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4일부터 7일까지 3박 4일동안 일본 오사카, 교토, 나라를 저의 아내 외 2명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작년부터 계획한 여행이라서 몇 번의 출발날짜를 연기하다가 겨우 시간을 맞춰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이제껏 저의 부부는 국내 여행만 다녀봐서 해외여행은 신혼여행 이후 처음이었고 다른 사람들처럼 스포츠, 쇼핑을 주목적인게 아니라 주로 사찰과 박물관 등을 답사하는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처음 계획예상과 다르게 하루에 많은 곳을 답사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유적지 관람시간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일본은 평균적으로 오후 4시 또는 4시 30분이면 폐점을 하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여행다니시는 분들은 일정을 각 도시별로 4~5일정도 계획으로 두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2월 4일
인천공항에서 오전에 출발, 오사카에 도착. 미리 예약한 호텔에 가서 짐을 풀자마자 일정은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간 곳은 가미가타 우키요에칸(上方浮世繪館). 가부키를 소재로한 일본전통 판화로 오사카판화로도 하며 이 건물 주위로 도톤보리가 옛날 가부키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박물관인데 1층은 아트샵, 2층과 4층까지가 전시실이며 작품은 많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전시되어있습니다. 2004년 금호미술관에서 “우끼요에와 일본현대디자인전-히로시게&아와즈” 전시를 보고 난 후, 이 곳에 와서 관람하여 직접 볼 수 있었다는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두 번째 간 곳은 오사카시립미술관. 미술관 주위로 식물원과 동물원이 같이 있어서 마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주위 환경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 겨울이라서 주위에 사람들이 없었고 매우 조용하였습니다. 4일 동안 사찰과 미술관, 박물관을 답사하면서 느겼지만 우리나라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관람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이 곳은 너무 조용하다는 것입니다. 관람하면서 떠들거나 뛰는 사람들, 몰래 스트로보 발광하면서 사진찍 는 사람들이 없고 조용하게 유물작품들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유물작품들을 보면서 문의사항이 있을 때, 각 코너마다 도슨트가 앉아있는데 고정적으로 앉아있는 도슨트 몇 명과 돌아다니면서 설명을 받을 수 있는 도슨트가 많이 있어서 별도 책을 구입하지 않고도 설명과 유물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게 매우 좋으며 또한, 불교에 대한 설명을 어린이들의 시각에 맞춰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모형물과 변천사 등 모형과 자세한 설명으로 설치하여 관심을 끌도록 유도한 점 등 견학교육으로서는 최상의 조건으로 만들었다는 부분은 참고해볼만 합니다. 오사카시립미술관을 입장한 후,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몸에 지니고 있는 모든 물건을 사물함에 넣어야 했고, 그곳에서 기획한 전시의 도록은 지금까지 제작하지 않았다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관람하였습니다. 외관 건물은 작게 느껴졌는데, 미술관을 들어가서 관람해보니 다리가 저릴 정도로 유물작품들이 많이 진열되었습니다. 마침 기획전시로 중국유물에 대한 전시를 하고 있어서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관람하게 되었는데, 진열된 전시가 모두 옛날에 일본인들이 중국에서 도굴한 유물들이어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우리나라 유물들은 거의 일본에 있어서 찹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2월 5일
3박 4일 동안 많이 돌아다니면서 고생과 답사한 곳은 교토입니다. 일본은 대중교통의 대부분이 전철로 이어져 있습니다. 한국과 달리 전철이 몇 배 많았고, 처음 이용자는 헤매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는 노선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신바이시역 근처의 숙소에서 교토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40여 분 거리. 다행이 각 노선마다 급행이 있어서 왕복으로 다닐때는 편했지만 전철과 달리 버스교통은 불편하여, 곤욕을 치뤘습니다. 세 번째로 간 곳은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이 있었고,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유적은 1001구의 관음상으로 중앙에 천수관음좌상과 좌우로 관음상의 목조각이 각 500구씩 놓여있으며, 1001구의 불상 표정이 전부 다르게 표현되어있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반드시 있다고 전해집니다. 실내 촬영을 못하게 되어있어서 촬영을 못한것이 아쉬었지만, 값싸게 도록을 구입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첫째 날 오사카시립미술관에서 본 일본 조각 유물들을 봤을때도 그랬고, 산주산겐도에서 1001구의 관음상을 봐도 그랬지만, 그 당시때의 목조각 작품들이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하여, 관람객들에게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는 자체가 대단하다는 느낌을 피부로 받았습니다.



처음 느껴본 불상들을 보고 난 후, 네 번째로 간 곳은 산주산겐도 위치한 곳 건너편에 교토국립박물관이 있습니다. 일본의 3대 박물관 중에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관람할려고 갔는데, 마침 기획전이 있어서 들어갔는데 기획전 때문에 일반 전시는 모두 취소가 되버렸고 그나마 기획전마저도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높은 담으로 보이는 외관으로만 만족해야 했습니다.(한국돈으로 1인당 5만원가량 하였습니다)


원래 여행계획은 산주산겐도>교토박물관>은각사>청수사>료한지>금각사 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토역에서 하차 후부터는 모든 대중교통 수단은 버스로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정보가 필요했었고, 은각사는 현재 공사중인데다가 료한지는 버스 노선 정보가 없었으며, 교토박물관 앞에서 다시 교토역 버스터미널로 가서 정보센터에 가보니 료한지 가는 버스가 계절마다 생겼다가 다시 없어진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다섯 번째로 간 곳은 청수사(淸水寺)입니다. 청수사까지 가는 동안 걸리는 시간은 이리저리 헤맨것만 반나절이었습니다. 보통 사찰은 산속 깊숙이 있는게 대부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한국과 달리 일본은 그와 반대로 되어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주 왕래를 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청수사 가는 길만큼은 좀 고개를 올라가서 있었습니다. 옛날 성스러운 물을 마시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며, 눈을 감고 몇발자국을 건너서 돌 위에 앉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곳이기도 하며, 목조각이 발달한 일본은 이 사찰에서도 잘 나타나 있었듯이 산을 깍아 놓은 듯한 절벽 위에 수십수만개의 나무를 세워두고 본당을 만든 기요미즈노부타이(淸水の舞台)에서 교토시내가 한눈에 볼 수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찰 안에는 작은 폭포가 있는데(우리나라처럼 생각하는 폭포가 아닙니다.) 오노타키폭포라고 해서 좌측은 지혜, 중간은 사랑, 우측은 장수를 뜻해서 폭포에서 내려오는 물을 마시면 이뤄진다고 합니다.


여섯 번째로 간 곳은 금각사(金閣寺). 청수사를 관람하니 폐점시간 1시간 30분을 남기고 고민하다가 간 곳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일본의 사찰, 박물관 등은 한국과 달라서 오후 4시 또는 4시 30분에 문을 닫기 때문에 조금만 주츰거리면 하루에 볼 곳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대중교통 이용시엔 그렇구요. 관광버스라든가 차를 이용하면 다를 수 있겠죠) 그래서 거의 뛰다시피해서 겨우 도착였는데 입구 앞에서 어떤 일본인이 저희 부부가 뛰는 모습을 보고 ‘빨리 달려야 볼 수 있다. 어서 달려라~!’ 하고 제스쳐를 재밋게 해주셨습니다. 폐점시간 30분을 남기고 금각사 입구 앞에서 숨을 고른후 입장하였습니다. 이 곳에서 볼 것은 금으로 만든 인공호수 위에 놓은 건물하나, 금각사였습니다. 외관은 금칠을 했는데 1950년쯤에 불에 탔다가 1955년에 재건해서 1962년도에 금칠을 했다고 하는데 불타기 전에는 옻칠을 한 후에 금박을 입혔다고 합니다. 지는 해의 빛이 건물을 닿을때 눈부심은 멀리서 보아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가뿐 숨을 고르면서 금각사를 보다가 사찰 안에 아트샵을 들어갔는데, 폐점이라고 손님을 쫒아버리더군요. 저희 아내는 금각사에 대한 책을 구입할려고 통사정을 해도 ‘내일 다시 와라’ 라는 말과 함께 문을 걸어잡궈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둘째 날의 교토여행을 마쳤습니다.


2월 6일
전날 교토를 다녀온 후, 아내와 저는 온 몸이 천근만근이 된 상태로 다시 아침 일찍 숙소를 빠져나와 일곱 번째로 간 곳은 오사카성(大阪城). 숙소에서 출발하여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여 그나마 다행이었다.


타니마치욘초메역에서 하차 후 나와보니 오사카성역사박물관(위에서 첫 번째줄 왼쪽 사진)과 NHK방송국이 붙어있었습니다. 오사카성을 보러 간 것인데, 박물관까지 보고 가면 다음 계획 일정이 차질이 생겨서 다음 여행 때 보는 것으로 하고 지나갔습니다. 오사카성을 둘러싼 공원을 지나서 오사카성 입구가 나오는데, 큰 성벽 주위로 바닷물을 끌어다 방어용으로 만들고 가운데 성을 만들어 놓은 곳이 오사카성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잘 알고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군사적으로 만들었다고 하구요. 그 성을 가기전에 유럽식으로 생긴 건물이 하나 있는데 원래는 그곳이 제2차대전시때 사용했던 제4사단 사령부(위에서부터 두 번째 사진) 건물이었으며, 지금은 오사카역사박물관이었다가 박물관은 NHK방송국 건물옆에 새로 지으면서 옮기게 되었고 현재 옛건물로만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 성은 1583년 성을 만들기 시작하여 1583년 천수각을 완성, 1615년 에도막부(江戶幕府)의 ‘오사카 여름의 진’(위에서부터 세 번째, 네 번째 사진) 에서 히데요시는 전쟁에서 폐하고 성과 천수각도 같이 불타버렸습니다. 정권이 교체 후, 이전 천수각보다 더욱 웅장 모습으로 1629년에 완성하였지만 1665년에 낙뢰로 인하여 소실되었다가 1868년 전쟁 전후로 방화등으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소실되었습니다. 1885년 일부를 재건하였고, 1928년부터 천수각을 재건하기 시작하였으며, 1931년 완성하였습니다. 태평양전쟁 이후, 다시 부분적으로 소실되었고, 1950년에 다시 재건하여 지금의 오사카성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역사적인 시각에서 한국에 대한 감정으로 볼때는 화는 나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때는 이런 역사의 과정이 험났했었구나라는 생각과 전쟁, 방화, 지진 등으로 거듭되면서 100대 명성 중에 관광명소로 자리잡으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것을 보고 실로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사카성을 관람 후 다시 타니마치욘초메역으로 들어갈 때 시간은 어느덧 오후 12시가 되었고, 다시 빠른 걸음으로 여덟 번 째로 가는 나라의 나라국립박물관. 난바역에서 급행을 타고 긴데쓰나라역에서 하차해서 나오면 사방으로 사슴을 원없이 볼 수 있고, 나라공원 내에 박물관이 있습니다.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전시관 내에서 촬영할 수 있는 곳이라서 간단한 동의와 사인만 하면 촬영을 할 수 있습니다.(단, 나라국립박물관에서 소장품만 촬영할 수 있고, 기획전으로 외부에서 대행하는 유물들은 촬영금지. 사진촬영 허가를 내주면 팔에다 “촬영”이라는 띠를 팔에 달고 다녀야 함. 팔에 착용 후, 돌아다니면 눈에 띄어서 주위사람들로부터 촌스러움과 눈초리를 받게 됨) 이 곳은 지상과 지하 각 1층으로 되어있으며 별관 전시관 2층, 기획전시관이 따로 있고, 전체 박물관 규모는 크진 않은데 주로 일본 유물과 중국 유물이 대부분입니다. 이 곳에서도 일본 목조각품의 유물들을 볼 수가 있는데, 여행 중에 일본의 목조각품을 보면서 인물조각상에서 눈동자를 모두 그리지 않고 실제처럼 유리로 박아 넣은 유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의문점을 도슨트에게 문의를 해보니, 헤이안시대 전후로 이미 눈동자에게 유리를 넣어서 실제와 똑같이 넣었다고 하며, 점차적으로 시간이 지나서 유실되거나 보존력이 떨어져서 후세에 와서 다시 복원하였다는 말을 30분동안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원래는 5분 안에 설명을 받았는데, 저희 부부의 표정을 보고 더욱 깊이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사실 5분 동안의 설명을 이해했는데, 저희 부부의 표정이 무표정이어서 이해를 못하는 줄로 받아들이고 계속 설명을 받았음)

일본 여행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어느 사찰이건, 미술관, 박물관이건 간에 목조각 유물을 자주 접하였고, 그렇게 복원과 보존을 사실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라는 것에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지금도 제 기억으로는 동적인 자세이라기 보다 마치 움직이는 듯,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 였습니다. 물론, 일본의 모든 유물이 다른 국가의 유물보다 뛰어나다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한국의 유물 또한 숨가쁘게 표현되어지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박물관의 특이할 점은 지하에 어린이들을 위한 불교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일본에 어떻게 유입이 되었고, 불상 제작 과정과 불상의 표정과 손동작의 의미 등을 모형과 알기 쉬운 설명으로 전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도 모형과 사진으로 봐도 이해할 수 있게끔 설치해놓았고, 흥미유발을 일으킬 수 있는 충분한 소재라서 박물관 밖으로 나갈 때까지 지루하지 않게 동선을 만들어 놓았다라는 것이 저의 소견이었습니다. 또한, 좋은 점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아트샵에서 도록 구입을 하는데, 지난 전시도록 또는 전시 중의 도록 등을 값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과 전시 때마다 나오는 도록의 종류가 한정되어있지 않고 여러 종류로 선택해서 구입할 수 있게 만들었는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한국의 유적답사 여행을 할 때마다 사찰에서 기념품 외엔 사찰에 대한 설명의 도록이 전혀 없어서 도서관에서 찾아서 봐야 하는데, 이번 일본 여행 중에 가는 곳마다 도록이 있어서 값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는 점이 한국과 다른 부분이었습니다. 박물관의 모든 전시관을 관람 후, 후문으로 나오면 또 다시 사슴을 원없이 보게 됩니다. 주의할 점은 사슴이 있는 곳에서 가방을 열지 마세요. 먹이를 주는 줄 알고 뒤 쫒아 다닙니다.

후문을 따라 직진하면 아홉 번째로 가는 동대사(東大寺)가 나타납니다.(아래 첫 번째 사진) 동대사 입구 앞에는 사슴이 매우 많아서 사람을 피해서 가기보다 사슴을 피해서 가야했습니다.



이 곳은 8세기에 쇼오무천황이 건립하여 752년에 완성 후, 두 번의 화재로 건물이 붕괴되고 1692년에 다시 재건하였는데 원래의 크기보다 2/3 축소되어서 지어진 후, 지금까지 세계최대의 목조건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동대사를 들어가기 전 첫 번째 입구를 들어가면 양쪽에 사천왕상이 있는데 1203년에 제작된 ‘금강역사상’과 ‘밀적금강상’이 보입니다. 일본의 사천왕상 대부분 모두 화나있는 듯한 표정입니다. 입다문 상도 있긴하지만, 입을 열어 더욱 무서운 표정을 더한 것이 많습니다. 이 곳 동대사 대불전(東大寺金堂)안에 비로자나(毘盧舍那 또는 盧舍那)불상을 볼 수 있습니다.(위에서 두 번째 좌우측 사진) 대불전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3개의 커다란 불상과 불상뒤로 가면 좌우측 끝으로 나무로 제작된 사천왕상이 세워져있습니다.(위에서 세 번째 좌우측 사진) 그렇게 대불전 안에서 한 바퀴를 돌고 나와 좌측에 빨간 잠옷(?)을 둘러쓴 목조불상이 있는 ‘빈두로존자상’인데(위에서 네 번째 좌측 사진) 일찍부터 존상을 만지고 자신의 아픈 부위를 만지면 병이 낫는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시대적인 당시에 실존했던 제자가 빈두로존자였다고 합니다. 이 상을 가까이서 보면 아래를 내려다 보는 듯한 눈의 표정이 마치 눈동자가 저를 보려고 할 것 같은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불전을 보고 난 후, 길따라 안으로 더 들어가보니 가정집처럼 보이는 집들이 있었고 다시 길따라 올라가니 커다란 목조건물로 된 이월당(二月堂)과 신사가 있었습니다.(위에서 네 번째 우측 사진과 다섯 번째 좌측 사진/삼월당(三月堂)은 이월당 위치보다 뒤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어서 시간관계상 못갔음) 이월당으로 올라가면 나라의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었으며, 해가 질 때 쯤 다시 내려와 열 번째로 답사할 쇼오소오인(正倉院)으로 이동하였으나, 오후 3시이후가 되면 폐점이라고 문이 굳게 닫혀있었습니다.(위 사진 중에서 맨 아래 하단 사진) 이 곳은 한국의 신라와 백제의 유물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폐점시간의 황당함과 아쉬움을 남기고 숙소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이 동대사, 이월당, 삼월당은 모두 우리나라 백제와 신라인들이 이곳에 와서 불상제작과 불교미술문화를 전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안내문에는 그러한 표시가 되어있지 않아서 씁쓸한 기분으로 관람하였습니다.


2월 7일

일본 여행일정 중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일요일인데다가 한국과 똑같이 아침에는 한산한 분위기였습니다. 한국으로 출국시간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아침 일찍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위에서 첫 번째 사진) 요도바시역에서 하차해서 미술관으로 가는 동안 오사카시청, 나카노시마도서관, 츄오공화당의 유럽식 건물들이 즐비하였고, 우측으로는 토사보리가와강이 있고 수상버스승선장과 버스도 보았습니다. 이 거리에서 특이한 점은 금연의 거리라서 담배를 피다 적발되면 범칙금을 내야한다는 경고문과 함께 깨끗하게 조성되 있습니다.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에서는 “국제교류특별전『북송여요청자―고고발굴성과전』(國際交流特別展:北宋汝窯靑瓷-考古發掘成果展)”을 하고 있어서 중국, 한국, 일본의 도자전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 미술관도 특별전시장 외엔 사진촬영을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셔터소리와 스트로보를 사용하면 안된다는 점입니다. 특히 SLR카메라(교환식 렌즈)는 촬영할 때 셔터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소리가 나면 마스크를 쓴 안내원이 조용하게 다가서서 셔터소리를 내지 말아달라고 지적을 합니다. 이 곳은 특이하게 사진촬영은 되는데, 모든 소리는 내지 말고 관람만 하라는 지시를 합니다. 저는 서너번 지적받다 포기하고 저의 아내가 컴팩트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한참동안 촬영하다 어느 일본인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 일본인이 저희를 계속 인상을 찌푸리며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한국 유물이 전시되고 있어서 책에서만 봤던 것을 실제로 보기 때문에 촬영하게 되었는데, 옆에서 방해된다고 인상을 쓰면서 쳐다보고 있던 것입니다. 이 미술관은 지상 3층으로 되어있고 2층과 3층이 전시장으로 되어있습니다. 2층은 중국, 한국, 일본의 전시실로 나눠져 있고, 3층은 개인 콜렉션 전시장으로 되어있는데 3층을 보고 놀람과 화를 동시에 나타났습니다.(위에서 좌우측 사진) 한국에서 기증한 컬렉션이고 ‘이병창’이라는 사람이 한국도자 301건, 중국도자 50건, 및 한국도자연구기금의 기증을 받은 것을 기념으로 이병창컬렉션한국도자의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서 1999년 3월에 개설한 것이라 합니다. 한국도자 301건...제가 본 한국도자품만 하더라도 진귀한 것들이 많았으며, 왜 한국으로 가서 기증을 하지 않은것인지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른채 관람을 해야만 했습니다.(www.moco.or.jp에서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일요일인데다가 오전이라서 미술관 주변이 조용해서 야외스케치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위쪽 사진중에 맨 아래끝 사진) 그 사람들 뒤에서 잠시 보았는데 앉아서 너무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좀 쌀쌀했는데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앉아서 사실적으로 그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3박 4일...짧은 일정이었습니다. 적은 비용으로 갈 수 있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이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다음에는 1주일 또는 보름여행으로 변경하기로 약속을 하고 아쉬움을 남겨둔 채 일정은 끝을 냈습니다.
(※ 참고로 일본으로 미술문화유적 자유여행 하시고 싶어하시는 분들은 계절마다 개점과 폐점시간이 변동되니 사전에 미리 조사한 후에 가셔야 합니다. 모르고 가시면 고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