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조 : 큰 창을 향해 반짝이는 그림자
2021.5.25.~ 2021.6.12
김세중미술관
제니조(조은정) 작가는 매체의 경계가 허물어진 현대예술의 영역 안에서 모호해진 회화의 주체성에 관해 질문한다.

제니조, 구, 거울 그리고 접힌 종이(터너의 시점 차트를 따라), 2017-20, Oil on Canvas, 92x92cm
터너의 드로잉 차트는 흥미롭게도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모두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제니 조는 그것을 전유하여, 접어 놓은 종이 위에서 망막(의 한 점)으로부터 쏟아지는 질서정연한 원근법적 시지각의 피라미드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상상하다가 모순과 불가능성을 잔뜩 지닌 회화 여덟 점을 그려놓은 듯하다. 정사각형의 이 회화 면적에서, 제니 조는 구와 거울과 접힌 종이의 열화된 이미지들, 말하자면 “죽어있는 육체”와도 같은 허상들을 스승 삼아 쫓아 오고 있다. 그것은 또 동시대의 회화로서 손색 없는 참조들을 걸친 채 회화의 역사로 회귀하려는 진지한 물음들을 남긴다.

제니조, 한지 프레임 세트-흰 색과 검정 색, 2015, Aluminum, Size Variable
내부가 텅 빈 알루미늄 프레임 구조물은 제니 조가 2015년부터, 마치 접한 종이를 펼쳐 놓은 것처럼 이동과 보관에 용이한 회화 프레임 구조로 설계한 결과물이다. 작품은 회화적 조건에 대한 실험을 가동시켜 그 결과물의 유효성을 알리는 일련의 미술적인 무대와 같다.

김보원, 김도연, 곽지원, 추승민, 제니조 협업, 한가한 친구들의 수호신은 구름, 2021, AR, Size Variable
AR 기반 작품으로, 관객은 타블렛틀 통해 전시실 공간을 가로지르며 여러 이미지들을 지우기도 하고 새로 보여주기도 하는 구름 이미지를 볼 수 있다. ‘한가한 친구들의 수호신’이라는 말은 작품의 전거가 되는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의 고대 그리스 희극 <구름 The Clouds>에서 구름을 조롱조로 묘사하는 데서 따온 말인데, 소크라테스와 같은 한가한 사상가들을 수호해주는 것은 모양만 화려하고 실속은 볼 것 없는 구름뿐이라는 뜻이다. 제목만 보면 작가가 회화 또는 예술 전반을 조롱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구름은 상술한 새로운 회화의 개념과 별반 다르지 않게 주변 공간 및 이미지들과 역동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자유로운 궤도를 그리는 유동적인 주체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김승주 rami101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