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푸른 바다, 물은 가장 신화적인 것이다
강릉의 최남단에 위치한 옥계면은 김진열 작가의 고향이다. 옥계는 대관령의 높다란 태백산맥을 뒤로하고 옥계항이 들어서 있는 동해를 앞으로 두는 넓은 대지를 이루고 있다. 어린 시절 작가는 자두나무에 올라가서 금진항을 늘 바라보았다고 한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물을 먹은 바람이 옥계의 너른 대지에 머물러 유년기 작가의 순수한 영혼의 원천이 된듯하다. 범우주적이고 무궁한 상상력을 열어주는 동해의 넓은 수평선은, 작가의 한국 현대사와 함께한 작품활동 전 시기를 관통하는 생명, 사랑, 평화, 낮은 것들을 위한 존경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물은 가장 신화적인 것이다.


박옥생, 김진열 작가



생명의 경의, 창작은 곧 사회운동
김진열 작가는 한국전쟁 전후 세대이다. 이는 전쟁과 복구, 개발과 격동의 한반도 역사를 온몸으로 부딪친 세대이기도 하다. 전쟁 이후 유년기 기억은 훗날 작가의 버려진 고철로 노동 현장의 인물들 조각으로 완성하는 조형 방식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두들겨 다양한 면을 구현하는 모습은 민중미술이 고뇌, 소외, 고통, 낮음, 슬픔과 같은 시대의 문제를 제시하고 대중과 교감하는데 효율적인 방식이 되었다. 작가의 시각적 변주의 구현에 관한 노력은 조각, 평면과 같은 모든 창작 활동에서 계속되고 있다. 특히 작가가 자리한 원주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한살림운동의 생명 존중, 생태환경운동의 중심에 위치한다. 이러한 인간에 관한 성찰과 생명존중, 자연정화 운동의 정신은 김진열 작가에게로 계승되었다. 사실, 작가의 작품활동은 사회운동이다. 작가의 삶은 낮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과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자연을 향한 경외의 헌사(獻辭)이다. 이는 <격정과 분노>, <모든 삶은 위대하다>, <너의 속살을 사랑하라>, <원주버스터미널의 사람들>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난다.

낮은 것들을 위한 헌사(獻辭), 대변약눌(大辯若訥)의 미학
조각과 평면작업은 두꺼운 안료의 흔적들이 들숨과 날숨으로 호흡하며 재료의 사이로 빛이 숨거나 드러나 거칠고 투박하다. 그 속에서 작품들은 부드럽고 고귀하고 신성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원주 거돈사지의 돌을 먹는 나무라 불리는 나무 작업은 작가의 생명에 관한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신성함이 극대화되고 있다. 천년의 거돈사지 느티나무의 시간의 흔적에서 거칠고 늙으신 어머니의 손길을 느낀다. 그 손은 상처받은 어린 영혼을 어루만지며 사랑과 위안, 상처를 치유하시던 우리 어머님의 손길이며 대지의 위대한 손길이며 생명의 손길이다. 이는 작가의 작품이 시민 활동의 중심에선 사회 정화 운동의 적극적 참여의 몸짓이다. 그의 이러한 투박하고 거친 조형의 특성은 동양 미학의 大巧若拙, 大辯若訥(대교약졸·대변약눌, 큰 기교는 서툰 것과 같고, 큰 웅변은 더듬 거리는것과 같다 『도덕경』, 제45장)을 완성한 것이다. 상징에서 신성으로, 신성에서 예술로 변모하는 작가의 작업은 작은 것들을 위한 詩, 낮은 것들을 위한 獻辭, 한국 현대사의 굴곡이 빚어낸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위대한 유산이다.


- 김진열(1952- ) 강원도 강릉시 옥계에서 출생. 홍익대 응용미술과 학사, 동 대학원 산업미술대학원 석사. 조선일보사 편집부 근무(1979-1983), 상지영서대 교수, 상지영서대 총장(2018-20) 역임. 《김진열 ’자르기’ 전》(관훈미술관,1981) 첫 개인전, 《한국미술 오늘의 상황》(예술의전당, 1990), 《민중미술15년전》(국립현대미술관, 1994), 《제20회 힘있는 강원전》(국립춘천박물관, 2021), 광주비엔날레(2004), 평창비엔날레(2017) 등 참여. 제2회 박수근미술상(2017) 수상.

- 박옥생(1977- )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연구사, (재)한원미술관 학예연구사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