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2019.03.20-06.09@대구예술발전소대구예술발전소, 청주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영주 148아트스퀘어의 공통점은 모두 연초제조창 즉 담배 공장이었거나 담배 공장의 창고였다는 점이다. 1909년 인천 마에조노 공장이 대구 동인동에 연초제조시설을 옮겨오면서 처음 대구전매지국이 시작되는데 이것이 대구예술발전소 건물의 전신이다. 1946년에 처음 문을 연 청주 연초제조창이나 1970년 준공식이 이루어진 영주 연초제조창보다 한참 앞선 역사를 갖는다. 현 공장건물의 모습은 1960~80년대 증축을 통해서다. 70년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전매청에서 담배공장들을 준공했었고 이들은 산업시설이 드물던 농촌 중소도시에서 지역경제를 이끌었음은 당연지사다. 그러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산업구조의 변화로 꽤 많은 공간들은 문을 닫았다.

1876년 부산 개항 이후 수입담배가 들어오면서 담뱃대 대신 종이로 마는 궐련이 유행하게 되고, 이 궐련은 1894년 청ㆍ일전쟁과 1895년 단발령ㆍ양복 착용 결과 널리 퍼지게 된다. 1900년경엔 내륙의 소읍까지 광범위하게 보급되었는데, 다수를 차지하는 일본 수입담배에 이어 외국 자본의 투자로 담배 제조ㆍ판매까지 이루어진다. 당시 담배는 일본의 경제 침투를 상징하는 상품이었기에 1907년 국채보상운동의 금연운동은 일종의 반일운동으로 해석된다. 1910년대 담배의 생산액이 정미업 다음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던 것이, 담배를 국가가 독점하는 전매상품으로 했던 이유다. 그런 담배공장을 경제개발 5개년의 일환으로 이용했다는 것은 씁쓸한 역사적 아이러니다.
담배 공장은 규모가 크다. 그래선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하는 것은 비단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대만의 송산문창원구 松山文創園區는 청ㆍ일전쟁 후 일본총독부에 의해 1937년 준공된 것으로 우리와 흡사하다. 이외에 스페인의 타바칼레라 예술센터 Tabakalera International 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e, 포르투갈아르키펠라구 현대미술센터 Arquipelago Centro de Artes Contemporaneas 역시 담배 공장이었다.

대구예술발전소 1층 / 수창공원과 수창청춘맨숀
대구예술발전소는 2008년 연초제초장 별관창고를 리모델링했다. 큰 규모 만큼이나 내부에는 다양한 공간이 있다. 전시공간과 수장고,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예술정보실과 북라운지 만권당, 공연장, 회의실, 키즈스페이스, 레지던시 등으로 구성된다. 인근 수창청춘맨숀은 KT&G 옛 사택을 리모델링해서 청년예술실험공간, 복합문화공간, 레지던시, 시민참여 공간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 사이엔 수창공원이 있다. 그래서 건물하나만 존재하는 느낌이라기보다 커다랗게 묶인 예술단지의 느낌을 주었다. 주변은 주택가라 조용하기도해서 휴식을 기대하기에도 적당해 보였다.

Flo Kasearu, 항쟁, 2015
'현대미술(혹은 동시대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전시는 '바로 지금 그 지역의 역동적 문제를 다양한 매체와 개념적 전략을 통해 다루는 미술양식'에 집중해 국내외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입구에서 제일 먼저 만난 작품은 지붕을 오려 종이비행기처럼 접는 영상이다. 작가 플로 카세아루의 영상작품은 큰 나무들 사이로 삼각 지붕이 아름다운 풍광을 비춘다. 거기에서 작가는 지붕을 오려 종이비행기를 접는다. 〈항쟁〉이라는 제목의 이 영상은 에스토니아 탈린의 팰글린 지구에 있는 작가 본인의 집 지붕으로 진행했던 퍼포먼스를 촬영한 것이다.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에스토니아이지만, 2014년에도 영공을 침범하는 러시아로 인해 불안감을 안고있다. 이에 작가는 저항의 메시지로서 이같은 퍼포먼스를 벌였다.

최선, 나비, 2014-2018
작가 최선의 나비들은 한사람 한사람의 숨길을 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사회 속 개인의 존재를 너무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만드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보이지 않는 숨길을 드러내는 이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벽을 채우는 거대한 화면에 사람의 숨길은 나비처럼 피어올라있다. 서로 다른 사람의 숨은 이렇게 또 비슷한 모습을 한다. 또 다 같아 보이는 이 숨들이, 서로 다른 한 명 한 명의 숨이다. 숨은 생명을 직접적으로 이르기도 하고, 함께 하는 일을 우린 '호흡을 맞춘다'고 부른다. 특히나 요즘 사람에 관해 힘들었던 내게 달리 다가온 작품이다.
정아람, 동료가 동료에게, 여성이 여성에게, 2017-2018
작가 정아람의 〈동료가 동료에게, 여성이 여성에게〉는 한국에서 나고자란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공간을 보여줬다. 공중화장실에 들어가면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화장지가 말려 막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오래된 화장실이면 더욱 그러하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그러한 공간을 전시장으로 가져와 관객이 직접 구멍을 막도록 유도한다. 내부의 영상은 작가가 '#화장실구멍' '#몰카구멍'으로 검색한 SNS상의 정보를 바탕으로 서울의 여러 화장실을 찾고, 구멍을 휴지로 막은 흔적을 초소형 스캐너로 기록한 것이다. 젠더 폭력이나 혐오 폭력 등 감시와 불안의 장소에서의 행위를 이에 대응하고 저항하는 개인들의 협력으로 탈바꿈한 것이 매우 재미있다.

김희선, 원더랜드20_아카이브 프로젝트, 2012 / 홍희령, 마음에 지우다, 2016
작가 김희선의 〈원더랜드20_아카이브 프로젝트〉와 작가 홍희령의 〈마음에 지우다〉는 관객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 〈원더랜드20_아카이브 프로젝트〉는 급격한 인구감소가 진행된 미래에 과거 젊은이들의 이미지와 사고를 아카이빙해 보여지게 될 것 이라는 설정의 작업이다. 벽면의 영상은 실제로 사람이 없는 대구의 번화가 동성로를 보여주는데, 새벽 풍경을 촬영해 인적이 없는 낯선 풍경을 만들었다. 〈원더랜드20_아카이브 프로젝트〉는 설정대로 컴퓨터를 조작해 작가가 아카이브 된 사람들을 관객이 직접 둘러볼 수 있다. 〈마음에 지우다〉는 관객 참여 퍼포먼스로 지우개로 지우는 작업을 시도했던 결과물인 지우개밥이 쌓여있다. 벽면엔 퍼포먼스 진행당시의 사진이 걸렸다. 지우다, 지워지다라는 말에서 '종이에 쓰여진 글을 지우개로 지우다'/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우다' 로 쓰일 수 있는 상반된 의미를 추출하고 관객에게 '마음에 지워진 무거운 짐 모두 지우고 가세요'라는 시도를 했다.

이완, 메이드 인 시리즈(대만, 태국, 미얀마, 베트남, 말레이시아), 2013-2016 / 생산품(설탕, 실크 슈트, 황금, 고무, 팜유)
영상이 상영되는 공간은 각각 커튼을 들여 구분한 3개로 이루어졌는데 시간의 부족으로 하나만 겨우 볼 수 있었다. 작가 이완의 〈메이드 인 시리즈〉는 직접 대만, 태국, 미얀마, 베트남, 말레이시아에 가서 현지의 산업화 과정 이전 형태의 노동인 전통기법으로 직접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설탕, 황금, 팜유, 고무, 비단이 그 나라에서 어떤 과정으로 제작이 되었는지를 읽어주는 과정에 아시아의 근대 역사와 국가들 간의 관계, 특히 근대화에 이르게 된 과정을 짚어준다.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점점 더 몰라도 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거대한 구조가 이끄는 방향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는데, 매우 동의하는 내용에 꽤 긴 영상을 남은 시간을 들여 보게되었다. 영상을 보다 보니 한 켠에 전시품이라고 하기엔 어떻게 봐야할지조차 난감했던 조악한 생산품들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홍영인, 스틸 라이프 퍼레이드, 2015
끝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언젠가 본 적 있었던 작가 홍영인의 자수 작업이었다. 〈스틸 라이프 퍼레이드〉는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북한퍼레이드 이미지를 확대시켜 자수로 선보인 〈침묵하는 북〉의 연작이다. 2013년 평양에서의 한국전쟁 60주년 기념행사 중 집단 퍼레이드와 1974년경 북한 어린이들의 퍼레이드는 40년이란 시간의 격차가 느껴지지 않는다. 경쾌한 색에 작업에 사용된 소재들은 이들의 목적과는 달리 경쾌하고 밝으며 심지어 자유롭게까지 보이게도 한다.
이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있었고, 예술정보실이나 만권당 그리고 수창청춘맨숀의 전시도 보고 싶었으나.. 이 전시에 1시간 넘게 할애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재방문을 기약할 수밖에..
(내용 참고 출처)
인천일보, '인천개항장 이야기-담배와 인천'
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772144#08hF
영주시민일보, '폐쇄됐던 담배공장이 문화의 향기를 피운다'
http://www.yjinews.com/news/articlePrint.html?idxno=45236
동부창고 홈페이지
https://dbchangko.org/
대구예술발전소 홈페이지
http://www.daeguartfactory.kr/kor/artfactory/history.action?pageIdx=272
에스토니아-러시아분쟁
http://www.nowar.net/bbs/board.php?bo_table=w_woww_1&wr_id=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