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대범의 <something> 시리즈는 스테인레스 구의 한쪽에서 점도 있는 액체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형태로, 여러 갈래들이 서로 얽혀있거나 돌기들을 형성하기도 한다. 액체 형태가 뿜어져 나오는 정도나, 방향, 각도는 제각기 달라서 여러 작품을 동시에 놓고 보면 잠재적인 움직임이나 발생 과정이 보인다. 도깨비 방망이처럼 이것 또는 저것으로 변모할 수 있는 말 그대로 ‘something’이다. 오돌도돌한 표면은 포자나 씨앗처럼 보이기도 하고 미끈거리는 질감은 해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이 연상되든 금속의 응집된 형태에서 어떤 자극, 또는 상황에 의해 내부의 것이 분출하여 뻗어나가 퍼뜨려지는 것이 마치 바이러스 같다. 비록 덩어리진 모습이지만, 세균이나 어떤 기분이 일파만파 전염되는 듯한 확산의 기운이 중력을 초월하여 작품을 붕 띄워 놓는다. 작가는 생체나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서식하고 증식하는 바이러스를 염두에 두었다고 말한다. 

두 가지 대조되는 질감, 형태, 색채의 결합은 유기체와 기계에 공히 적용되는 바이러스의 생태학을 예시한다.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는 바이러스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현실과 가상공간 여기저기에 편재해 있으면서 메시지나 잡음을 퍼뜨릴 것이다. 흙으로 형태를 만들어 캐스팅을 하는 작업 자체에 복제라는 방법론이 내재해 있다. 바이러스에 침투되어 방어선이 무너진 개체는 변형되고, 그자체가 숙주가 되어 바이러스를 확대 재생산 한다. 생명공학과 정보공학이 발달된 오늘날 경계는 더욱 가변적인 것이 되었으며, 정상과 이상을 가르는 기준 역시 불확실해졌다. 유출이나 분출의 느낌을 주는 허대범의 작품은 경계가 침식, 와해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병리적인 것으로의 추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종은 어떤 극한의 상태에서 변종으로 거듭나며, 그것이 진화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다나 해러웨이가 [자연의 재발명]에서 말했듯이, 무엇이 단위로, 즉 하나로 간주되느냐 하는 문제는 영구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고도로 의문시되는 문제이다. 개체성은 전략적 방어 문제이다. 다나 해러웨이는 면역학의 예를 든다. 면역체계는 낯선 것에 반응함으로서 자신들을 인식한다. 면역학에서 생물학적 몸은 인공 지능, 언어, 의사소통 체계로 간주된다. 면역체계가 본적이 없으며, 내적으로 반영한 적이 없는 어떤 외부적 항원구조, 즉 어떤 침입자도 없다. 자아와 타자는 그들의 이항 대립적 성질을 잃는다. 해러웨이는 면역체계가 위협적인 비자아들에 의해서만 침범당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신의 낯선 부분들에 의해 침범당한다고 말한다. 허대범의 작품은 자율성을 이루는 건강한 개체를 침범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존재의 몸통 자체를 이루는 이질성을 보여준다. 오늘날 일관성 있는 주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해지듯이, 우리 안의 타자와 살아가는 방식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타자에 대한 방어체계가 너무 견고하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부족한 것이 오히려 병리적이다. 조르주 캉길렘이 [정상과 병리]에서 말하듯이, 질병이란 방위하는데 정신없이 몰두하는 것이다. 환자는 하나의 규범밖에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환자이다. 건강은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규범을 설정하는 가능성이다. 생물은 법칙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법칙들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존재나 사건 속에서 살고 있다. 유기체는 자신이 응해야만 하는 환경 속에 던져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유기체의 능력을 발달시킴과 동시에 그 환경을 구조화한다. 그렇게 본다면 질병처럼 보이는 것 역시 생명의 새로운 과정이다. 새로운 상상력과 실천으로 가득해야할 예술에서 다양성은 새로운 형태나 형식의 단서이지, 질병이 아니다. 허대범의 작품에서 파열, 유출, 분출의 이미지는 안정된 배치를 가지는 분명한 대상의 현존이 아니라, 감염 또는 오염에 의해 정체성에 닥친 위기가 새로운 경계를 만드는 과정을 예시한다.   

출전; 2012 수원신진작가 발굴전 (수원미술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