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부터 나는 천 원짜리 그림보다 오천 원짜리 그림보다 만 원짜리 그림을 좋아했다. 돈의 액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만 원짜리에는 배춧잎 같은 푸루름이 있을 뿐더러 만만한 여유와 따뜻한 웃음과 애정어린 눈빛을 가진 세종대왕이 내려다보기 때문이다. 이 세종대왕을 운보가 그렸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만 원짜리 지폐에 더욱 애정이 갔다. 그 연유는 이렇다. 조지훈의 “승무”를 가르치다보면 이게 이당 김은호의 “무녀도”에서 받은 영감을 그대로 옮겨놓았는데 9개월 만에 완성시켰다는 작품이다. 이당의 제자 가운데 운보가 있고 인물화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운보가 세종대왕의 작가라 한다. 어쩐지 세종대왕의 필법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었다. 가만 생각하니 조지훈을 사랑하다가 이당을 좋아하고 이당을 좋아하다 운보를 그리워하게 된 것일까. 다만,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친일작가 명단에 두 사제(師弟)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음은 진실로 안타까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현은 ‘감각의 허울에 파묻혀 사물의 진면목을 스쳐 가기만 하는 우리에게 김기창 화백의 예술 세계는 표피적 인지의 허상을 깨뜨리고 숨어 있던 진실을 일러준 테이레시아스의 외침과 닮아 있다.’고 평한다. 테이레시아스에 대한 비유가 설령 과장되었다 하더라도 운보의 감각은 청각의 장애를 딛고 ‘그 감각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혼신의 노력과 예술적 열정’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해방 이후 그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아호인 운포(雲圃)에서 갑갑함의 상징인 (ㅁ)를 없애고 운보(雲甫)로 바꾼 내력도 이런 열정의 증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결코 사그러들지 않는 생명의 힘이 기존 화단의 단순한 모방에서 벗어나 자기 혁신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안일과 나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창의적인 예술가의 진취적 기질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운보의 예술은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색과 선의 독창성을 제공한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여유가 있다면 청남대도 기웃, 세종대왕이 안질을 고쳤다는 초정약수도 스쳐지나갈 수 있다. 이 가을에 바쁜 것 같지만 참 할 일없는 추석명절에 짬을 내어 한 번 가볼 일이다.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