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감정딕셔너리

2022.02.03.-02.12

인사갤러리


  마포구의 인사갤러리는 2월 3일부터 2월 12일까지 《1인칭 감정딕셔너리》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인사갤러리 신년기획전 《예술증후군-증상과 치유展》의 일환으로 기획된 감만지 작가와 지미례 작가의 2인전이다. 두 작가는 자기 자신과 사람들 사이의 ‘감정’에 주목하여, 동화 같은 분위기의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하지만, 주로 다루는 감정의 형태나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각각의 개성을 드러낸다. 비슷하면서도 흥미로운 차이를 지닌 두 작가가 제시하는 ‘감정의 딕셔너리’를 펼쳐보도록 하자.




전시장 외관




전시 전경



 

  먼저, 감만지 작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인물화로 표현한다. 이때 감정은 계획되지 않은 즉흥적인 감정으로 드러나며, 하나의 단어로 정의내릴 수 없는 복합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기존에 그의 감정은 할아버지를 투영시킨 노인의 초상을 통한 삶의 희로애락과 관련된 것이었다.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겪은 작가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동화같이 사랑스러운 인물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감만지 작가는 그동안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기고 간 것들을 되돌아보고, 스스로의 기원을 쫓아가다 보니,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과 경험을 마주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동그랗고 까만 코를 가진, 항상 미소를 띤 귀여운 인물들로 표현되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가족사진, 미뉴>처럼 가족의 모습이나 연인을 연상시키는 <그녀와 떨리는 저녁 식사>, 그리고 <일곱 미니들과 발레니라>에서 볼 수 있는 발랄한 발레리나까지 한 데 모여, 전시장 안을 엉뚱하고 활기찬 분위기로 메우고 있다. 

 



감만지, <가족사진, 미뉴>, 2022(왼쪽) | <Mommly Bear>, 2022(가운데) | <어디봐 삐뽀야!>, 2022(오른쪽)




감만지, <그녀와 떨리는 저녁 식사>, 2022




감만지, <일곱 미니들과 발레니라>, 2022


  하지만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행복하고 즐거운 감정만이 아니다. 불완전한 기분, 그림을 그린 날의 에너지, 그리고 이로 인해 생성되는 즉흥성들이 작품에 녹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친할아버지의 죽음이 불완전한 기억 속 형태로 흩어지고 번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작업 기법과 연관성을 지닌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가는 가장 먼저 젯소칠을 한 캔버스 위에 혼합재료를 다시 덧칠하고 물사포질을 반복한다. 이러한 작업은 동판화의 에칭 과정과 닮아있다. 판화를 전공한 작가의 성향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캔버스의 골을 메꾸기 위해 수십 번 반복해야 하는 이 과정은 단순하지만 반복적이며, 작가가 자신의 감정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을 제공해준다. 그렇게 작업된 화판 위에는 밑그림 없이 마음 가는 대로 붓질이 더해진다. 갈대나 빗자루, 오래돼서 성긴 붓 따위로 그린 즉흥적인 붓질은 감정의 응어리를 승화시키고 삶과 인생에 대한 질문들을 풀어나가게 해준다.


  반면, 지미례 작가가 발굴한 감정들은 괴물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기괴하지만 사랑스럽고 폭신폭신한, 어떻게 보면 작은 벌레를 연상시키는 괴물들. 이는 자신의 두려움, 결핍, 불완전성, 미숙성, 비표준성을 상징화한 것이다. 작가는 깊고 어두운 내면에 숨겨놓은 괴물에게 눈을 그려주고 감정을 불어넣어, 이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심리적 결핍은 작가의 정성을 거쳐 따듯하고 동화적인 존재로 성장하게 된다. 




지미례, <Blue-Flavor>, 2021(왼쪽) | <Untitled>, 2021(가운데) | <Cactus Flavor>, 2021(오른쪽)




지미례, <Get it right Ⅱ>, 2022



지미례, <관찰>, 2021

 

 이 괴물을 보송보송한 털을 지니고 있는데,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펠트 위에 오일파스텔과 연필을 사용하여 연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동양화적 미감이 살아있는 세밀화를 연상시키며, 학창시절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의 이력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도톰한 펠트 위에 그려진 따듯한 색감의 오일파스텔로 탄생한 괴물은 사랑스럽고 귀여운 캐릭터로 여겨지게 된다. 

  작품을 둘러싼 액자 또한 눈에 띈다. 점토를 기반으로 하여 작가가 직접 만든 이 액자는 곡선과 자연물을 연상시키는 부조를 포함하고 있으며, 작품의 일부이자 작품의 의미를 풍부하게 해주는 데 일조한다. 이때 괴물은 마치 액자 안에 갇힌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보호를 받는 입장이 된다. 예로부터 ‘액자’라는 것은 소중한 사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주었고, 이러한 액자 안에 두려움과 결핍을 상징하는 괴물을 넣어 둔다는 것은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작가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작품 중 <관찰>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관찰> 작품에서 ‘액자’는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하며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괴물 신체의 여러 부분은 액자에 나 있는 구멍을 통해 클로즈업 되며, 작가는 확대된 결핍을 관찰하고 소통을 시도한다. <Get it right Ⅱ>에서는 ‘내가 한 최선의 행동이 일을 그르칠 때’의 상황을 실타래처럼 엉킨 괴물로 표현하였다. 하지만 실이 꼬여 있는 와중에 실마리를 보여줌으로써, 일을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희망과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두 작가가 제시하는 ’감정의 딕셔너리‘는 일반적인 사전(딕셔너리)처럼 정확한 감정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삶을 살아가면서 경험한 추억과 후회들은 작가들의 손을 거쳐 작품화되고 이들은 모호하면서도 새로운 ‘감정딕셔너리’를 써 내려가고 있다. 

  

  한편, 인사갤러리는 다음 전시로 언경, 권진우, 장수시 작가의 <3인의 작가 생존신고>, 그리고 김현실, 김재현, 조창환 작가의 <어느 순간, 어던 응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https://insagallery.net/)


인사갤러리(서울 마포구 양화로 45 메세나폴리스 2층)

관람 시간 : 11:00-18:30(월~토/일요일 휴무/1월1일, 추석연휴 휴무)



윤란 rani75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