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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 미술유적답사

최열

최열

미술평론가

인명사전 바로가기 : www.daljin.com/author/796 미술평론가 최열(b.1956)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학예실장(2008-2010),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2010-2011)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2010-2012)역임하였고 <월간미술대상 저작상(2010)>, <정현웅연구기금(2012)>을 수상한 바 있다. 도서정보 바로가기 : 옛 그림 따라 걷는 서울길, 옛 그림 따라 걷는 제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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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자하연

관악산 자락 일대를 점거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교정에 들어서면 언제나 나는 자하연(紫霞沿)을 찾는다. 몇 해 전부터 이 학교 강의를 맡아 학기 중이면 매 주 출근하다시피 하거니와 여름방학이 끝난 9월 1일 들렀더니 낯선 풍경이 맞이한다. 연못 가에 신위 동상을 얹은 기념비가 우람하게 선 것이다. 관악산에서 신림동 쪽으로 흐르는 신림천 계곡을 일러 북자하동 계곡이라 하는데 오늘날 서울대학교 정문으로 통하는 길이다. 바로 이곳이 신위(申緯1769-1845) 가문의 세거지였다. 17세기 어느 땐가 평산신씨 신여석 (申汝晳), 여철(汝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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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이하응 운현궁

이하응은 19세기 후반 최고의 사군자화가였다. 그의 호를 딴 석파란(石坡蘭)은 당대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거니와 21세기인 지금에도 여전히 빼어난 자태를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너무도 많은 애호가가 즐비하여 위작이 진작보다 훨씬 많을 지경이라는데 실로 그럴만한 가…

(8)김정희 고택

김정희는 지난 해 서거 150주년 행사가 이곳저곳에서 열려 애호가와 지식인 사이에 존숭하는 분위기가 한껏 드높여졌다. 육중하면서도 날카롭고 강렬한 기운의 서예가이자 묵란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유홍준의『완당평전』덕분에 애호가가 급증했던 탓인지 행사장마다 인산인해를 …

(7)최순우 고택

최순우라는 이름은 나에게 한국의 아름다움을 위해 살아간 사람이란 뜻으로 남아있다. 송도고보를 졸업하고 곧바로 고유섭을 스승으로 우러르며 조선고적에 탐닉한 그는 해방 뒤 국립박물관에 몸담은 이래 생애를 오직 한 길로 내몰았다. 유물을 조사하고 연구하여 글을 쓰고 전시를 …

(6)권진규 작업실

흔히 미아리고개라 이르는 곳, 동선동 언덕 배기에 권진규 작업실이 자리잡고 있다. 곁에 사는 성신여대 사람들조차 모르는 데 멀리 사는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 아니 아예 권진규란 이름을 들어 본 일이 없을 터이다. 미술을 전공으로 삼는 미대생에게 물어보면 열이면 열, …

(5)환기미술관

언제나 넘나드는 길목에 내가 좋아하고 또 잘 아는 사람이 머물고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가. 경복궁 뒤쪽 청와대를 지나 백악산을 끼고 고개 길 오르다 보면 장의문이 나온다. 북악스카이웨이로 접어드는 길목 왼쪽으로 샛길이 있는데 접어들어 곧장 내리막길을 바라보면 환기미술관 …

(4)이대원(李大源1921-2005) 고택

멋진 차림새만큼이나 빼어난 품성을 지닌 화가들이 머물렀던 곳이 혜화동이다. 이대원은 열 다섯 살 때인 1935년에 이곳 혜화동으로 옮겨왔다. 그로부터 2005년까지 무려 75년을 머물렀는데 1945년 6월 성균관에서 이현금 여사와 결혼하고 1947년에 또 한 채의 건물…

(3)장욱진(張旭鎭1917-1990) 고택

1960년 명륜동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이야 개울은 보이지 않고 울긋불긋 번화함을 넘어 환락가와도 같은 요기가 넘치고 있지만 그 시절엔 대학가였고 그 뒷켠은 고즈넉한 주택가였다. 문득 문득 막걸리집이 옹기종기 모인 골목마다 왁자지껄 하였으되 통행금지가 있던 시…

(2)도상봉(都相鳳1902-1977) 고택

도상봉이 명륜동에 정착한 때가 1930년이니 지금으로부터 꼬박 78년 전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1977년 가을 세상을 떠나셨으니 또한 30년 전이다. 한 달 전 발걸음 옮겨 가보았더니 주인은 간데 없어 아득한데 길 건너 성균관 명륜당 지붕은 여전했다. 왜 이토록 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