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농기념관을 들어서면 향나무 가지런한 돌길로 갈라진 오른편 잔디 정원에 석장승과 장송(長松)이 우뚝한데 남농의 성품을 거기다 비유한 시비가 반긴다.

“독야청청 뿌리깊은 노송이여 / 운림에 씨앗터서 한 그루 솔이 되니 / 가녀린 이파리는 칼날보다 절개곧고 / 휘어지는 가지마디 풍운을 감싸돌며 / 황토에 뻗는 뿌리 세상을 헤아린다 / 새벽이면 이슬받아 지란을 키우시고 / 한밤이면 파도소리로 선경에 드시니 / 묵향 붓끝마다 청아한 바람소리 / 그윽한 향기러움 한 그루 노송이여 / 운림을 감싸덮은 천년노송이여 / 독야청청 뿌리깊은 노송이여....”

오층석탑도 운치를 더 한다. 돌확에는 음각된 「洗心」두 글자가 선명한데 이만하면 세속의 티끌을 모두 거두어냈을 성싶다. 기념관 처마 밑으로는 키 큰 종려나무가 누런 꽃을 드리우며 풍경처럼 건드렁거리는 맛이 있다.

1985년 목포시 용해동에 세운 기념관의 아래층엔 운림산방의 3대 화가인 소치(小癡) 허유(許維), 미산(米山) 허영(許瑩), 남농(南農) 허건(許健)의 작품과 남농의 제자들 작품 3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어 호탕하고 거침없는 한국 남종화의 명맥을 살펴볼 수 있다. 윗층에는 가야ㆍ신라ㆍ조선시대의 토기와 도자기,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도 전시되어 있어 눈요기가 그만이다.








남종화(南宗畵)란 명나라 말기에 동기창(董其昌)과 막시룡(莫是龍)에서 비롯되었는데 대체로 인격이 높고 학식이 뛰어난 선비들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수묵(水墨)이나 엷은 담채(淡彩)를 이용해 그리는 품격 높은 그림으로, 북종화(北宗畵)와 대비되는 화풍이다. 남농의 그림을 보노라면 이내 아, 남종화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다가온다. 색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먹의 농담(濃淡)으로 대담하고 굵게 산과 들의 경치를 그려내고 있다.

남농에 대한 인간적 접근을 원하는 사람은 남농의 손자인 허진이 쓰고 자신의 홈페이지에 실은 『화가 손자가 쓰는 남종화 대가 남농 허건(許楗)』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할아버지에 대해 ‘손주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자상한 할아버지는 아니어서 자화상이나 사진을 보더라도 이 말이 딱 맞겠다 싶다. 그러나 ‘사정이 어렵다고 찾아와 부탁하는 사람들을 거절하지 못해 값에 연연하지 않고 그림을 그려줘’ ‘그림 부탁 거절 못한 인간적 화가’로 알려져 있다.

전시물 중에는 운보 김기창과 담소하는 사진이 있다. 어려서 고막이 손상돼 듣기를 포기한 운보나, 동상으로 다리를 절단한 남농 사이에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끈끈한 인연이 있었을 게다. 운보 김기창이 살아 생전에 한 지인(知人)이 들고 온 '청록 산수' 가짜 그림을 보고 "허허, 그놈 나보다 더 잘 그렸는걸…" 무뚝뚝한 남농과 껄껄대는 운보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을까 궁금하다. 그렇다면 운림산방뿐만 아니라 충북 청원에 있는 운보미술관도 둘러보야야 할 일이다.

기념관을 나서는데 바람에 실린 짠내음이 물컹 가슴을 적시고 잠깐 구름갠 푸른 하늘로는 갈매기가 끼룩댄다. 나를 오라는지 저가 온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