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진의 현장 클릭(3) 내 작품 어찌 하오리까?
예술이라는 숭고한 길에 평생을 바친 화가들에게 노년의 문턱에서 마주하는 가장 무겁고도 슬픈 질문이 있다. 바로 “내 분신 같은 작품들을 이제 어찌하오리까”라는 탄식섞인 고뇌다. 최근 나를 찾아와 눈시울을 붉힌 서양화가 A씨의 사연은 비단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 미술계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서글픈 자화상이다. 대학 교수를 지내며 평생 교육과 예술에 정진했던 남편 B씨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겨진 내 작품들을 어찌할꼬”하며 눈을 감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는 본인마저 고령의 나이가 되어 육체적, 정신적 한계에 부딪히자, A씨는 남편의 유작과 자신의 작품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깊은 수렁에 빠진 심정으로 조언을 구해왔다.
예술이 ‘짐’이 되어버린 서글픈 현실
흔히 사람들은 원로 작가의 미술품이라고 하면 대단한 자산이나 유산으로 여기기 쉽지만, 현실의 벽은 차갑고도 냉혹하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개인 미술관을 지어 작품을 보존하는 것이지만, 이는 재벌이나 대형 자산가가 아닌 이상 불가능에 가깝다. 설립 자체도 지난할 뿐만 아니라, 매년 수천만의 지속적인 운영비를 감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녀들에게 물려주기도 어렵다. 요즘 자식들은 부모의 예술 세계를 존중하는 것과 별개로, 수백 점에 달하는 거대한 물리적 작품을 보관할 공간도, 의지도 없다. 잘 팔리는 작가, 시장에서 어느 정도 거래가 체결되는 작가의 경우, 작품을 상속받는 순간 막대한 상속세를 신고하고 일정 기간 내에 현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미술품으로 세금을 대신 내는 물납제가 도입되긴 했으나, 까다로운 평가 기준과 절차 탓에 현장에서는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술관 기증 역시 바늘구멍 통과하기다. 신생 미술관들이개관 초기에 소장품 확보를 위해 일시적으로 문턱을 낮추기도 하지만, 이내 수장고의 포화 상태와 작품 가치 평가의 엄격함 때문에 기증받는 기준이 높아진다. 미술관 입장에서는 보관 비용과 관리 인력을 무한정 투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면초가의 상황 속에서 어떤 작가들은 매달 보관료를 지불하며 외부 사설 창고에 작품을 맡겨놓고 잊어버리기도 하고, 심지어 평생의 피땀이 서린 작품들을 스스로 불태워 없애겠다는 비극적인 다짐마저 들려온다. 시간과 영혼을 바친 미술품이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처치 곤란한 ‘짐’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김창열 화가의 집, 종로구 제공1988년 준공된 평창동 작업실을 2022년 종로구가 매입하여 서울시 우수건축 자산 13호로 등록하고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은 작품 390점을 포함한 소장품 2,609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대안으로서의 공공 수장고와 그 과제
이 비극적인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 중 하나로 공공 수장고 제도의 확대 및 제한적 활용이 이야기된다. 정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 수장고에 원로작가 작품을 안전하게 수탁하고,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인 규정에 따라 관리 및 보존을 전담하는 방식이다. 수장품을 활용한 정기 전시나 순회 전시를 열어 대중에게 문화적 향유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작가들도 안심하고 작품을 무상 기증할 수 있을테니 작가에게는 명예로운 마무리를, 대중에게는 풍요로운 문화 자산을 공유하는 상생의 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작가의 모든 작품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가? 수탁을 원하는 모든 작품이 공공의 세금으로 보존될 수는 없다. 예술적 성취와 역사적 가치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기준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공공 수장고 역시 금세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다.
평생을 예술이라는 외길을 걸어온 화가 A씨의 고민은 미술계가 나누어져야 할 과제이다. 창작을 장려하는 정책은 많지만, 정작 그 창작물들이 아름답게 소멸하거나 보존되도록 돕는 ‘예술의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
예술가들이 노년에 이르러 자신의 작품을 걱정하지 않도록, 공공 수장고의 확충과 물납제의 실효성 개선, 그리고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가치 평가 시스템 구축에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그것이 한 시대를 풍미하고 떠나는 예술가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이자, 우리 문화의 뿌리를 지키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