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세환 전 meltdown (8.11-9.8, 표갤러리)
눈이 내린 듯 온통 하얀 사진들에는 과일과 야채들이 밀가루 튀김옷을 입은 듯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있다. 끈끈한 점도의 액체는 사물의 표피를 완전히 감싸면서 아래로 줄줄 흘러내린다. 그것은 사물을 녹여 내는 듯하지만, 페인트의 속성을 생각해보면 서서히 굳어가는 중이다. 같은 색상의 바탕 위에 피사체가 공중에 붕 떠있는 듯하지만, 그것들은 촬영을 위해 벽에 고정되어 있다. 실제상황은 시각적 상상력과 간극이 있다. 환영을 만들어내는 조작 기술은 실제와 차이를 가질 수 있다. 가령, 그냥 빵보다 비눗물 바른 빵 사진이 더 맛있어 보이는 것이다. 관객은 페인트에 적셔져 희미하게 드러난 대상의 실루엣 뿐 아니라, [meltdown-피사체 이름]으로 건조하게 이름 붙여진 제목을 통해서 하얀 피막 속의 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

대상은 가지, 바나나, 포도, 사과, 생선, 파프리카, 브로콜리 등이며, 운동화나 장난감집 같은 무기물도 보인다. 동영상을 포함해 흰색 천지의 작품들 속에 빨강 페인트에서 꺼내진 사과가 유일하다. 그것은 사과 고유의 색보다는 빨간색 페인트로 먼저 다가온다. 그는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보편적 기술에 역행하여, 진짜를 가짜처럼 보이게 하려 했다고 말한다. 진짜처럼 보이든 아니든 사진은 허구적인 것이다. 하얀 페인트는 자연의 색과 향, 질감을 삭제하고 작가가 선택한 임의적인 처리과정을 증거 한다. 특히 같은 색으로 처리된 바탕은 보호색처럼 사물의 정체성을 은폐하며, 흘러내리는 페인트는 대상의 정확한 실루엣을 엉클어 놓음으로서 본래의 참조대상과의 직접적 만남을 방해한다. 사진이 가지는 인덱스(index)적 측면 때문에 관객은 곧장 저것은 사과야, 저것의 포도야 하는 식의 확인을 할 수 있겠지만, 사진 역시 그림만큼이나 실제에 대한 환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의 사진은 스펙터클의 사회를 장식하는 수많은 사실임직함 대신에, 유령 같은 환영의 속성을 강조한다. 그 환영은 부재 시 된 참조대상 대신에, 여러 스텝들과 함께 장황한 촬영 장치를 갖추고 힘들게 찍은 결과물이라는 것을 확인시킨다. 화가들이 명암법을 훈련하기 위해 하얀 석고상을 그리곤 하듯, 흰색 처리는 실제의 환영대신에 조형적인 환영을 부각한다. ‘meltdown-환영에 대한 구체적인 재현’이라는 전시부제를 가진 재현의 무대는 실험실처럼 건조하다. 다른 것이 첨가되지 않는 순수한 색은 빛과 조응하여 본질을 드러낸다. 여기에서 본질은 자연의 본질이 아니라, 환영을 만들어내는 사진의 본질이다. 자연적, 혹은 인공적 대상은 하얀 옷을 입고 조형적 대상으로 부활한다. 고전주의적 단순성은 환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드러낸다. 대상 뿐 아니라 바탕도 텅 비워 놓는 흰색은 보통 청결이나 기술적 명료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의 작품은 사진을 비롯한 예술이 자연이나 현실 그자체가 아니라, 자연과 현실에 의식적으로 접근하는 일종의 픽션임을 드러낸다. 픽션은 관례를 비롯한 여러 장치들로 이루어진다. 이 장치들은 현실성(reality)을 재생하려는 불가능한 기획을 포기한다. 예술작품에서 현실성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실과의 간격은 좁혀질 수 있지만 완전히 겹쳐질 수는 없다. 리얼리즘의 시대가 갔어도 여전히 사실주의적 환상은 가장 많이 사용되며,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은 사실로 인정받는다. 노세환은 그가 사용하는 환영의 장치에 이물감을 부여함으로서, 가상을 현실로 위장하는 편재하는 조작의 기술을 거부한다. 대신에 그는 사실과 꾸며낸 것을 섞는 기법을 통해 물질도 정신도 아닌 또 다른 현실과 접촉하려 한다.
출전; 월간미술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