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전시를 볼 때 말하는 것들》
서울시립미술관 SeMA 벙커
2021.10.12.-11.21

포스터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의 단편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에서 제목을 딴 이 전시는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 당신은 왜 전시를 보시나요?”라는 부제를 가진다. 전시는 무엇이고, 왜 볼까? 전시를 봤다면 나는 그 전시를 어떻게 봤을까? 어떠한 전시를 보고 나왔을 때 종종 듣게 되는 “그 전시 어땠어?”라는 질문에 한 번이라도 대답하는데 어려움을 느낀 사람이라면 SeMA 벙커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번 전시에 관심이 생길 것이다.

이은희, 핫_스턱_데드,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0분, 서울시립미술관 제작 지원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것은 이은희의 <핫/스턱/데드>(2021)이다. 20분 분량의 이 영상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디스플레이 기계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일상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다양한 스크린의 내부 구조를 살펴보면서 ‘문화적 산물’ 이라 불리는 이미지들이 사실은 스크린과 액정의 화학적 원리와 결부되어 있음을 밝힌다. 또한 스크린을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들이 언젠가는 고장이 나서 폐기되거나 수리되어야 하는 “유통기한”을 가진다는 것에 주목한다. 즉, 경제 구조 속에서 스크린-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 단순히 감각-인지적인 차원에서 그치는지를 질문하며 ‘전시’라는 무대 속에서 이미지를 ‘관람’ 하는 행위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갈유라, 원점(原點), 2021, 6채널 비디오, 컬러, 60분, 서울시립미술관 제작 지원
갈유라의 작품은 6채널 비디오로 양 옆에 3개씩 설치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이것들이 보통의 시선 높이보다 훨씬 아래쪽에 설치되었다는 것인데, 여섯 개의 동그란 스크린들 속에서는 마치 TV를 판매하는 곳에서 틀어놓을 법한 역동적인 영상들이 재생되고 있다. 드론을 활용해 촬영한 듯한, 스크린 속 풍경에 빠져들 것만 같은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높이와 이미지-레터박스 비율 때문에 관람자는 몰입에 실패하게 된다. 스크린 속 영상은 우리가 이미 익숙해져 있는 문법을 갖고 있으나, 작가는 방해요소를 넣음으로써 ‘전시’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보여준다.

김방주, 버섯구경, 2021, MDF, 각재, 바퀴 등, 191.3x90x190cm, 서울시립미술관 제작 지원

김방주, 버드 워칭 헛, 2021, 퍼포먼스, 가변설치, 서울시립미술관 제작 지원
김방주의 작품은 계단을 넘어야 한다. <버섯 구경>(2021)이라는 이름의 계단을 통해 작은 문을 넘으면 전시의 뒷공간에 도착하게 된다. 이 곳이 <버드 워칭 헛>(2021)이다. 이곳에서 갈유라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 스크린의 뒷면과, 김방주 작가가 전시를 준비하면서 발생한 부산물을 만날 수 있다. 나무 의자, 전기 포트, 간식 등이 그것이다. 언뜻 보았을 때 전시와 동떨어진 것 같은 이 공간에는 작은 스크린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스크린 속 영상 역시 전시와는 관련 없는, 또 다른 국제적 프로젝트의 과정이다. 작가는 이 공간을 통해 전시 공간을 확장, 연결하고 있다.

손현선, 만질 수 있나요?, 2021, 패널에 아크릴릭, 점토, 33.2x24.3cm
손현선의 회화연작 <-(), 의, 여기(거기), 가>(2021)은 벽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따라서 손, 팔 등 신체의 일부분을 그린 이 연작을 보기 위해서는 시선은 물론 신체를 계속해서 움직여야 한다. 작가는 전시연계 프로그램으로 <보이지 않는 대화>를 진행하는데, 여기에서 작가는 ‘작품’이 되어 관람자는 ‘작가와의 대화’가 아닌 ‘작품과의 대화’를 함으로써 작가와 작품, 그리고 관람자 사이의 경계와 위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격주로, 인트로, 2021, 종이에 디지털프린트, 40x28cm(24), 40x300cm(전체)
마지막으로 격주로의 공간이다. 격주로는 관람자, 창작자, 기획자들로 이루어진 ‘격주로’ 만나는 팀이다. 이들은 <산만한 걸음 삼키는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6가지 작품을 선보이는데,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인트로>(2021)이다. 아코디언 형태를 띤 드로잉북으로,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전개가 달라지는 특징을 갖는다. 격주로의 작품들을 감상하다보면 사람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제멋대로인, 머뭇거리는, 교차하는>(2021) 이다. 이 목소리는 격주로의 ‘리뷰 토크’에서 발췌한 것으로, 전시를 보고 나누는 대화 속에서의 경험, 표현 들로 이루어져있다.

격주로, 제안들, 2021, 인쇄물, 29.7x21cm(8)
원탁 위에 8개 종류의 인쇄물들과 함께 필기도구가 놓여져있다. 격주로가 제작한 <제안들>(2021)로, 관람 경험을 관람자의 ‘몸’과 함께 사유하면서 기록할 수 있는 도구들이다. ‘첫눈에’, ‘관람 동선’, ‘인상적인 관람 시퀀스’, ‘들려온 소리와 남의 말’,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상태’, ‘만족지수’, ‘새로운 몸 감각’, ‘기억 나를 이루는 것 지금의 판단을 만드는 배경’ 이라는 제목으로 전시 관람 경험을 몸과 결부지어 자세하게 기록할 수 있다.

<제안들> 예시 중
전시 보는 것을 좋아하고, 전시를 자주 보는 사람에게 이 전시는 ‘전시’를 ‘본다’라는 행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한다. 오감을 넘어서는 전시가 늘어가는 요즘, 우리는 전시를 왜,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충분한 사유가 뒷받침 되었을 때 보다 풍부한 전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황수현 vmflxlzhzh1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