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회장 김달진)는 <밖으로 나선 아트아카이브: 연구 硏究> 릴레이강연으로 '퍼즐 맞추기, 발굴된 이중섭 작품사진 아카이브'란 주제로 김미정 이중섭카탈로그레조네연구팀 선임연구원의 강연을 10월 12일,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 진행했다.
아래는 강연내용의 일부이다.
- 처음부터 많은 교양인들과 함께 했다. : 그의 전시방명록이 직접적인 증거가 되어준다.
- 이영진(이중섭의 조카)이 많은 자료를 잘 관리해주었다. : 그는 2016년 타계했다.
- 10월말에 그간의 결과물을 확인하기 위해 500여 점의 작품을 예술경영지원센터를 통해 1차 공개할 예정이다.
- 박수근이 독학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반면, 이중섭은 당대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이로 인해 자료의 형태와 양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중섭의 참고문헌만 1,000여 편이 있다.
- 이중섭은 1943년 경성에도 있었다. : 이쾌대와 함께 찍은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은지화는 1952년 6월 이후부터 제작되었다.
- 원화랑 정기용 대표가 인천의 유력자였던 노상덕으로부터 이중섭의 작품 <길 위의 청년>, <세 아이>를 구입했다.
- 1953년 후반부터 54년까지 작품이 잘 된다라고 아내에게 써보낸 편지가 있다. 그는 1955년부터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 6회 대한미협전(1954)에 대한 신문기록을 보면 이중섭이 많이 언급됨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 전시 후 이중섭의 작품을 촬영한 사진이 존재한다.
- 작품필름을 통해 보면 그간 책의 도판으로만 알고 있던 작품들의 새로운 면모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 스케치북에 그려졌던 작품들로 스프링 자국들, 표구작업 중 잘려나간 작품의 여백들 등
- 정신분석드로잉과 같이 사진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 할 수 있는 이중섭의 자료, 작품들도 많이 있어 진행해야할 연구가 남아있다.
- 연구 중 국가기록원에서 관리하는 영상물 중 '대한뉴스 872' 말미에 이중섭의 전시가 소개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작품을 추적할 수 있었다. 영상(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