 단순한 동어반복은 아니다. 녹슨 벽에 써있는 글자들은 반복변화성(iteration)이라는 속성을 내포한다. 즉 ‘하나의 단어는 약호체계의 구성요소를 반복함으로서 이루어지고, 또한 그 반복 과정 속에서 다른 단어가 된다’(마이클 라이언). 언어는 단순한 반복을 넘어 그 속에서 변화하는 운동을 통해 자연 및 삶과 같은 반열에 놓인다.
출전; 계간조각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