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림희영 전(7.19-8.19, 갤러리 16번지)




우주+림희영 전 ‘핑크로드’는 전시부제가 의미하듯이, ‘분홍빛 판타지의 세계’를 현실화하는 장이다. 컴컴한 배경 속에서 작품들이 뿜어내는 서늘하고도 신비로운 기운은 8월 한낮의 이글거리는 더위를 무색케 한다. 전시장은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 놓인 문턱이 되기에 충분하다. 판타지 세계로의 몰입은 닫힌 구조의 압박이 강화되는 시대, 가능한 탈주의 한 방식이다. 원래부터 있었던 것인 양 자연스럽게 현실화시킬 수 있는 형식의 밀도와 판타지의 강도가 만났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기계들을 만든 이들은 설계자1,2로, 전시장 안쪽 공간에 둘의 초상화가 붙어있다. 로봇에서 꺼내진 인공심장처럼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서 빛을 발하는 기구들 사이에 걸린 초상은 전시장의 기이한 분위기를 주도한다. 구식 복장을 걸친 창백한 안색의 설계자들은 두 세계를 동시에 보려는 듯 사팔뜨기이며, 꼭 다문 입과 충혈된 눈가에서 풍기는 고집스러움이 서로 닮았다. 그들은 붉은색으로 칠해진 목각인형으로도 구현되어 있는데, 주물 인형 같은 정면성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전시장에는 설계자들이 만든 기계들이 각자의 시간주기를 타며 움직인다. 그들이 구상하거나 현실화시킨 기계들은 판타지의 생산이라는 기능을 가졌다. 오늘날 예술 기계는 부조리함이나 예외의 법칙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1층의 <춤추는 가면_어둠 먹는 기계>는 일렬로 배열된 뱀 같은 긴 돌기들이 시간차를 두는 연속 동작을 보여주는데, 마치 제의적인 춤을 추는 듯하다. 토템 기둥모양으로 서있는 2층의 <늑대의 침묵_비밀 지키는 기계>는 부채살 같은 날카로운 돌기들이 펼침과 접힘을 반복한다. 금속과 모터 등으로 만들어진 기계는 비의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지하 전시장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꿈을 대신 기억해 주는’ 작품 <나쁜 꿈을 꾸는 기계>는 시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나무 기계이다. 붉은 조명을 받는 집게발 움직임과 하이힐의 실루엣은 고통과 쾌락을 동시에 일으키는 기구처럼 생겼다. 벽에 걸린 드로잉에는 <남쪽 여행을 하고 온 기계>, <행복한 왕자 흉내 내는 기계>, <물새는 어항> 등을 위한 아이디어를 보여준다. 부조리한 기계의 항목은 끝이 있을 수 없다는 매력이 있다. 


전시장은 고요한 가운데 또 다른 현실을 욕망하는 기계들의 움직임으로 활기차다. 판타지를 목표로 만들어진 기계들은 낯선 분위기를 연신 피워 올린다. 투명한 기능성을 가지는 기계는 분위기를 깨지만, 이 전시에서 기계는 분위기를 생산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발터 벤야민은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기계복제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예술 작품 고유의 분위기(Aura)가 위축된다고 했는데, 오늘날 예술의 아우라는 기계를 통해 재창출되곤 한다. 꿈을 만드는 공장인 헐리웃이 대표적이지만, 기계를 다루는 예술가의 작업 또한 그렇다. 초상화나 목각 인형과 달리, 기계 작품들은 설계도가 완성되면 그 누구라도 똑같이 조립(복제) 가능할 것이다. 벤야민이 말했듯이,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 현재성, 곧 그것이 위치한 그 장소에 있어서의 일회적인 현존이 복제품에는 결여되어 있다. 전시회의 역할은 복제에서 빠져 있는 분위기를 다시 만들어내는 일이다. 부조리한 기계들에 내재된 강한 현존성은 예술작품에 버금간다. 이 아름다운 기계들에는 세속화된 종교의식이 있다. 그것들은 예술을 거슬러 올라가 마술과 종교까지 넘보는 듯하다. 

신이나 창조자 대신에 설계자라는 중성적인 표현을 쓰고 있지만, 그들은 계몽의 시대에 시계나 분수, 오르간을 응용하여 자동인형을 제작했던 불경한 과학자들과 비슷한 계열에 속한다. 우주라는 거대한 시계를 설계한 존재는 합리주의와 신비주의를 동시에 만족시키며, 근대 예술가의 한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기계는 합리주의 자체에 내장된 비합리적 측면을 드러내기에 적합하다. 최초의 목적은 잊혀 진 채 움직임을 지속하는 기계는 현세의 맹목적인 구조와 닮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완벽하게 설계되었지만 지금은 무엇에 쓰는지 알 수 없는 기계들은, ‘이성이 만들어낸 인간과 물건을 불신하도록 만들려는’(브르통) 초현실주의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전시장의 기계들은 설계자들의 뇌와 손에서 방금 생산된 것이지만 움직임은 느릿하고, 그 형상은 고풍스럽다. 여러 시대의 기호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기계는 예기치 못한 것들의 연결망을 통해서만 제대로 작동된다. 이 경이로운 기계들은 진부한 일상으로부터 판타지의 세계로 여행을 위한 특수한 예술 기계들이다. 

출전; 퍼블릭 아트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