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1. 29 - 2005. 3. 6 대전 아주미술관
나는 클레오파트라의 코를 납작코로 만든 아우구스투스를 상상하고,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 로마의 휴일을 생각하면서 로마유물전을 보러가는 길이다. 북대전 I.C를 빠져나와 원자력연구원 가는 길 왼쪽 산허리에 걸린 아주미술관(亞洲美術館)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미술관 가는 날은 눈이 내려야 제격인데...
철골과 시멘트로 이루어진 구조물은 서구적 감각이 물씬하다. 건물 벽에는 바쿠스조각상을 이미지로 한 <로마제국의 인간과 신> 현수막이 겨울햇살을 역광이 쏟아지며 차갑게 펄럭인다. 설계자인 한남대 김억중 교수에 따르면 ‘빛과 그림자, 초현대와 전통이 상생하는 자유로운 공간을 표현했다.’는 말이 실감난다. 대리석 문으로 통과하면서 나는 과거 로마시대의 미궁(迷宮)으로 빠져들었다.

아주미술관의 이사를 맡은 김용재님의 자상한 안내가 끝나고 큐레이터의 감칠맛 나는 쏠쏠한설명이 이어진다. 전시된 유물들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박물관이 소장한 400점의 유물들로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전시한 바 있다.
1층에 전시된 '인간(MEN)'의 코너에서는 로마인의 대리석조각, 일상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도자기, 항아리, 등잔, 가면 등을 비롯해 황제의 모습이 새겨진 각종 화폐, 세공기술이 뛰어난 보석류들이 눈을 둥그렇게 한다.
2층에 전시된 '신(GODS)'의 코너에서는 유피테르(주피터)의 두상과 가면, 미네르바 두상과 소형 청동상, 헤라클레스의 조각상, 장례물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이 유물들은 1~4세기의 것들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전시관 뒤편에 아주 멋들어진 한옥 한 채 ‘항여조’(恒如朝)가 놓여 있다. ‘항상 아침과 같다’는 뜻으로 염홍철 대전시장의 기가 막힌 작명(作名)이다. 두 시간 정도 서성거려 팍팍해진 다리를 마루에 걸치니 한 순간에 피로가 가시는 듯하다. 눈이 내리지 않아도 좋았다.
로마 예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절충 혼합성과 균형 잡힌 사실주의일 것이다. 로마 예술의 유형과 스타일의 다원성은 로마 군단들이 전 서구 문명 세계에 로마 헤게모니를 전파하면서 영토를 확장하는 동안에 여러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여 더욱 풍요롭고 다양한 예술 문화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정복자의 오만을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2천년 전 로마인들의 실용적 사고를 유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미술관은 작년 5월말에 개관했는데 미술관의 공간 배치엔 여유가 있는 편이다. 2만여 점이나 된다는 소장품도 상설전시하겠고, 이벤트성의 크고 작은 전시계획도 이어지겠지만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게 많다. 우선 진입로가 좁고 주변이 스산하다. 주차장도 정돈되어야 하고 주변 조경도 다듬어져야 한다. 미술인들이나 찾고 부모가 아이들 손이나 잡고 오는 공간으로 만족해선 안 될 일이다. 한옥 한 채로 복합문화공간의 소임을 다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두 시간 구경하고 휙 떠나는 미술관은 생명력이 없다. 따뜻하고 안락하며 재미나고 유익한 미술관이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설립자(이재흥, 뜻밖에도 목사님, 구즉교회)가 ‘사막에 한 송이 꽃을 심었을 뿐’이라고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 꽃을 잘 가꾸려면 시에서의 지속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제일 큰 힘은 시민들의 사랑과 관심이 아니겠는가.
아주미술관
대전광역시 유성구 화암동 195 Tel. 042) 863-0055 www.asiamuseum.org
대전광역시 유성구 화암동 195 Tel. 042) 863-0055 www.asiamuseu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