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
@DDP
2019.06.06-08.25
오랫만에 DDP를 찾은 건 폴스미스 때문이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하나인 폴 스미스의 개인 아카이브를 가져와 이루어진 전시가 진행중이었다.

(좌)전단지들
(우)당시 매장에서 찍은 사진
입장과 함께 눈에 들어온 분홍색 작은 공간은 1970년 영국 노팅엄 바이야드 레인 6번지에 오픈한 '폴 스미스 남성을 위한 정장'이란 이름의 매장을 체험하게 해준다. 가로세로 약 3m에 창문도 없는 방이었던 당시 크기로 구성된 공간 안에 그의 아카이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가 어시스턴트를 했던 Birdcage의 전단지와 그곳에서 나와 처음으로 연 자신의 첫 공간을 알리는 전단지. 그리고 1973년 이사해 정식으로 주 6일 오픈하는 매장이었던 두 번째 매장에 관한 전단지까지 있었다. 생계를 위해 주 5일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주 2일은 매장을 오픈했던 그의 시작이었다. 각 자료에 캡션은 폴이 직접 찢어서 적은 메모들이 인상적이다.

(좌)첫 번째 컬렉션을 선보인 파리의 호텔 객실을 폴스미스 디자인팀의 재현작업물.
(우)폴 스미스의 모든 매장은 모두 직접 그들이 디자인하며, 단 한 곳도 같지 않다고. 무수히 걸려있는 매장 이미지.
그의 첫 번째 컬렉션은 파리 한 호텔의 객실에서 선보였다. 마치 호텔아트페어를 연상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침대 위에 펼쳐진 그의 첫 컬렉션은 셔츠 6벌, 점퍼 2벌, 슈트 2벌이었다고 한다. 꾸튀르 쇼에 참석하는 언론과 구매자를 초대했고, 며칠 선보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지막 날에야 방문한 딱 한 명의 손님으로 그의 사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시를 더 보다 보면 그의 쇼와 쇼를 만드는 과정 같은 걸 영상으로 볼 수 있는데, 그의 첫 쇼는 친구의 작은 아파트(flat)에서 가구를 옮기고 친구들을 초대해 열렸다. 모델도 도우미도 친구들이었고, 샴페인은 동네 슈퍼마켓에서 사 왔단다. 지금의 쇼에서 그때의 모습을 유추할 수는 없지만, 당시 컬렉션을 그림으로 입체처럼 전시한 모습에서 조심스럽게 상상해본다.

(좌)런던 코벤트가든에 있는 사무실의 재현작업물.
(우)전시 뒤편에 쇼의 과정을 담은 영상에서 나온 실제 사무실.
그의 사무실을 재현한 모습에 실제 쓰는 사무실인가? 의문이 들었는데 전시 뒤편으로 가면 실제 사무실의 촬영분이 존재해서 비교해볼 수 있었다. (실제 사무실은 더 복작복작이다) 실제로 뭔가 잔뜩 쌓인 저 의자엔 앉아본 적 없다는 대목에서 문득 '청소는 누가 하는 거지?' 싶은 생각이... 쓸데없이 든다. 어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완전히 깨끗하게 정리된 방보다 어수선하게 정리되지 않은 방에서 창의력이 잘 발휘된다던데.. 그의 여행 전리품(?) 들이 그와 그의 팀에 한몫을 하는 게 분명하다.

(좌)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버튼월
(우)Inside Paul's Head
모든 것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폴은 사진을 찍고 수첩에 담고 스케치 하며 단어와 전화번호를 기록한다. 아카이브 전시이기에 그의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과 기록하는 방법, 즉 실제 작업의 전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보여줄 거라 생각했는데. 이 Inside Paul's Head 영상 설치 작업은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내 머릿속으로 그가 본 것과 영감을 입력받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찍은 사진들이 등장하고 바뀌고 그 와중에 그의 목소리로 어떤 것들을 보고 있는지, 그 관찰을 통해 영감을 받는지 보여준다. 멍하니 계속 보게 되고 흥미롭고 재미있는데 오래 있으면, 조금 힘들만 한 방이었다.

(우)폴스미스 아버지 해롤드 B.스미스(1903-98), 1998 / 아버지 소유의 롤라이플렉스(Rolleiflex) 카메라, 1958
(좌)코벤트가든의 사무실 벽과 지하실에 모아 놓은 컬렉션 중 일부
그의 머릿속을 나와 그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카메라를 볼 수 있다. 사진을 직물에 인쇄한 초기 디자이너 중 한 명인 그에겐 아버지가 큰 영향을 준 모양이다. 그의 아버지가 코닥 레티나 카메라를 사주었던 11살 무렵부터 사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던 아버지의 작업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사진 프린트 셔츠는 지금 봐도 꽤 멋지다.
그리고 그런 폴이 10대부터 프린트와 사진을 수집한 연장선으로, 알려진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많은 예술가의 작품들과 친구 혹은 팬들로부터 받은 것까지 다양하게 걸려있다. 캡션이 일일이 붙어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공간이다.

(좌) 일반회사 제품에 진행된 폴스미스 시그니처 작업들
(우) 폴스미스가 2009년 에비앙과 함께 한정제작한 생수병

(좌)폴스미스의 첫 콜라보레이션 작업이었던 로버(Rover)의 미니(Mini)
(우)2005년 콜라보레이션 작업한 트라이엄프 본네빌(Triumph Bonneville) 모토사이틀 9대 중 하나
이어서 펼쳐진 건 그에게 자극과 도전정신을 더하는 콜라보레이션 작업이다. 꽤 찾아봤다고 생각했는데 전시된 제품들을 보니, 그가 생각하는 협업의 한계가 무한하다는 느낌이다.

(좌,우) 디자인스튜디오 재현
재현된 스튜디오에는 디자이너가 활용할 수 있는 많은 아카이브를 펼쳐두었다. 과거 프린트 디자인과 의상 패턴, 빈티지 디자인 북, 컬러 스와치와 실, 테마 이미지와 패프릭 도서관이 있다. (물론 당연히 컴퓨터도) 프린트 디자이너나 구두 디자이너 등 여러 분야의 디자이너가 참고할 자료들이 이렇게 전시를 위해 섞여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모양과 텍스타일 디자인에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직종이 모여야 아이디어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폴스미스의 많은 제품이 그런 듯 가죽에도 패턴이나 스탬프 등이 들어가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사진)폴스미스 컬렉션
폴의 실제 패션 작업이 유일하게 등장하는 건 전시의 거의 끝 무렵이었다. 이번 전시가 아카이브 위주의 전시였기에 보기 어려울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아쉬운 대로 그의 컬렉션들을 보고 넘어갈 수 있다.

(좌)첫 매장 공간에 걸려있었던 사진과 그가 이번 전시를 위해 방한해 남긴 서명
(우)벽에 겹겹이 걸린 패턴을 지나면 마지막 방의 전시공로자들의 이름이 나온다
자신의 성공이 아내 덕분이라고 자주 얘기했던 폴은, 이번 전시 역시 그녀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한다. 폴린과 폴이라니.. 이름부터 운명 같은 그녀는 1967년 버드케이지에서 일할 때였다고. 여자친구에서 사업파트너로 마침내 인생 동반자가 된 사람. 폴은 폴린으로부터 패션과 패션에 관한 사업에 관한 지식뿐 아니라 사업에 관한 지지까지 얻었다. 전시 후반에 걸린 패턴들은 전시 초반에 그녀가 패턴을 만들고 폴이 그 패턴으로 옷을 만들었다는 대목이 떠오른다.
이어지는 전시 마지막 방에는 이 전시를 만드는데 공로가 있는 다수의 사람과 기관의 이름을 영화의 엔딩크레딧이나 책의 판권처럼 적어두었다. 그리고 가장 끝에는 여기에 다 적히지 못했을 모든 런던과 일본에서 관련 작업을 한 스태프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적었다.
성공의 길에는 많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을 테지만, 그들을 기억하고 성과에서 일일이 언급하는 일은 쉽지 않음을 안다. 감사함으로 시작하여 감사함으로 끝나는 듯 보이는 이번 전시에서 폴 스미스라는 디자이너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진.글.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