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찬 아나운서의 사회로
이 대통령은 “이곳 기무사 부지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분관으로 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1995년 종로구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이 자리에 미술관을 만들겠다’고 공약했었는데, 그때는 힘이 없었다. 이제는 대통령이 돼 할 힘이 생겼다고 생각돼 한번 해보려고 한다”는 말이 이어지자 참석자들이 모두 박수치며 기뻐했다. "일류국가가 되기위해서는 문화시민, 문화국민이 되어야 한다. 이 자리에는 존경하는 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여러 분들이 가장 좋은 역할을 해주셔야 한다. 어려워도 예산을 늘렸으며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문화하고 거리가 먼 사람을 아는데 기업하면서 일찍부터 미술전시회와 음악회에 참석해 왔다. 서로 이해하고 신뢰하고 어려운 이웃을 따뜻하게 감싸 주자" 라며 마쳤다.
신년 덕담으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고흥길, 시인 김남조 " 이 시대는 산업주의의 복제의 시대이다. 순수예술이 흥미에 밀리는데 인간의 본질은 재미보다 감동을 원하며, 소득보다 가치를 추구한다" 고 했다. 초대 문화부장관 이어령 " 광영으로 생각한다며 덕담보다 큰 선물이며 이 건물이 미술관으로 바뀌는 것은 상징성이 크다. 세게 어는 곳에 가도 미술관은 중심에 있다. 변방으로 돌던 예술이 중앙으로 온 상징이다. 이제 한국인의 머리와 가슴속에 있는 금맥을 캐는 숨겨있던 창조력을 찾을 때"라고 강조했다.
예술원 김수용 회장은 축배제의를 하며 "예술이 어려운 국민에게 용기와 꿈과 희망을 줄 때"라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을 축하하며 참석자들이 단상 뒷편으로 돌아섰을 때 휘장이 거치면서 '기무사터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태어납니다'가 노란 글씨로 쓰여 있었다. 이야기가 나왔던 기무사투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1969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출범한 지 올해로 꼭 40년. 초창기에는 경복궁 안쪽 구석의 지금은 헐린 건물을 사용했다. 1973년에는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전했다. 1986년에 다시 경기도 과천의 서울대공원 안으로 옮겼다. 건물은 그럴듯했지만 접근성이 너무 떨어지는 게 문제였다. 명색이 하나뿐인 국립현대미술관인데, 40년 내내 남의 집(경복궁·덕수궁·서울대공원) 대문을 통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던 셈이다. 이제 한국현대미술이 국립현대미술관 활동을 중심을 도약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