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수 전(10.20—11.15, 갤러리 압생트)

한진수의 ‘fantasy factor’ 전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배불뚝이 몸통에 붙은 작은 날개들의 퍼덕거림은 불가능한 목표에 계속 도전하고 있는 듯한 안쓰러움을 준다. 기계부품들로 이루어진 묵직한 몸통은 실재감을 주지만, 실재를 그럴싸하게 감싸주어야 할 표피는 등위에 살짝 얹혀있을 뿐이다. 옆구리 터진 김밥처럼 그것은 본질과 외관 사이의 차이를 극대화한다. 기능을 그대로 드러내야할 기계 위에 칠해진 색은 기계와 어울리지 않는 자연의 색이다. 벽에 붙은 드로잉들은 녹색 말고도 여러 종류의 스킨이 구비되어 있음을 예시한다. 어떠한 나머지도 없이 표면으로 모든 것을 배열해야 경제적일 수 있는 세상에서, 껍데기의 위력은 어느 때 보다 강력하다. 모든 것이 표면으로 기어오르면, 표면은 현실이 된다. 환상도 시뮬레이션도 현실이 된다. 생산력을 상징하는 기계는 녹색과의 결합으로, ‘녹색 성장’같은 역설적 표어도 연상시킨다. 전시에는 같은 형식의 기계가 작은 스케일로도 구현되어 있어, 멈추지 않는 이 기계는 확대 재생산이라는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드러낸다.
거품이나 유령을 상기시키는 기계의 얼굴은 실재가 아닌 환상이 이끌어가는 현실을 표현한다. 그러나 히죽거리는 듯한 또는 완전히 질려버린 듯한 기계의 표정은 이 모든 괴리들이 바로 우리의 현실임을, 현실은 이러한 괴리들 간의 역설로 이루어지고 작동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처럼 한진수의 작품은 여러 차원에서 습관화된 상식을 비틀면서 역설을 강조한다. 본래적 성질, 객관적 사실, 또는 절대적 진리와 같은 형이상학적 가치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달리, 역설은 하나의 본질에 안착하기를 거부하고 상이한 항목으로 계속 표류하는 것을 말한다. 리차드 로티는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에서 아이러니스트에게 서술은 발견하기가 아니라, 만들기라는 메타포에 의해 지배된다고 말한다. 아이러니스트의 방법은 추론이 아니라, 재서술이다. 그것은 한 용어에서 다른 용어로 매끄럽고도 재빠르게 옮겨감으로서, 놀라운 형태 전환을 산출하는 기법이다. 아이러니스트로서의 작가는 어떤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재서술을 지속할 뿐이다.
존재와 사고 간의 괴리는 아이러니의 특징일 뿐 아니라, 현대 언어학과 정신분석학을 관통하는 공통 주제이다. 한진수의 작품에서 중력의 지배를 받는 둔탁한 기계가 걸칠 날개옷들은 기의와 기표간의 차이를 극대화 한다. 어울리지 않은 이 조합은 기의와 기표의 관계가 안정적이지 않고, 매우 임의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지시대상과 결합될 수 있는 기표의 범위는 스킨의 무늬를 그려낼 수 있는 방식만큼이나 무한대다. 그것이 환상을 가능하게 하고, 기만도 가능하게 하며, 나아가 이윤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언어학이 규정한 기표와 기의의 조화로운 결속에 틈새를 만들어, 기표와 기의 사이에 빗장을 친 라깡의 학설에 의하면, 기표는 대상이 아닌 언어의 사슬만을 지칭할 뿐이다. 기표 아래 기의의 끝없는 미끄러짐을 야기하는 이러한 사슬은 의미화에 저항하며, 소외와 허무를 만들어낸다. 합일이 아니라, 기표가 다른 기표만을 지시할 뿐인 이 빈 공간에서 ‘fantasy factor’는 현실원리로 전화한다.

출전; 계간조각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