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일 예산 수덕사를 찾았다. 거기 외로우나 사랑받는 이응노가 있었다! 가까운 일본은 예술가가 스쳐간 곳에까지 기념물을 세우고, 유럽 도시들은 그들의 손때만 묻어도 박물관을 짓는다. 우리는 불신의 극에 다다른 정치인들의 생가는 복원해도 존경받는 예술가들의 생가나 유적이 버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가운데 동양인 최초로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명예상을 수상하여 한국의 대표적 화가로 인정받던 고암 이응노(顧庵 李應魯) 화백의 체취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수덕여관이 있는 듯 싶어 애처롭다.

수덕여관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찬리 4-1번지에 있는 충청남도 기념물 103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수덕사 입구에 있어 천년사찰의 풍채까지 더욱 빛내주는 초가 형태의 건물이다. 유홍준이 다녀간 기념인지 ‘문화유산답사기’ 간판이 머리 위에 걸려 있다. 수덕여관은 고암이 1945년 해방 직후 인수해 다른 사람에 의해 운영되고 한국전쟁 피난 때 머물렀다. 1958년 제자인 박인경과 사랑에 빠져 프랑스로 떠났다가 1967년 동백림사건으로 강제 소환되어 대전과 서대문교도소에 복역한 후, 삼라만상의 영고 성쇠를 특이한 추상적 문자로 담은 암각화(岩刻畵) 10m와 2m 두 개가 밖뜰에 있다. 비좁은 안뜰에는 오벨리스크를 닮은 굴뚝이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서 있다. 고암은 다시 프랑스로 떠나고 1989년 외롭고 서글픈 혼이 되었으나 본부인 박귀희(2001년 2월 사망)가 혼자서 이곳을 지켜왔다. 이후 먼 친척이 산채음식을 팔면서 운영해왔는데 그 일을 그만두면서부터 지금까지 관리 소홀로 폐가처럼 방치되어 있다. 서도동기(西道東器)의 모범이라고 한 암각화며 한 때 살았던 수덕여관을 관람객도 아껴야겠지만, 수덕여관의 행정구역인 예산군의 향후 움직임을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이응로미술관을 짓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출신지역이란 점을 내세워 그동안 미술관 건립을 희망해왔던 충남 홍성군을 물리치고, 이제 고암의 미망인 박인경 여사(78세. 화가)와 대전시가 고암의 초기 활동지이며 대전교도소에 복역했었다는 이유를 들어 대전에 미술관을 건립하기로 한 것이다. 이 화백의 탄생 100주기인 내년 6월 착공해 2006년 10월에 준공할 계획이다. 2007년 1월 12일 고암 탄신일에 맞춘 개관기념전 및 프랑스 파리에 있는 고암재단과의 공동 특별기획전을 기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