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갱신되는 전체의 반복

  

이선영(미술평론가)

  


장승택의 신작 21점이 출품된 [감각의 층위: Layers of Perception] 전은 온갖 지지부진한 것들을 쓸어버리듯 단호하게 내려그은 색면들로 이루어진다. 최초의 한번으로도 충분한 듯하지만, 그러한 한번들이 시공간적 차이를 두고 여러 번 실행된다. 훅 미끄러져 만들어지는 색면은 다른 색면들과의 관계 속에 미세한 움직임의 환영을 만든다. 정지된 매체에 결핍된 역동성은 시공간적 차이를 둔 반복의 효과다. 그는 작품이 가지는 반복의 효과에 대해, ‘부단히 반복되는 지루하고 힘든 감각적 노동이라 말하고 싶다. 삶의 모든 형태가 반복이며 모든 예술 장르에서 어떠한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똑같다’(2025, 이진명과의 대담)고 말한다. 반복은 그의 작품에서 본질적이지만, 그것은 재현주의에서의 반복과 다르다. 필자는 재현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했던 들뢰즈의 여러 책을 참조로 해서 장승택의 작품을 보고자 한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두 가지 반복을 구별한 바 있다. 



Layered Painting 130-42_ 200x150cm_ Acrylic on canvas_ 2025(이하 모든 사진 출전은 소울아트스페이스)


 Layered Painting 130-45_ 200x150cm_ Acrylic on canvas_ 2025



‘하나는 부분들의 반복(물질적 반복)이고 다른 하나는 공존하는 상이한 수준들에서 일어나는 전체의 반복(정신적 반복)이다. 전자의 반복은 정태적이고 후자는 동태적’이다. [차이와 반복]의 맥락에서 보자면 장승택의 작품은 부분들이 그저 수평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직적인 차원에서 공존하는 반복이다.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반투명한 베일처럼도 보이지만, 추상이라 딱히 비교할 형태는 없으며, 색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증식된다. 들뢰즈는 현대미술을 다룬 [감각의 논리]에서 ‘색채를 공간화하는 에너지만 있는’ 작품을 색채주의라고 말한 바 있는데, 형태 없는 장승택의 작품이 이에 해당된다. ‘명암에 의한 가치적 관계를 색조의 관계로 대체하려고 하는 화가들, 그리고 순수한 색의 관계를 가지고 형뿐만 아니라 그림자와 빛 그리고 시간을 주려고 하는 화가는 색채주의자다’(들뢰즈). 장승택의 작품에서 색은 빛을 향한다. ‘빛은 시간이고 색은 공간’(들뢰즈)이다. 


가령 하늘이라는 거대한 캔버스에서 벌어지는 색과 빛이 교차되는 새벽녘과 같은 푸른 계열의 전이는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그는 2019년 [겹 회화] 시리즈를 시작할 무렵 ‘최소한으로 몸을 움직인 큰 일 획’이 ‘색채의 단층들이 만들어 내는 색면 회화’라고 말한다. 그는 이전에 수 십년 간 ‘붓을 떠난 회화’를 해왔지만, 겹회화에서 ‘특별히 제작된 대형 붓으로 아크릴물감과 특수 미디엄을 섞은 안료를 수십 회 매번 다른 색으로 투명하게 채색하고 건조를 반복하여 완성’한다. 이를 통해 ‘흰 여백, 색, 농도, 색면 폭의 감각적 선택, 무수히 반복되는 단순한 몸짓 후에 드러나는 거대한 색채의 환영’이 생겨난다. 작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가운데 부분이 가장 많이 겹쳐 밀도가 높다. ‘평면들의 결합이 이루어지는 깊이는 표면적인 깊이’(들뢰즈)이다. 밀도가 높아도 화면 뒤에 남겨 놓은 것은 없다. 대상도 이야기도 없다. 일획이자 면을 그릴 때 호흡을 가다듬고 집중했을 행위만 있다. 



 Layered Painting 100-103_ 160x130cm_ Acrylic on canvas_ 2024


 Layered Painting 100-91_ 160x130cm_ Acrylic on canvas_ 2023


 Layered Painting 80-30_ 145x112cm_ Acrylic on canvas_ 2024



최소한 움직이고 최대한 표현하는 그의 작품에서는 잠재성이 곧 현실성이다. 최근 겹으로 이루어진 회화 시리즈는 블루 계열이 대표적이다. 블루는 하늘의 색이자 빛으로 인류의 상상계에서 무한대를 상징해왔는데, 그의 경우 상징주의라는 관념이 아닌 회화적 실행을 통해 무한의 느낌을 담는다. 그의 작품에는 들뢰즈가 [주름]에서 제안한 바 보다 많은 주름이 있다. 들뢰즈는 라이프니츠의 개념인 모나드를 통해 유한과 무한의 관계를 논한 바 있다. ‘울타리는 세계를 향한 존재의 조건이다. 울타리라는 조건은 유한자의 무한한 열려있음과 관련되어 적용된다’ 자연은 출발(영감)이자 과정일 뿐 결과가 아니다. 장승택은 예술과 자연의 차이에 대해 ‘예술은 항상 자연에 의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예술은 자연을 다르게 복원하고 자연을 보다 위대하고, 보다 아름답고, 보다 진실 되며, 보다 직접적으로 파악하기 힘든 그 무엇으로 만든다’(1993. 갤러리 서화 개인전 서문)고 말한 바 있다. 


두툼한 리얼리티의 원천인 자연을 예술의 언어로 바꾸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에서 ‘회화는 색채와 선을 언어의 상태로 올려놓았다’고 하면서 이를 유사언어라고 말한다. 유사언어로서의 색은 ‘새로운 변조를 만들어냄으로서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하나의 틀로서 작용’(들뢰즈)한다. 장승택의 작품은 차이로 이루어진 색채 언어의 결을 최대한 살리는데 집중돼 있다. 한편 자연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것은 그리는 이 또한 자연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생로병사 와중의 인간이 자연을 완전히 초월할 수 없다. 미술은 육체가 그림의 재료와 만나 씨름하는 과정이다. 예술은 정신만큼이나 물질이다. 정신을 외화하는 과정에서 작가와 잘 맞는 재료와 형식을 구사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는 2025년 평론가 이진명과의 대담에서 작품을 이루는 ‘생각과 물질과 감각 그리고 행위’를 열거하면서, ‘작가는 가장 자신다운 매체를 선택할 때 좋은 작업이 나온다’고 말한다. 



 Layered Painting 80-27_ 145x112cm_ Acrylic on canvas_2024


 Layered Painting 80-22_ 145x112cm_ Acrylic on canvas_ 2024


 Layered Painting 80-27_ 145x112cm_ Acrylic on canvas_2024



‘꾸준한 작업 가운데 본능적으로 찾아낸 매체’가 중요하다. 결국 ‘그 작가를 닮은 작품은 좋은 작품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예술은 유한한 인생에 무한의 계열을 접어넣는 유력한 방식의 하나이다. 그것은 장기 지속의 계획 보다는 매작품마다 실현되야 할 단타성 완벽함이다. 장승택의 중층적 화면은 무엇인가를 가리거나 수정하거나 보충하기 위해서 여러겹 칠해진 것이 아니다. 여러겹이 종합적으로 효과를 내려면 한겹한겹 모두 완전해야 한다. 색은 팔렛트가 아니라 캔버스에서 직접 섞이기에 어느 작품도 똑같지 않다. 작가가 고안하고 실행하는 형식이지만 완벽한 예측이 힘들다. 그의 작업은 매번 새롭게 시작하는 예술의 본질과 관련된다. 장승택의 작품은 작업을 지속한다는 확실성과 결과의 불확실성 그 두 조합의 결과다. 삶에 대한 성실함과 치열함이 노동이 아닌 자유와 연결되도록 하는 예술의 길이다. 그의 ‘겹의 회화’는 여러 겹이지만 둔탁하지 않다. 


일획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화면 위와 아래의 가장자리는 몇 번의 층으로 완성된 작품인지 알 수 있을 만큼 투명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적절하게도 회 뜨기와 비교한다. 재료의 선도와 요리사의 엄청난 칼 기술은 군더더기 없는 최고의 요리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중층적 화면에 남아있는 궤적들은 얇은 베일들처럼 미세한 원근감, 즉 재현적 대상이 아닌 추상적 공간 속에서 공기를 품는다. 색은 그자체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칠해진 바탕, 그리고 다른 색의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가변성을 가진다. ‘색채는 빛에 의해서 생성되며 사물의 표면 위에서 본체를 갖는다.’(2019) ’로드코의 회화에서 숭고함을 느낀다면 나의 회화에서는 빛의 층위와 매체가 어우러진 어떤 혼란함과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2025, 이진명과의 대담) 그의 작품에서 헤아릴 수 없는 선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색-빛의 관계가 매작품마다 다르게 펼쳐진다. 무엇도 재현하지 않은 형태는 사각 캔버스에 평행하게 배치된다. 



 Layered Painting P60-11_ 123x93cm_ Acrylic on Plexiglas_ 2026


 Layered Painting P60-6_ 123x93cm_ Acrylic on Plexiglas_ 2025


 Layered Painting P60-7_ 123x93cm_ Acrylic on Plexiglas_ 2025



그림을 그림이게 하는 평면적 조건에 대한 모더니즘적 자의식이 깔려있지만, 그는 그림이라는 관습적 형식에 내재된 조건들을 하나하나 지워가는 중성적 화면을 원한다. 중성적 화면은 회화라는 오래된 전통에 따라 화면에 내재된 관습을 최대한 걷어내 새로운 시작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한다. 장승택의 작품에는 붓질이 남아있지만 그것은 한번에 내리 그은 행위의 궤적일 뿐이다. 그렸다기 보다는 지우거나 닦아낸 듯한 느낌이다. ‘회화는 시간을 정지 시키고 영원히 잡아두는 힘이 있다. 시간은 소멸을 향한 맥박이다. 그 맥박의 찰나를 겹겹이 쌓아 보려는 노력이 내 작업’이라고 말한다.(2025, 이진명과의 대담) 하지만 그의 작품에도 중력은 작동한다. 가령 그의 작품을 거꾸로 걸 수는 없다. 추상미술의 초창기에 거꾸로 걸린 그림의 효과를 발견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내려오고 있다. 장승택은 자연의 외피가 아닌 과정을 따른다. 자연의 순리에 힘을 더 싣는다. 그것은 얇은색의 막으로 겹쳐진 회화의 무게를 통해서이다. 


출전; 소울아트스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