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달의 작품은 자신이 디자인하여 제작한 니트 패브릭을 하나의 개체(unit)로 만들어 연결하고 배열하여 새로운 형태를 만든다. 레고처럼 구조화된 단위로 조합하는 방식으로, 게임의 수는 무한대이면서, 개체의 소재가 섬유이기에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짜여 접혀진 것들은 구조와 형태 뿐 아니라, 텍스처가 있다. 그는 접고 펼치고 배치하는 방식이 더 유연하도록 단위를 독특하게 고안하였다. 유닛은 접힐 때 자연스러운 텍스처가 나올 수 있도록 짤 때부터 간격을 조절했다. 작품의 유닛 자체가 색상과 골의 간격에 따라 다르며, 하나의 유닛도 그것이 앞면인가 뒷면인가에 따라 여러 형태와 질감이 나온다. <유기적 개체 #f5b4, 2012> 등으로 붙여진 작품 제목에는 앞면이 몇 개, 뒷면이 몇 개라는 식의 정보가 약어로 제시된다. ‘유기적 개체(organic unit)’라는 전시부제는 텍스타일이 자율적인 형태를 이루는 이 전시의 성격을 암시한다. 

여기에서 자율성이란 구체적인 지시대상 뿐 아니라, 기능으로부터도 거리를 두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자율적인 형태들은 유연한 기능을 위한 실험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 유닛은 일렬이거나 정사각형을 기본 틀로 배치되어 있다. 각각은 모두 통일된 형식의 액자에 담겨져, 20여개의 액자 자체가 또 하나의 유닛이 되어 전시 공간에 배열된다. 유닛은 차원을 달리하면서 확장된다. 그는 ‘섬유의 선적인 재료를 이용하여 루프(loop)를 생성하는 순환과 반복적인 제작과정을 거친 하나의 표면적인 유기적 개체가 입체화되며 형성하는 조형미’(작가노트)를 추구했다고 밝힌다. 여기에는 선이 표면이 되고 다시 무엇인가의 표피가 되는 과정이 압축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순환과 반복은 ‘명상적인 고요한 마음, 즉 관조적 자세로 다양한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작가노트) 김성달의 작품은 고안된 유닛의 배열이라는 인공적이고 추상적인 면모가 있지만, 그가 받은 영감의 원천은 매우 자연적이다. 


가령 전선 위의 참새, 눈 위의 발자국, 시골집의 신발들, 처마 밑에 말려놓은 고추, 곶감, 시래기, 생선 꾸러미, 씨앗의 단면, 소원을 빌기 위해 쌓아놓은 돌, 오래된 돌담길의 리듬 등이다. 그것들의 공통점은 자연 또는 자연화 된 삶에서 발견되는 무수한 겹과 결이다. 순환과 반복으로 짜여진 단위가 구조를 이루는 작품의 주요 색상은 흑과 백, 아이보리, 베이지, 브라운 등이며, 색채가 잔잔한 대신에 명도 대비를 크게 해서 겹과 결의 느낌을 살렸다. 이러한 리듬과 색채를 통해 시간의 흐름이 쌓여있는 공간이 탄생했다. 짜기와 접기라는 그의 기본적인 방법론은 시간의 공간화가 일어나는 장(場)이다. 짜기라는 시간적 질서는 접기에 의해 멀리 떨어진 공간들 간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연속성과 불연속성은 서로의 조건이 된다. 작품은 자연적인 것이든 인공적인 것이든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들로부터 매혹된 산물이다. 

질서 있게 놓인 것들은 압축된 용수철이나 당겨진 활시위처럼 그 안에 에너지를 함축한다. 손안에 잡힐 수 있는 크기로 접힌 유닛들은 액자 안에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으며, 때로 낱개 단위로 정성스럽게 포장된 선물 같은 느낌도 준다. 그는 자연적, 인공적 사물의 결과 겹을 섬유의 그것과 중첩시킨다. 짜진 패턴이 접히고 배치되는 여러 과정을 거치는 그의 작품은 최종적인 산물로만 보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상상하기 힘들다. 겹과 결의 복잡한 구조는 그저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패턴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에 의해 확정된 유닛의 조합은 다양한 상상으로 가지를 친다. 그의 작품은 하나의 추상적 패턴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계열로 확장되는 것이다. 픽셀에 해당되는 루프를 계속 만들어 가는 것이 니트이기 때문에 그것은 만물을 분리나 대조가 아닌, 하나로 엮는 세계관과 조응한다. 자연의 재현이 아닌 자연의 내재율을 모방하는 그의 작품은 현대적이지만, 이슈를 만들어내기 위한 의도적인 기괴함이나 난해한 개념에 탐닉하기 보다는, 오래 입을 수 있는 옷 같은 편안함이나 잘 정돈된 것들이 주는 잔잔한 조화를 추구한다. 

김성달의 니트로 만들어진 작품은 반복이 만들어내는 차이로 이루어져 있다. 현대철학에서 반복과 차이는 재현과 대립되는 개념어이다. 재현주의는 현대예술에서 이미 극복되었다고 믿어지지만, 현실 속에서 여전히 지배적 질서로 작동한다. 그의 작품은 구체적인 대상이나 자연 현상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동시에 연상되기도 하지만, 대상이나 현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관객의 지각과 기억, 경험에 따라 무엇인가와 느슨하게 연결될 뿐이다. 닮음과 비슷함의 계열은 무한히 열려있다. 질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에서 말하듯이, 재현은 동일성에 근거하지만 반복은 차이에 관련된다. 차이는 반복 안의 한 질서로부터 다른 질서로 옮겨가게 해준다. 반복과 차이는 겹겹이 쌓여진 비밀처럼 나타난다. 김성달의 작품은 지시대상과 의미를 연결 짓는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거듭해서 해석이 이루어져야 할 수수께끼로 다가온다. 여기서 반복은 자신을 위장하는 동시에 형성한다. 

짜이고 접혀져 상자 안에 배열된 방식은 그의 작품을 봉인된 것으로 다가오게 하며, 한 꺼풀씩 벗겨나가는 해석을 요구한다. 그것은 어떤 기호들과 부딪히는 마주침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반면 재현(표상)으로만 고착되는 기계적 반복은 자동화된 노동과 일상에서 전형적이다. 이러한 기계적 반복은 프로이트가 말하듯이 죽음본능과 밀접하다. 반복과 죽음의 연결고리는 그것이 무기물질을 향한 회귀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표상의 요구들에 종속된 기계적(또는 헐벗은) 반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삶과 죽음을 대립시키는 이원론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하나의 연결고리로 죽 이어지면서 반복이 짜여가는 니트는 모든 이항 대립의 끝과 끝을 만나게 하는 일원론과 더욱 밀접하다. 하나의 올이 죽 연결되어 판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접혀 다양한 것을 형성하는 김성달의 작품은 들뢰즈가 [천개의 고원]이나 [주름]에서 강조하듯이, 이원론/일원론=다원론 이라는 마법적인 공식에 도달하게 한다. 

일자는 다양체를 포괄하고 다양체는 일자를 계열의 방식으로 전개하는 통일성을 보여준다. 변화하는 곡률로 펼쳐지는 세계인 김성달의 작품은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미로를 이룬다. 거기에는 단자 같은 하나의 세계 안에 무한한 차이 혹은 다양함을 긍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의 작품은 실의 짜임과 접힘으로 이루어진 여러 차원의 부조적질감이 만들어내는 세계이며, 이 세계는 정도에 따라 구별될 뿐이다. 단자처럼 오롯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는 김성달의 작품 역시 수렴하거나 또는 발산하는 무한한 계열들을 가진다. 그것은 또한 모든 가능성을 포괄하는 시간의 짜임이며, 이 짜임이 미로를 형성한다. 이러한 미로는 혼돈이 아니며 하나의 계열이다. 계열은 뒤따라 이어지는 것으로 연장된다. 김성달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조화는 다양성 내의 통일성, 즉 다수성이 규정가능한 통일성으로부터 비롯된다. 세포나 씨앗처럼 보이기도 하는 오롯한 세계들의 집합은 단자(單子)와 비교된다. 


들뢰즈는 [주름]에서 단자는 세계를 무한하게 작은 것들의 무한 계열로 포함한다고 정의한다. 단자들 자체에 조화가 있다. 김성달의 작품에서 단자들은 분리되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짜기만큼이나 접기가 주요한 방법론이다. 접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조형성이 나오며, 그것은 동시에 하나의 세계로부터 무한히 많은 것들이 태어나는 방식과 같다. 평평하게 짜여 진 니트 패브릭은 접기의 방식에 따라 복잡한 형상에 도달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주름]이 말하듯이 언제나 접기, 펼치기, 다시 접기 이다. 들뢰즈에 의하면 접지술, 즉 종이 접는 기술은 물질의 과학을 위한 모델이다. 이 모델에서 물질과 생명, 유기체 간의 친화성이 예감된다. 가령 그것은 습곡과 함입을 만들면서 형태 발생적으로 운동하는 알(卵)에서 발견된다. 씨 또한 무한히 하나가 다른 하나에 감싸여 있다. 이러한 방식은 애벌레 안에 접혀 있다가 나비로 펼쳐지는 곤충들에서도 볼 수 있다. 그것들은 모두 이형적으로 완전 변태한다. 복합적이고 뒤섞여 있는 김성달의 작품은 이러한 유기체적 주름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그의 작품에서 많이 발견되는 유기체적 선들은 환원할 수 없는 복수성을 지닌다. 그의 작품은 유기체를 닮는 지점은 이 환원될 수 없는 개체성을 통해서이다. 변곡의 변형들로 이루어지는 주름들은 연장 또는 증식에 의해 만들어진다. 작가는 주름으로 변동을 만들고, 작품에는 주름 또는 변동을 무한으로 실어 나르는 변곡이 있다. 이 연속체는 미로이며 직선에 의해 표상될 수 없다. 언제나 직선은 곡률로 뒤섞여 있다. 들뢰즈에 의하면 생명체의 경우에는 진화와 함께 유기체의 전개와 더불어 변형되어가면서 무엇인가를 형성하는 내부의 주름이 있다. 이 힘은 덩어리를 유기체로 조직한다. 유기체는 원초적인 주름, 접힌 것, 접기이다. 차이를 발생시키는 접힘과 펼침의 운동이 바로 분화이다. 접기는 어떤 역량 안에 내포되어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새로운 접기의 방식은 무한하게 나아가는 주름을 만들어낸다. 펼침 역시 접힘의 반대가 아니며, 주름들에서 다른 주름들로 나아가는 운동이다. 펼침은 접힘의 소멸이 아니라, 접힘의 연속 또는 확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