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巨匠 이란 호칭의 가벼움'


거장巨匠이란 '어떤 분야에서 기술이나 능력이 아주 뛰어나 완성된 결과물을 이뤄낸 사람'을 지칭한다.  

클 거巨, 장인 장匠을 써서, 특정 분야에서 최고 경지에 오른 대가나 마에스트로를 이르는, 함부로 호칭할 수 없는 말이다.

미술가, 음악가, 영화감독 같은 예술가에게 주로 쓴다. 기술자나 엔지니어에게도 쓸 수 있긴 하다.

'천재'가 잠재력에 방점이 있다면, '거장'은 눈에 보이는 뛰어난 결과물과 업적에 더 방점이 찍힌다.


흔해빠진 ‘거장’이란 칭호는 예술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 우려가 있다.

오늘날 문화 예술 기사를 읽다 보면 가장 자주 마주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거장(巨匠)’이다.  사방에서 거장이 넘쳐나는 지금,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진정한 거장의 부재를 겪고 있다. 단어의 무분별한 남발이 단어 자체의 권위와 예술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거장이란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후대에 깊은 영감을 주며, 한 시대를 이끌어간 거목에게만 허락되는 존칭이다. 오랜 세월 동안 갈고닦은 깊이와 타협하지 않는 예술적 고집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문화계와 미디어는 ‘거장’을 단순한 마케팅 수식어나 대중적 인지도를 뜻하는 수단으로 소비하고 있다. 흥행에 성공하거나 트렌드를 잘 타면 순식간에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이러한 현상은 크게 세 가지 문제를 낳는다.


아무에게나 거장이라는 호칭을 붙이면서, 평생을 바쳐 예술의 깊이를 탐구한 진짜 거장들의 업적이 상대적으로 퇴색됨으로써 예술적 가치의 하락을 낳는다.

젊고 유망한 예술가에게 너무 일찍 ‘거장’이라는 패를 쥐여주는 것은 성장에 대한 독이 될 수 있다. 치열한 고뇌와 실험을 통해 더 성장해야 할 시기에 안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칭송하는 ‘거장’의 작품에서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못한 대중은 결국 평단과 언론의 안목을 불신하게 되고 대중의 피로감과 불신을 낳는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거장’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감의 상실이다. 비범함과 평범함의 경계가 무너질 때, 예술을 향한 대중의 기준과 안목도 함께 무너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찬사를 아끼지 않는 관대함이 아니라,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엄격함이다. 좋은 예술가를 ‘유망한 작가’나 ‘뛰어난 연출가’로 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칭찬의 인플레이션을 멈추고 ‘거장’이라는 단어가 가진 본래의 묵직한 가치를 되찾아주어야 할 때다.

구글 이미지 메뉴에서 '거장'이라고 키워드를 입력해보면 금방 거장이란 호칭의 잣대가 드러난다. 언제 어떤 사람들에게 거장이라고 부르는지 말이다.

'클 거 巨' 자는 한 사람이 거대한 거목나무를 재는 거대한 잣대를 그린 그림문자임을 상기해봐야만 한다.

이 그림글자의 본뜻을 깨닫는다면 함부로 '거장'이란 칭호를 붙이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든 남발하면 한없이 가벼워지고 대중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마는 것이다.


#정택영노트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