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의 단면

 

이선영(미술평론가)

  


김대유가 몇 년 전 발견한 코일 매트의 기묘한 형태는 요즘 [리좀 필드] 시리즈를 출발한 계기가 됐다. ‘The field of rhizomes’은 2022년 그의 개인전 제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품 제목에서 개념을 표시하지는 않는다. 색이나 재료, 작업 방식에 일관성을 주는 대신, 외연의 확장과 내포적 다양성을 꾀하는 그의 작품은 미니멀하다. 미학적으로 미니멀리즘은 예술보다는 사물에 기울어진다. 언뜻 단색화처럼도 보이지만, 그는 모더니즘처럼 회화의 순수함을 지키는데 몰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가가 영감받은 모든 것들을 쏟아 넣어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점은 ‘순수회화’ 못지않다. 물론 작품의 재료를 날 것으로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그의 작품은 예술과 사물 어딘가에 있다. 기원과 목적보다는 중간에 치중했다. 그가 영향을 받은 철학자 들뢰즈가 말하듯 중간은 속도를 내는 영역이다. 그의 작품은 점과 점을 잇는 기하학적 선이 아닌 점들 사이를 빠져 나가는 탈주적인 선이다. 



Kim Dae Yoo_Rhizome field No.2022-30(F)-062_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_91 x 73 cm_2022


Kim Dae Yoo_Rhizome field No.2022-50(F)-008_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_117 x 91 cm_2022



종횡무진 뻗어나가는 리좀은 하나의 존재나 대상으로 국한되지 않기에 장(場)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현대물리학의 패러다임도 대상이 아닌 장에 주목한다. 장은 이전 시대의 재현적 체계가 확언하는 진리 대신에, 확률적인 사건을 말한다. 이는 불가지론이나 임의성이기보다는 자연에 대한 보다 겸허한 자세이다. 작가가 잡초나 발닦개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진 것도 그렇지만, 자연은 생각보다 크다는 것, 인간의 재현적 언어는 한계가 있다는 점의 인정이다. 연작으로 제작된 작품들 사이에도 리좀적 관계가 성립된다. 그의 작품은 벽에 반듯하게 걸릴 뿐 아니라, 바닥을 포함한 여러 공간에 설치적인 방식으로 증식되기 때문이다. 액자 없이 작품 표면의 가장자리까지 연장된 작업은 연결되기 위해 잘려있다는 점에서 무한과 유한의 관계와 같다. 재료나 기법으로 볼 때 그렸다기보다 만들어진 작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움직이는 덩어리를 잘라낸 단면같은 느낌이다. 


두께도 있고 무게도 꽤 나가지만, 기본적으로 캔버스를 지지대로 한다. 설치로 확장은 될 수 있지만 구조적 단위 하나하나가 회화적인 밀도를 갖춘다. 그의 작품은 사물과 예술, 바닥과 벽 사이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전환이 한 방향으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역행도 필요하다. 역행은 퇴행이 아니라 제한된 현재를 극복하기 위해 보다 잠재력 있는 상태의 회귀이다. 작가는 기능을 가진 물건을 변형시키며, 물감과 여러 재료는 뒤섞이고 휘저어진다. 둥근 캔버스는 시작과 끝이 없는 과정으로 빼곡하다. 멀리서 보면 푸른 계열로 통일된 평면적 추상회화처럼 보이는 작품들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지글거리는 듯한 표면 질감이 도드라진다. 그저 둥글게 보이는 태양의 확대 사진이 융합과 폭발로 가득한 유체적 형태인 것과 비슷하다. 김대유의 작품 목록에 둥근 캔버스가 있다는 점이 그러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둥근 캔버스는 그가 뿌리듯이 물감을 입히는 방식과 관련되어 만다라같은 느낌도 준다. 



Kim Dae Yoo_Rhizome field No.2023-∅100-002_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_100cm_2023


Kim Dae Yoo_Rhizome field No.2026-120(F)-002_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_194 x 130 cm_2026



만다라는 중심과 주변의 관계가 확실하지만, 만다라의 존재 방식 자체는 색 모래로 뿌려져 그려진 후 흐트러진다는 점에서 해체적이다. 하지만 김대유의 작품은 원재료보다 더 단단한 결과물로 고정된다. 제작에 여러 겹의 실행을 통하기에 고정된 면 또한 다양하게 보일 따름이다. 시리즈 형식으로 제작되어 작품과 작품 간에도 움직임이 내재한다. 정지된 매체가 움직임을 담아내는 그만의 방식인 셈이다. 여타의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미디어에 비해 다소간 정적인 회화작품은 볼 때마다 다른 것이 보일 만큼 움직임을 접어 넣는 것이 중요하다. 의미 또한 그런 움직임에 연동되어 펼쳐질 것이다. 오랜 실험의 결과 만들어진 그의 방법론은 일정하게 유지됨과 동시에 차이 또한 생성된다. 차이는 반복의 효과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여러 색 중에서 블루가 선택된 것은 블루만큼 반복과 차이의 유희가 가능한 색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색채학자 마가레테 브룬스는 [색의 수수께끼]에서 서로 다른 성질을 갖는 다른 원소들과 함께 5번째 요소에 해당하는 공간 또는 블루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테르에 해당된다고 한다.  에테르와의 비유는 파랑이 4원소인 불, 물, 공기, 흙의 춤 즉 우주의 유희를 위한 공간을 제공함을 말한다. 블루는 ‘잠재성으로 침잠하는 무수한 색채 세계들의 근원이며 근거’(마가레테 브룬스)이다. 사각형 작품은 빛나는 바다의 표면이 떠오르며 둥근 캔버스는 천공의 푸르름이 있다. 블루는 깊은 바다부터 높은 하늘 사이의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그가 선택한 원재료는 공장 생산물로 두터운 실재감은 없지만 빽빽하게 꼬인 형태로 그 기능을 수행하며, 표면과 깊이라는 이항을 결합시킨다. 빛을 받아 기이한 표면이 두드러져 보였던 코일매트로 출발한 작업은 그 위에 물감층이 뒤덮이기 때문에 심연은 더욱 깊어진다. 붓부터 양념통까지 두루 사용하는 채색 과정은 여러 번 반복된다. 



Kim Dae Yoo_Rhizome field No.2026-120(F)-008_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_194 x 130 cm_2026


Kim Dae Yoo_Rhizome field No.2026-120(F)-009_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_194 x 130 cm_2026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표면적인 깊이를 가진다. 재료의 질감과 결합된 색들은 그때그때의 조합에 따라 차이의 계열을 이룬다. 김대유는 기성 질서를 유지하는 이항 대립을 무너뜨리는 애매한 존재론에 관심을 두며, 작업을 통해 증폭시킨다. 이전부터 도시 안팎에 무성하게 덩굴을 이루는 식물들에 대한 관심이 컸던 터였다. 유용한 곡물을 생산해야 하는 농경이나 심미적 활동인 정원술의 관점에서 보면 무가치한 덩굴식물들은 한여름 땡볕에 격렬하게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머물지 않는다. 어디든 덩굴손이 걸칠 수 있는 곳이면 연결하여 나아간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개의 고원]에서 ‘식물들은 뿌리를 갖고 있을지라도 언제나 어떤 바깥을 가지며 거기서 식물들은 항상 다른 어떤 것, 예컨대 바람, 동물, 사람과 더불어 리좀 관계를 이룬다’고 하면서, 식물들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리좀을 시대의 키워드로 격상시킨 철학자는 이러한 과정에서 탈주를 본다. 


깊이 뿌리를 내리며 빛을 향해 수직으로 뻗어 올라가는 반듯한 나무와 달리, 덩굴들은 식물이므로 전체적으로는 빛을 향하고는 있지만, 자신이 뻗어나갈 틈새에 따라 그때그때의 행로가 정해진다.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시대, 리좀은 깊지 않아도 횡적으로 뻗어나가는 상태를 상징한다. 지배적 체계는 수직/수평의 좌표계로 이루어진 텅 빈 공간에 구성원들을 배치한다. 배치 자체로 권력이 발생한다. 배치는 정확하게 재현될 수 있거나 그렇게 계획된다. 하지만 가장자리에 있는 예술은 배치의 변화를 꾀한다. 변화 중인 것들은 재현되기 힘들다. 변화란 생성과 소멸의 과정이다. 하지만 뿌리줄기를 작품으로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 그가 뿌리줄기적인 방식의 오브제를 찾아낸 것은 행운이다. 재료를 실처럼 뽑아 압착하여 만든 평면적 오브제는 ‘뿌리줄기장(場) The field of rhizomes’과 비유된다. 그가 최근에 주로 사용하는 코일매트는 그의 작업장 한 켠에 생산품의 형태로 쌓여있으며 단계적인 작업과정을 기다린다. 



Kim Dae Yoo_Rhizome field No.2026-120(F)-010_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_194 x 130 cm_2026


Kim Dae Yoo_Rhizome fields No.2022-001_Acrylic & Mixed media on Role Canvas(Installation)_1.73 x 10M_2022 



대량 생산되는 공산품이기에 미세한 선이 남아 있지만, 그것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에 나오는 펠트와 유사한 조직을 가진다. 이 책에서 직물과 펠트는 존재의 두 양상으로 비교된다. ‘직물은 원칙적으로 홈이 패인 공간으로 규정된다. 직물의 길이는 무한하더라도 폭은 날실의 틀에 의해 한정된다. 플라톤은 왕립과학 즉 사람들을 통치하고 국가 장치를 운용하기 위한 기술의 패러다임으로서 직조술을 모델로 한다. 펠트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그것은 반(反)직물처럼 보인다. 그것은 압축에 의해 얻어지는 섬유의 얽힘만이 있을 뿐이다. 직물과 달리 펠트는 권리상으로 무한하며 모든 방향으로 열려있어 한계를 갖지 않는다. 앞면과 뒷면도 또 중심도 갖지 않으며, 고정된 것과 유동적인 것의 구별도 없으며 오히려 연속적 변주를 분배한다. 직물과 펠트처럼 직조에 관한 서로 완전한 구별되는 두 가지 생각, 나아가서 실천이 존재한다...’ 


펠트에 대한 비유는 리좀이 ‘단위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차원들 또는 차라리 움직이는 방향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 있다. ‘리좀은 시작도 끝도 갖지 않고 언제나 중간을 가지며 중간을 통해 자라고 넘쳐난다.’ ‘구조가 점들과 위치들의 집합이라면, 리좀은 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하나의 리좀은 어떤 곳에서든 끊어지거나 깨질 수 있으며, 자신의 특정한 선들을 따라 혹은 다른 새로운 선들을 따라 복구된다.’ ([천개의 고원]) 김대유는 [뿌리줄기의 장] 시리즈에서 사용된 오브제에 대해 ‘이 바닥 완충재는 가닥의 숫자를 헤아릴 수 없고, 시작과 끝이 정해지지 않은 수많은 코일 줄기가 서로 뒤엉켜 평면을 덮는다...코일 매트의 바탕에는 자유롭고 추상적인 흔적들과 뿌리줄기들이 방향을 설정하지 않고 뻗어나가는 것처럼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선형들이 얽혀있다...’고 말한다. 자라는 식물처럼 일정 두께의 선들이 압착 돼 만들어진 매트는 리좀의 선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Kim Dae Yoo_Rhizome fields No.2022-001_Acrylic & Mixed media on Role Canvas(Installation)_1.73 x 10M_2022


Kim Dae Yoo_Rhizome fields No.2025-005_Acrylic & Mixed media on Role Canvas(Installation)_1.73 x 3M_2025



붓을 포함한 여러 기구로 흩뿌리듯이 물감을 입히는 방식 또한 리좀의 탈중심성을 따른다. 물감 또는 안료를 다루는 방식은 추상표현주의적이다. 입체적 바탕에 뿌려진 흔적은 비재현적이다. 그는 작업과정에 대해 ‘수십 리터에 달하는 아크릴 물감을 코일 매트의 화면에 노즐이 달린 양념통, 플라스틱 막대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드리핑하거나, 때로는 거침없이 쏟아부었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통해 자동기술법적인 형상들과 추상적인 형상들이 생성한다’고 밝힌다. 멀리서 보면 비슷한 시각상을 가진 작품이 차이의 결을 유지하는 것은 선에 부여한 자유의 힘이다. ‘아무것도 제한하지 않고 어떠한 윤곽도 그리지 않는 선, 점에서 점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점 사이를 지나가는 선, 항상 수평선과 수직선으로부터 비껴 나오며 부단히 방향을 바꾸며 사선에서 벗어나는 선, 즉 바깥도 안도 또 형태도 배경도 또 시작도 끝도 없는 이 변이하는 선이야말로 추상적인 선’(천개의 고원)이다. 


그가 선택한 이 특이한 재료는 단순한 아이디어라기 보다는 덩굴이나 뿌리줄기같은 탈중심적인 존재 양태에 관심을 가져왔던 눈에 띄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전 작업에서는 5mm 간격의 일정한 격자 위에 ‘무심하거나 반복적인 이미지, 때로는 특정한 형태를 갖는 이미지를 병치’한 'Visual field(시각장)' 시리즈가 있는데, 이 또한 확장적인 구조를 가진다. 요즘 작품처럼 캔버스의 틀이 확장을 한정 지음과 동시에 확장을 잠재적으로 지속시킨다는 점은 같다. 이는 들뢰즈가 유한과 무한의 관계를 설명했을 때의 맥락과 같다. 그리드의 경우 ‘현실에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사회의 시스템이나 플랫폼을 상징’했다. 그리드는 규칙적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중심이 부재한 익명적 구조이다. 누구를 누구와 대체해도 상관없는 직무가 시스템의 특징이다. 시스템은 그것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것만 관심이 있다. 이때 인간과 시스템은 갈등 관계에 놓인다. 살아있는 인간은 그러한 시스템에 진입하기 힘들고 지속하기는 더욱 힘들다. 



Kim Dae Yoo_Rhizome fields No.2025-001_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Installation)_50(F) Canvas x 10 piece & Role Canvas 2.1 x 10M_2025


Kim Dae Yoo_Rhizome fields No.2025-002_Acrylic & Mixed media on Role Canvas(Installation)_1.73 x 10M_2025



현대사회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혼란이 있는(또는 요구되는) 역설이다. 김대유의 뿌리 줄기장은 한꺼풀 벗기면 드러나는 규칙 이면의 세계를 강조한다. 중성적이고 익명적이며 추상적이지만, 작가가 그 안에 쏟아 넣은 막대한 물질적 육체적 에너지는 우리의 삶에 대해 말한다. 상징계처럼 그 안에 태어난 모든 구성원들을 규정하지만, 누군가 어떤 나라의 누구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은 우연적이다. 꽉 조여있는 필연의 그물망에서 우연의 몫을 주목하고, 이것에 자의적 폭력이 아닌 자유로 바꾸려는 노력이다. 사각형, 혹은 원으로 만든 캔버스와 결합된 코일매트는 캔버스의 틀을 벗어나 확장하는 듯이 보인다. 그가 작품을 통해서 가한 제한은 오히려 열린 방식으로 작동한다. 물감은 캔버스틀 옆으로 흘러넘치며 작가는 이 흐름들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가장자리를 넘어 모서리에서도 이동하고 변신하려는 살아있는 선이다.  


출전; 선재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