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비오 칼베티: 위로를 건네다.
2017.10.03-2017.10.29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점차 서늘해지는 기운의 이 계절은, 붉은색의 강렬함이 돋보이는 파비오 칼베티의 작품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 색감 때문인지 마치 그림들은 흑백에 붉은색만 강조해 둔 듯 보이기도 했다. 혼자 보기에 좋겠다는 생각에 오늘은 동행인 없이 예술의전당으로 향했다.

(사진) 여행의 의미, 2017 / 우주, 2017
전시장 입구의 장막은 본격적인 시작을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장치다. 무엇보다 먼저 첫 작품이 바로 <여행의 의미> 였다. 플랫폼은 끝을 의미할수도 시작을 의미할 수도 있었지만 첫 작품이라서인지 시작의 의미가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위로를 전하는' 이 전시는 그것을 위해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눴는데, 첫 부분이 '예술가는 철학적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 말하는 작가의 의미를 담은 [여행 Travel] 이다. 전반적으로 서정적이고 이야기의 한 부분 같은 느낌의 작품들은 나무판넬에 캔버스를 씌우지 않은채로 그려졌고, 콜라주 기법으로 주제를 던져주거나 그림이란 틀을 벗어나 상상하게 했다.

(사진) 현실과 상상, 2017
두 번째 부분은 [도시 그리고 고독] 이다. 여행에 연결되어 시계까지 둔 공간에 우리가 모두 도시인으로 작품들에 감정이입 되기를 바라는 것이 느껴졌다. 파비오 칼베티의 이번 전시들에 대부분의 모델은 여성이었는데 이들은 특별한 대상이 있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 상상의 인물이라고 했다. 인물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등을 돌려 정면을 보지는 않았는데, 이러한 이유로 관찰자는 그들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고 자신을 대입하기 좋아 보였다.

(사진) 황홀함, 2016
의자가 돋보이는 세 번째는 [공감 Sympathy]이다. 이 부분에는 의자들이 그림의 중심에 등장했다. 특히 내 눈을 잡아 끈 것은 화면 안쪽에 조명을 장치한 작품이었다. 빛이 보여지는 부분이 겉 화면의 긁은 효과와 더불어 마치 상처처럼 보였는데, 그것이 우리가 겪는 아픔과 상처가 긍정적인 무언가로 승화됨을 이야기하는 듯 했다. 지금 아프지만 이것이 먼 미래에 나에게 빛이 될 것이라는 위안이 느껴졌다.
이 부분의 공간 중앙에는 의자를 두어 작품에 대한 흐름을 깨지 않고 관찰자를 작품 속으로 초대하고 있다.

(사진) 하루의 끝에서, 2017 / 엮인 얘기들, 2016
네 번째 부분은 [나를 위한... For myself]이다. 이 부분의 작품들은 연결된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다는 기획자의 말처럼 각자 나름의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는 구성으로 걸려있었다. <엮인 얘기들> 작품의 빨간 커튼이 바람에 나부끼는 창문들 사이, 시 두 편이 오려져 붙어있다. 작가가 가장 좋아한다는 시인인 페르난도 페소아 Fernando Pessoa의 시들이다. 왼쪽은 Ameacou chuva. E a negra 이고 (제목출처 : http://arquivopessoa.net/textos/4537), 오른쪽은 Sopra de mais o vento 이다. (제목출처 : http://arquivopessoa.net/textos/4542) 포르투갈어로 적혀있어 내용을 이해하진 못했다. 대신 검색을 통해 알아본 바로, 리스본의 대표시인인 페르난도 페소아의 시는 작품들처럼 슬픔과 어두움 그리고 서정성을 담고 있으며 그의 시 또한 칼베티의 그림처럼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에 머물러 있게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삶임을 인정하도록 한다고.

(사진) 꿈꾸는 것, 2017 / 정말 많은 숫자!, 2016
먼저 작품을 그리고 후에 개별 판넬들의 위치를 맞춘다는 작가의 작업방식에서 <꿈꾸는 것>과 같은 사각형에서 벗어난 작품들도 등장했다. 작품들은 특정색을 가리고 보는 방식 뿐 아니라 개별 판넬들 하나하나를 따로 두고 보는 재미도 있다. 이러한 구성은 좀 더 원시적인 혹은 전통적인 분위기를 내면서 또 한 편으로 현대적인 느낌도 주고있었다.
다른 작품에는 체르탈도가 고향이라는 작가의 고향풍경도 등장했는데,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 다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드로잉 / 우주, 2017
끝으로 가자, 전시가 시작되기 얼마 전 작가가 직접 들고왔다는 드로잉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이들은 작가가 작품구성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보여주는 예시로도 볼 수 있다고한다.

(사진) 떠나기엔 이른, 2017 / 전시 마지막 부분 벽면 중
이제 전시의 마무리. <떠나기엔 이른>이란 제목의 작품이 마지막에 있다니. 저 의자에 앉아 좀 더 머물다 가기를 바라는 듯 보이는 건 나 뿐은 아닐 것이다. 그 뒤로 벽에는 [괜찮아, 너는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It's okay, you're doing great.] 라고 붙여 전시 전체가 담고있는 위로의 메시지를 강화한다. 직설적이어서 거북할 수 있지만, 찬찬히 그림들을 보다 도달한 벽이라 그런지 조금은 울컥하기도 한다.

(사진) 전시 마지막 부분 벽면 중 / 티켓과 함께 준 엽서
기획자는 전시 전 설문조사를 통해 '위로'에 관해 떠오른 말들을 모았다고 했다. 그들이 벽에 걸어둔 관련어들에는 고개를 주억거릴만한 말들이 많이 보였다. 전시 입장시 함께 준 엽서에 편지를 써서 전달하면 전시가 종료 100일 후 적어둔 주소로 보내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 전시가 종료된 100일 후에도 다시 전시를 떠올리면서 위로받기를 바란다는 엔딩멘트가, 서늘한 날씨에 전시가 잘 어울리는 이유 하나를 더 더해줬다.
사진.글.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