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와 예술을 연결시키는 하나의 키워드는 소통이다. 소통이 되어야 공동체를 이룰 수 있고, 예술 또한 소통되어야만 한다는 지상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소통이라는 것이 정보화 사회의 소통 인플레 현상 속에 파묻혀 진실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통이라는 매개 고리로 엮일 수 있는 커뮤니티와 예술은 서로 조화되기는커녕, 그자체가 문제시 될 수 있는 개념이다. 커뮤니티고 예술이고 절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거나 스며드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다. 다수가 대도시라는 중심에 몰려 살기를 원하고, 교통과 통신수단을 통해, 무엇보다도 생산력의 혁명을 통해 그 가능성이 열린 현대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자연의 범주를 넘었기 때문이다. 익명적 다수가 무한 경쟁 속에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전력 질주하는 현대사회에서, 공동체란 애써 구축해야할 잃어버린 가치이지, 자명하게 존재하는 선험적 가치가 아니다. 

타인과 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지는 이제 확실한 것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학교화 된 - 청년기 대다수가 오랫동안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그렇기에 개인에게 온통 전가된 비용을 벌어야 하는 부양자들 또한 학교에 얽매여 있다 - 질식할 듯한 ‘계몽주의’ 사회에서, 공동체같은 하나 되기에 대한 요구 또한, 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당위적 도덕 중의 하나로 다가 오기도 한다. 오히려 현대사회는 하나 되기가 아니라, 차이를 추구한다. 유기적 전통사회에 기초한 공동체에 대한 목가적 상상과 달리, 실제적으로는 공통의 이익, 또는 공동으로 당면한 위험만이 공동체라는 것을 만들게 한다. 그러나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거한 허위의식은 공동의 이익이나 위험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조차도 실제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자신을 더욱 궁핍하게 하고 궁지에 몰아넣는 정치 세력에게 자발적으로 표를 던지는 일도 흔히 일어난다. 

사회야 어떻든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은, 자신의 불운을 사회 탓으로만 돌리는 부류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인간 사회의 출발에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하나가 된 범죄적 집단이 있었으며, 세계화에 의해 유래 없는 한 줄 서기가 가능해진 계층화된 세계에서, 공동체란 타락한 이익집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상징적 우주 속에서 하나가 된 공동체의 효과적인 소통 수단이었던 예술--물론 당시에는 예술이라는 개념도 제도도 없었지만--역시 근대를 거치면서, 공동체처럼 변형을 겪었다. 근대적 분업화 이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자율화를 걸어온 예술 역시 학습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소통을 위한 물건 하나를 사도 우리는 두터운 매뉴얼을 숙지하려하는데, 예술이 가만히 있어도 내 앞으로 찾아오고 아무런 노력도 없이 이해되어야만 한다는 생각 역시 부당하다. 예술이든 공동체든, 그 무엇이든 기대하고 준비되어 있을 때에 효과적인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 대가를 치른 것만이 진정 자기화 될 수 있다.

예술을 통해 수동적 소비에 불과한 것들을, 삶을 고양시킬 수 있는 실제적 가치로 전환시킬 수 있다. 대중소비사회 속에서 예술은 적극적인 생산의 영역에 속한, 그래서 가치 있고 동시에 어려움에 처한 것들 중의 하나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예술가들은 작업실에서 홀로 작업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그 토대를 만드는 일에 합세해야 할 것이다. 자연과 무의식, 몸까지 인위적으로 코드화 되고 있는 세상에서, 무엇 하나 소통(유통)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소통이라는 것이 진정 필요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라 인정된다면, 그것을 위한 목적의식적인 노력과 의지가 있어야 하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제도가 필수적이다. 커뮤니티와 예술의 관계를 활성화하려는 제도적, 또는 자발적 노력은 공공영역에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줄 수 있는 효과적인 아이템이다. 

그것은 교육이나 복지 분야 못지않은 필수요소이다. 그러나 커뮤니티와 예술의 관계에 놓인 근본적 어려움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소수에게만 이해받고 소유되며,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소외된 ‘저주받은 천재’가 창조한다고 믿어지는 현대예술의 상황이 공동체를 주변화 한다. 또한 공동체는 문화까지는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에 머물러있는 문화를 넘어 생산으로 고양되는 예술까지 그 관심과 여력이 닿기 힘들다. 나른한 소비만을 부추키며, 그러한 소비를 위해 기계처럼 노동할 것만 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몸과 두뇌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예술은 그 전공자들이나 관계자들조차 따돌리기 일쑤이다. 작업을 너무 열심히 하다보면 그가 유일하게 속해 있다고 믿어지는 예술계에서 조차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예술 전체가 타자화 된 현대사회에서, 예술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회에서 배제되기 십상이다. 

현대사회는 소비자로서만 인간을 사회에 원활하게 통합시킨다. 그가 소비자를 넘어 뭔가 진지하게 생산하려는 순간, 사회는 배타성을 강하게 작동시킨다. 공동체라는 것이 도래해야 한다면 단순한 소비를 넘어서는 영역이어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생산과 소비가 원활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에서이다. 물론 타자의 억압을 낳을 수도 있는 사회의 잉여가치를 무한대로 소모하는 축제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그러한 상징적 교환은 상업주의의 회로에 복속되어 있거나, 전쟁이라는 파국적 방식으로 이루어지곤 한다. 공동체에게는 정치, 경제 등 더 중요한 당면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외에 예술 또 필요한 이유는 예술은 같은 내용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밀도 있는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형식이 자율화되어, 예전에는 알았으나 지금은 다 까먹은 수학공식같이 난해 것이 되기도 하지만, 한 분야가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해 온 역량을 무시할 수 없다. 

그 언어를 전문적으로 학습했을 뿐 아니라, 재능과 의지를 통해 예술적 언어를 체화한 재원들 또한 존재한다. 그들도 사회의 구성원이며, 또한 사회의 소수자로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지속 가능한 작업과 삶을 위해서는 예술가 공동체만으로는 힘들다. ‘--협회’ 따위로 이름 붙은 제도화된 예술 단체는 정치화된 이익단체로 타락하는 경우도 많다. 공동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술을 필요로 할 것이다. 어떤 문제를 같이 해결하기 위해서, 또는 좋은 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진한 소통의 형식으로서의 예술은 효과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문화를 포함한 영향력 있는 예술가는 단순한 소비자 대중이 아니라, 다중을 집결시킬 수 있다. 오늘날 공동체는 다중처럼 어떤 이슈를 통해 순간적으로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예술은 순간적이지만 강렬한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수단이자 그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다. 예술과 공동체는 상호작용하면서, 지속 불가능한 것에 지속성을 부여할 수 있다. 

예술로 인해 공동체는 표현을 얻게 되고, 공동체로 인해 예술은 삶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 표현들이 경합하는 시대에, 성공적인 표현은 생존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표현은 단순한 수단이나 장식을 넘어선다. 공공영역에서의 예술적 소통을 통해, 고립된 현대예술은 대중성과 공공성이라는 날개를 달 수 있는 무대를 가질 수 있다. 또한 예술은 하나의 보편적 언어를 추동하는 사회에서 그 이질성으로, 획일적 사회에 대한 대안을 창출하기 위한 보고가 되기도 한다. 유통으로 전락한 소통 만능주의 시대에서 공공영역에서의 소통은 이미 있는 것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실험이고 창안이다. 이 대목에서 공동체와 현대예술은 만나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 사이의 괴리에 현대사회의 진정한 모순이 놓여있다. 그래서 문화에 있어 생산과 소비 사이의 괴리를 줄여보려는, 오늘날 공공영역에서 시도 되는 예술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급진적인 개념을 내장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로선, 커뮤니티고 예술이고 그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극도의 개인주의를 부추키는 신자유주의 사회, 차이가 차별을 낳는 물신주의가 작동하기는 하지만, 예술에게 그 기회가 돌아오지는 않는 현대사회에서, 공동체와 예술은 모두 바깥에 있는 타자인 것이다. 둘 다 유일 화 된 시장의 체계 속에서 억압받는다. 둘 다 잠재적으로는 충만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빈곤하다. 현대사회에서 공동체와 예술이 당면한 공통적인 어려움이 양자를 묶을 수 있게 하며, 이러한 묶음에 의해 서로를 고양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예술은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공동체 또한 예술을 활성화할 수 있다. 그때 예술은 질곡의 현상을 반영(재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통해 잠재적인 집단을 현실적인 집단으로 전화시킬 수 있다. 예술 또한 공동체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공동체와 예술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이러한 필요가 효과적으로 충족되었을 때,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처한 근본적 모순은 사회적일 뿐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출전; 지역공동체 문화 만들기-공동체 포럼(인천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