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30일 (일)
버스 3대로 출발. 집결지인 금강산 콘도로 관광객을 실은 버스들이 모여들었다. 반입제한 물품인 핸드폰과 고배율 카메라들을 보관시켰다. 통일전망대, 군사분계선을 를 지나 북측에 들어섰는데 인민군이 검문을 하였다. 영화나 텔레비전 등 화면에서 보던 인민군이 손을 대각선으로 흔들며 절도있게 걸어와 버스에 올라와서 살펴보고 내려갔다. 고성항에 도착해 세관 통행 검사 수속을 받고 금강산호텔에 투숙하였다. 북한 주민과는 관광이 정해진 코스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접촉이 차단되었고 차창 밖으로 보게 된다.
이곳에 운영은 현대아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 같았고 직원이 600여명이라고... 금강산호텔은 작년 7월에 개관하였는데 12층이었다. 그러나 전력사정이 안 좋아 호텔 전체가 너무 어둡고, 에레베이터에 손전등 불을 켜놓고 운행되며 숙소에서 정전되기도 하였다. 내가 배정받은 914호실 창 넘어로 잡힌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같은 방의 최열 씨, 불참으로 독방인데 한국화가 박대성 선생이 경관을 보고 스케치를 하겠다고 해서 909호로 바뀌었다. 저녁식사는 호텔옆 금강원으로, 음식은 조미료가 적게 들어가 담백하고 '접객원' 이 공식 호칭이었다. 숙소는 TV가 설치 되어 있지만 나오지 않았다.

1월31일(월)
아침식사는 호텔 2층에서 부페식 6시 반에서 7시 반 사이. 8시에 온정각으로 옮겨 이곳은 금강산 관광의 중심지로 주차장, 면세점, 문예회관, 온정각 등이 있다. 등산 코스는 상팔담으로 3시간 반에서 4시간이 소요되었다. 사실은 이곳에 오느라고 내 나이 쉰에 처음 등산화라는 것을 구입했다. 아이젠도 차고 사실 겨울산은 황량하다. 바람이 불면 눈이 날리고, 콧물은 자꾸 흐르고 멋있는 풍경을 한장 찍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고 넣는데 손을 벌써 얼어 시렵다. 정상에 올라가는데 양 길로 나뉘어 구룡연은 10분, 상팔담은 1시간인데 상팔담을 택했다. 상팔담은 우리가 잘 아는 선녀와 나뭇꾼 전설이 서린 곳이다. 양쪽 손으로 철계단을 붙들고 정상에 오라 내려오는데 "참으로 금강산은 조선의 기상입니다. 김정일 천구백팔십일년 륙월 십칠일 상팔담에서" 라는 붉은 글씨의 표식판에 새겨 있었다. 곳곳에 이런 표식판은 분명한 자연 훼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 내려오다 신계사터에 들려 해인사에서 파견 나와 있는 스님의 설명도 들었다. 대웅전만 하나 지어졌고 주변 정지작업을 벌이고 있었으며 2007년 완공을 목표로 한단다. 목란관에서 점심은 콩비지, 비빔밥, 냉면에서 선택이지만 식당안이 추웠다.
그 다음 코스 삼일포는 관동 팔경의 하나로 옛날에 바다였던 곳이 메워져 호수로 되었으며 어느 왕이 잠깐 들려 쉬고 가려다 경치가 하도 좋아 3일을 즐기고 갔다하여 이 곳을 "삼일포" 라고 불러졌다. 북한 여성 안내원의 해설을 듣고 노래까지 신청해 앵콜 송 까지 들었다. 정해진 호수 길을 따라 얼마쯤 돌고 다시 온정각으로 와서 온천장으로 갔다. 게르마늄탕에 노천욕까지 이어지며 피로가 풀렸다.
문예회관에서 4시30분부터 1시간반 동안 평양모란봉교예단 공연을 관람했다. 출연자 중에는 인민배우(북한 최고의 예술인), 공훈배우도 포함되어 있고 보통은 15년 이상은 되어야 무대에 설 수 있다고 하였다. 서커스는 눈속임이 있지만 교예는 고도의 훈련에 의해 이루어진다. 교예를 보면 세번 눈물을 흘린다는데 ' 첫째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했으면 그런 아슬아슬한 묘기를 연출할까, 둘째 북한과 남한은 하나라는 동포애, 셋째 교예를 보며 손뼉을 많이 쳐서 끝나고 나면 손바닥이 아퍼서 운다"고 안내했다. 나중에 비디오테이프를 19달러를 주고 구입했다. 온정각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끝났다.

2월1일(월)
아침 식사를 하고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나와 온정각에서 만물상 또는 삼일포/ 해금강으로 나누어지는데 거의 만물상으로 선택한다. 2시간 코스로 산 중턱까지를 버스로 옮겨지고 만물상을 오르는데 세 개의 가파로운 바위가 줄을 지어 서 있는 삼선암, 귀신의 얼굴처럼 생긴 귀면암, 정상에 천선대. 몇개의 철계단은 경사가 80도가 넘어 90도로 느껴지며 가파르다. 몇 곳에 북한 남자 안내원들이 서있었다. 아이젠을 차도 미끄러지니 힘들었다. 맛있게 중식들을 먹고 서울로 돌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