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 NUDE
2017-08-11 ~ 2017-12-25
소마미술관

소마미술관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면 대체적으로 몽촌토성역 1번 출구로 나와 약 700m 정도 걷는 코스를 추천해준다. 하지만 오후의 날씨가 너무 화창하고 좋아서 걸어가는 길에 햇볕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오븐구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나에게 동행이 올림픽공원역 3번 출구로 나와 3413, 3412, 30-5번 버스를 타고 한성백제박물관 정류장에서 내려 350m 정도 걷는 코스를 추천해주었다. 활기찬 분들에겐 구름없는 8월 햇볕아래 걷는 700m가 문제없을지 모르지만 늘 책상머리 앞에 앉은 운동부족의 현대인에게는 미술관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지는 구만리 같은 거리로 느껴지기도 한다. 소마미술관 방문길이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운 분들에게 이 팁을 공유하며 시작해봅니다.

소마는 작고 오밀조밀한 전시실이 나누어져 배치되어있는데 아무래도 관심을 많이 받는 작품들이 와있다 보니 바닥에 친절하게 방향이 지시되어있어서 동선이 여러군데서 꼬이는 현상이 있었다. 오디오가이드를 듣는 관람객들은 상대적으로 한 작품을 오래 감상하게 되는데 오디오가이드 없는 관람객들은 좀 더 빨리 작품 사이를 이동하다보니 속도의 차이 때문에도 병목현상이 생기는듯 했다.

작품들은 1) 역사적 누드 2) 사적인 누드 3) 모더니즘 누드 4)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 누드 5) 표현주의 누드 6) 에로틱 누드 7) 몸의 정치학 8) 연약한 몸 으로 시대별, 주제별로 나누어져 있었다.

작가들이 표현해낸 '누드'만 모아서 보니 사람의 신체에서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생략했는지가 뚜렷이 비교되어 보여서 흥미로웠다. 예술사적 가치, 작가의 명성 그런 것들로 포장되지 못하는 작가 내면의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서 몇몇 작가들의 경우에는 그 시대 사람이라 차라리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근대로 들어와 여성작가들이 등장하면서 그동안 미술에서 표현되어왔던 신체와 누드의 표현에 있어서도 전복이 일어나는 점이 보였다. 하지만 수천년간 시선의 독점을 누려왔던 남성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하자면 여전히 기존체계를 크게 의식하는 점들이 느껴졌다. 애너 리 메리트의 <닫힌 사랑> 같은 작품은 어린 소년을 그려냈지만 닫힌 문 앞에서 소년의 뒷모습에서 상황과 감정을 잘 전달받을 수 있었따.

전시실 벽에 있던 평론가들의 인용 문구는 존 버거의 문구가 가장 좋았다. 

포스터에도 사용된 허버트 드레이퍼의 이카루스를 위한 애도를 보며 다이달로스는 대체 도망나갈 수도 없는 미궁에서 어떻게 저런 크고 멋진 깃털을 구했을까가 그런 부분에 호기심이 들었다. 저 그림으로 표현될 정도로 거대한 깃털을 가진 새가 과연 지구상에 있을까. 군함새나 넓적부리 황새도 저런 크고 긴 깃털을 제공해 줄 수는 없었을 듯 한데. 물의 요정들 머리카락 뒷편에 얇은 금빛 테두리를 둘러 빛을 표현한 점이 너무 아름답고 예뻤다.

아무래도 드로잉, 에칭 등 부담을 덜고 작업된 결과물들은 좀 더 자유롭고 무의식적으로 표현된 부분들이 있어서 앙리 마티스나 파블로 피카소의 작업을 보면 신체의 어떤 부분에 특히 관심을 두었는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현대 작업들에 오면서는 형체에도 왜곡이 더해지면서 좀 더 기괴하고 덜 정제되고 더 격정적인 느낌을 받았는데 때로는 그런 감정들이 염려되게 보이는 작품들도 있었다. 리네케 덱스트라의 출산 후의 여성과 아이들을 찍은 작품은 사진을 보면서 모델이 된 분들이 과연 괜찮은가. 걱정이 들었는데 작품이 새생명을 품은 여인의 숭고함을 드러내고자 했다닌 큐레이터의 해석에 별로 동의 할 수 없었다. 세라 루커스의 스타킹에 솜을 채워넣은 작품같은 경우에는 재료가 무엇인지 알고 나서도 일견 충격적으로 다가왔는데 여자스타킹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겐 트라우마를 줄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르조 데 키리코의 <시인의 불확실성>도 매력적이었고 크리스토퍼 네빈슨의 <몽파르나스 스튜디오>는 스튜디오안의 모델과 정취 보다도 창 밖의 풍경이 훨씬 주목되었다.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작품은 루이스 브루조아의 작품이었는데 <마망>과 같은 대형 작업에만 익숙해져 있다가 수채화 드로잉을 마주하니 이 작품을 그린 사람과 <마망>의 작가가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단순하고 극명하게 표현되어있던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편집팀: 김영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