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 전(6월 19일 – 7월 15일, 갤러리 현대 신관) 

 




 

볼펜으로 그어진 선의 집적, 그것이 발산하는 에너지는 물질이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액화 또는 기화되는 임계점을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충돌하고 있는 원자들의 무질서한 운동처럼 보이는 선의 궤적들은 물리적인 일(work)이자 작품으로 화면에 고정된다. 원자의 무작위적인 운동에 의해 발생되는 열을 유용한 일로 바꾸는 물리적 과정은 효율적인 엔진 제작부터 우주의 작동 방식에 대한 설명에 이르기까지, 변화에 대한 과학의 전제였다. 물리학에서 열역학 뿐 아니라, 생물학에서 진화론도 마찬가지이다. 다윈이 예시하듯, 자연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 변이의 원동력 또한 우연과 무작위성이다. 이일의 작품에서도 우연과 무작위성은 변화를 이끈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결정체들처럼 각기 다른 성장의 패턴과 역사를 가진 그의 작품들은 자연의 창조적 국면을 구성한다.

 

그것들은 흘러가는 강물이 만들어내는 소용돌이처럼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순간들을 담지 한다. 현대과학은 조직의 갑작스러운 변화(phase transition)에 의해 진화하는 우주의 창조성을 강조한다. 이일의 작품 또한 어떤 문턱(threshold)을 넘어 전이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전환점(critical point)들로 가득하다. 필립 볼은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임계질량에서 이어지는 사건들]에서 물리학에서 사회학에 이르는 보편적인 법칙으로, 요동(fluctuation)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온도가 올라가면 열에너지에 의해 원자들이 흔들리면서, 무질서의 힘이 끊임없이 작용하게 된다. 원자 운동에 포함된 우연함 때문에, 모든 과정에는 무질서한 작은 변이 또는 요동이 들어있다. 작가는 변덕스럽고도 무작위적인 요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온도를 높이 올린다. 손에 쥐어진 볼펜 한 자루로 매번 다시 창조될 우주를 위해 스스로를 가열시킨다.

 

각 화면에 쏟아 부은 집념의 선들은 강박을 넘어서 자유로 도약한다. 자유연상은 고정될 틈이 없다. 무작위적이고 불확정적인 선의 흐름에는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거나 회귀해야 한다는 기준 자체가 사라져 있다. 선의 방향과 속도의 예측 불가능성은 결정론적 우주에 자유의지의 몫을 늘려나간다. 30년간 그려온 볼펜화는 일련의 통계적 규칙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세부는 다르지만 형식은 동일하게 유지되어, 멀리서보면 무작위적인 선의 흐름도 균일하게 보이는 것이다. 어디에서 시작되고 끝나는지 알 수 없는 선의 흐름은 신경계의 미세 연결망으로부터 머나먼 우주의 성운성단에 이르는 유비의 그물망을 형성한다. 붓 대신에 볼펜으로 그어진 선들은 깍아지른 절벽 위의 운무나 산등성이, 반딧불 무리 같은 어떤 풍경이 연상되기도 하고, 미시 또는 거시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입자들의 불규칙한 파동이 연상되기도 한다.

 

아크릴과 오일로 된 작품은 빈 볼펜이나 대나무를 이용하여 선의 궤적을 만든다. 재료가 독특하지만, 잭슨 폴록과도 비교되기도 하는 그의 작품은 미술사적 전거도 있다. 작가가 말하듯이, 일정하고도 연속적인 선을 뽑아낼 수 있는 볼펜은 작가의 손맛을 화면에 그대로 전사해주는 동판화의 제작기법(cross-hatching)과 유사하다. 그은 것이든 긁은 것이든 상관없이, 선은 가필 없이 단번에 실행된다. 아크릴 물감 위에 덧바른 오일을 빈 볼펜으로 파낸 작품의 경우, 마르기 전에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가필 불가에 시간의 제한까지 뒤따른다. 볼펜 작업은 즉발성과 지속성을 결합시킨다. 풀길 없이 엉켜있는, 때로 단호하게 베어낸 선들은 인생과도 유사하지만, 작가는 반복을 통해서 삶과의 차이를 길어낸다. 보이지 않는 밀도 높은 중심으로부터 예측할 수 없는 방향들로 튀어 오르는 선들은 시공간을 확장해 간다.

 




 

출전; 아트 인 컬처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