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진아트투어 제4탄(2)

유쾌한 외도, 그리고 백색고문 (白色拷問)
노르트라인 베스트파렌 미술관 K20 K21

독일에서 가장 깨끗하고 쾌적한 도시 중의 하나인 뒤셀도르프는 독일 맨 서쪽에 위치하고 쾰른, 뒤셀도르프 등의 큰 공업도시와 루르강유역의 루르(Ruhr)탄광지대 등이 속해 있는 독일 총생산의 22%를 차지하는 가장 부유한 주의 주도이다. 이곳에 노르트라인 베스트파렌 미술관(Kunstsammlung Nordrhine-Westfalen)이 있다. 1960년 주 정부가 폴 클레(Paul Klee)의 작품 88점을 구입하여 뒤셀도르프 중앙공원에 있는 슈로스(Schloss)라는 작은 성에서 시작한 이 미술관은 늘어나는 소장품들을 수용하기 위해 1986년에 시내중심부의 새 건물로 옮기게 되었다. 20세기 초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서유럽작가들의 모더니즘 작품을 위주로 광범위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1945년 이후에는 미국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수집했다고 한다. 소장품이 계속 늘어남에 따라 2002년에는 미술관을 다시 확장, 분리하여 80년대까지의 20세기 미술작품을 K20 미술관(Kunstsammlung am Grabbeplatz)으로 개칭하여 전시하는 한편, 80년대 이후의 21세기미술은 스탠데하우스 (Standehaus)라고 하는 주의회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K21 미술관(Kunstsammlung im Standehaus)으로 분리해 개관 하였다. K20미술관은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 교수였던 폴 클레의 작품을 100여점 이상 소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아름다운 건물로도 알려져 있는데 마침 다음전시 준비관계로 대부분의 전시가 닫혀 있어서 방문하지 못해 유감이었다.

K21 미술관은 1988년 까지는 노르트라인 베스트파렌 주의 주 의회였고 프러시아(Prussia)시대에는 프러시아의 라인 주의회로 쓰였던 역사 깊은 건물을 재건축한 것이다. 유서 깊은 19세기 옛 건물을 유리와 스틸로 이루어진 초현대식 피라미드 돔으로 덮은 옛 건축과 현대건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독특한 건물이었다. 건물을 들어서자 넓은 홀이 있고 유리 돔의 천장으로부터 늘어진 긴 철선 끝에 모터에서 분리되어 망 속에 갇힌 선풍기의 날개뭉치가 큰 원을 이루며 돌고 있었다. 충분히 높기는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혹시 맞지나 않을까 긴장하게 한다. 21세기 새 시대의 미술을 담는 미술관의 손님맞이로는 제격이었다.






백남준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는 이 미술관에서 백색고문(Weisse Folter)이라는 그레고르 슈나이더(Gregor Schneider)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는 30대 후반의 젊은 독일 작가로 1990년대 이후 주로 ‘방’ 연작들로 화제도 모으고 물의도 일으켰던 작가다. 2001년에는 독일관에 설치한 22개의 방과 통로, 막다른 골목들로 이루어진 죽음의 집(Torte Haus Ur)이라는 작품으로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하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를 위해 약 20분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한 두 사람씩만 그것도 5분 간격으로 입장시키기 때문이다. 기다리며 안내문을 읽어보니 이 작업은 고도의 보안시설을 갖춘 쿠바의 관타나모 미군기지 수용소(Camp V, Guantanamo Bay)에서 착안한 작품이라고 한다.

차례가 되어 들어가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안내원이 내려와서 경첩을 트는 법을 알려주어 문을 밀고 들어갔다. 아무도 없이 뿌연 전등이 비친 공간에 긴 복도가 보이고 양편으로 여러 개의 검은 문들이 닫힌 채로 있다. 나 외에는 아무도 없고 사면은 죽은 듯이 조용하다. 미닫이로 되어 있는 첫 번째 문을 열려고 했으나 열리지 않는다. 두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 칸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 금속으로 된 변기와 세면대가 한 개씩 있고 구석에는 검은 가죽으로 덮힌, 등을 구부려야 겨우 누울 수 있을 침상 겸 의자 같은 것이 있다. 두어 방을 지나 또 문을 여니 이번엔 작은 방속에 긴 삼각형 형태의, 쇠창살이 달린 좁고 긴 창이 있는 또 하나의 방이 있다. 한번 들어가면 영 나올 수 없는 그래서 문이 필요 없는 감방 같다. 어느 방엔가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있었다. 벽면을 여기저기 더듬어 겨우 출구를 찾았다. 그 밖에도 혹독한 고문과 견딜 수 없는 고독이 밴 것 같은 음산한 느낌의 방들도 있었다.

다른 통로의 방들도 들여다보며 이제는 일행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가까워져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출구를 찾았다. 조급한 마음에 이문 저문 열어봐도 출구는 보이지 않고 문들도 안 열리는 곳이 많다. 어느 한 문이 열렸다. 사각형으로 된 번쩍이는 금속 방이다. 천정 양쪽에서 강렬한 조명이 때린다. 눈부실 뿐만 아니라 이 더운 여름에 고문이다. 잠시 주위를 살피고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몇개의 문이 더 있었지만 열리지 않고 들어갔던 문도 열리지 않는다. 불안함과 초조함이 닥쳐온다. 문들은 아주 견고하게 짜여져 있고 끄덕도 안한다. 곤혹스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소리 지를 수도 없고 소리쳐 보아야 들릴 것 같지도 않다. 여러 가지 생각이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만일 일행과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전시 관람에 방해가 될까봐 손가방을 버스에 놓고 왔다. 스케쥴도 오늘 묵을 호텔주소나 연락처도 다 거기에 있는데....아! 그때 문이 밖으로부터 열렸다.

문이 열리더니 네 사람이 들어왔다. 반가웠다. 우리 일행인 인상 좋은 모녀와 고모를 따라 온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와 오빠라며 따르는 한 젊은이였다. 그들도 출구를 찾아 헤맸던 모양이다. 그들이 들어왔던 문도 다시 닫혀서 열리지 않는다. 시간이 되면 열리는 장치가 되어있는 것일까? 앞장선 젊은이가 이리 저리 시도해보자 한 문이 열렸다. 문은 열렸으나 어두운 토굴 속이었다. 다시 여기 저기 더듬으면서 겨우 밖으로 나왔는데 그 곳은 지하실과 통해 있는 미술관 앞 연못이었다. 불안과, 당혹감과 초조함에서 빠져나오니 연잎이 시원한, 백조가 떠 있는 연못이라니...






‘ 백색고문’이란 육체적 고통이나 위해를 가하지 않고 극한적인 감각의 통제, 혹은 극도로 고립된 심리상태에 몰아넣음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는 지능적인 고문이다. 육체적 고문은 당할 때에는 고통스러우나 흔적과 증거가 남아 그것을 견뎌낸 사람들은 자긍심을 가질 수 있고, 주위로부터 용기와 지조를 칭송 받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후에 응분의 보상을 받기도 한다. 반면 백색고문 희생자들은 아무 흔적도 없이 인성이 파괴된 채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자긍심도 못 느끼고 의욕을 상실해 폐인이 되고 마는 비참한 경우를 당하기가 쉽다. 이 같은 고문은 주로 지식인들에게 가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근래에 이란이나 터키 등에서 언론인들에게 자행된 예들이 국제사면위원회 (Amnesty International)등에 보고되기도 했다.

슈나이더가 던지는 메시지를 알 것 같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은 미술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미술관 지하실의 일부를 그대로 사용하고 여러 방들을 만든 이 작품이 건축인지, 조각인지, 설치미술이라고 해야 하는지, 그리고 개념미술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 작가의 창의력과 주관적 관념을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미술이 제 3자인 감상자를 필요로 하는 예술행위 일진데 그 관념의 바탕에는 최소한의 객관적 공통성 내지는 공감대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술의 본질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의 추구에 있다는 것이 틀린 것인지? 아니면 아름다움의 뜻도 달라진 것인지? 등등... 무식하게 제기해보는 우문들이다.

생애에 이번 여행에서처럼 많은 작품들을 한 여행에서 본 일은 없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이 제일 좋았는지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다만 홈브로이히 미술관의 신선함, 백색고문에서의 특이한 경험, 그리고 두 끼의 저녁을 함께 하기 위해 멀리 비스바덴(Wiesbaden)으로부터 남편과 함께 돌트문트(Dortmund)까지 와서 같은 호텔에서 이틀을 묵어 준, 지금은 여섯 손자와 손녀의 할머니가 된 40여년 전의 친구 크리스텔(Christel)과의 해후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던 외도였다.

사진 1. K21 미술관 외관
2. K21 미술관 내부
3. K21 미술관 전시장
4. 하이델베르크에서 김환수(오른쪽), 김달진(왼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