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기념비-절대적인 것에 대하여
2021.8.6-8.26
아마도예술공간

전시장 입구
불교가 지배적이던 고대 국가에서 절대자의 진신사리는 부처님 그 자체라고 믿었다. 고대인들은 부처님을 위해 커다란 무덤인 스투파를 만들어 소중하게 모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한국의 석탑은 그러한 절대적 존재를 향한 사랑과 존경을 당시의 세계관과 사상 그리고 신앙심에 따라 조형화한 고전이다. 부처는 하늘에 존재하는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진리의 담지자로서 그 시대에는 그가 보편으로 여겨졌지만 현 시대는 다르다. 탑을 여전히 만들지만 모든 공력을 쏟아 붓지도 않고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양식을 창안하지도 않는다. 이번 전시는 과거 절대성을 표상했던 석탑을 매개물로 하여 그것이 어떤 시대적, 사상적인 맥락에 따라 조형화될 수 있는가를 살펴본다.

조혜진, 탑 만들기, 종이, 나무 블록 등 혼합재료, 가변설치, 2021
조혜진 작가는 온라인상에 ‘탑 만들기’라는 검색어를 통해 찾은 여러 탑의 만들기 방식과 결과를 공유한다. 작가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탑 만들기 방식들을 관찰하며 도식화된 탑의 모습과 구체적인 대상을 떠올리게 하는 특징을 포착하는데, 한편으로 그보다도 쌓기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만든 방식을 따라 종이로 접고, 쌓고, 만든 탑의 형상을 제시함으로써 재생산에 동참하게 된다. 그것은 무언가가 쌓여 있는 상태로서의 탑을 틀에 박힌 개념으로 단순하게 이해하던 작가에게 형태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록 도식화된 탑의 형상이지만 새로운 시선으로 미처 둘러보지 못한 부분을 확인해볼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기대한다.

연기백, 앉음의 형태, 나무의자, 기와, 실, 물, 이끼, 220x108x108cm, 2021

연기백, 앉음의 형태, 잉크젯 프린트, 32x22cm, 2021
나무의자와 기와 등을 자신의 오브제로 채택한 연기백 작가는 석탑을 둘러싼 과거와 현재를 여러 층위에서 고민하며 <앉음의 형태>를 마련했다. 답사현장에서 발견한 기와들을 빌려와 모양과 색깔을 관찰하고 하늘과 땅을 잇는,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물로서 상정한다. 하늘과 가까이 하던 기와는 건물이 무너지면 파편이 된 채 땅으로 내려온다. 하지만 탑 주변에 남아 과거의 흔적을 이야기한다. 기와로 둘러싸인 공간에는 작가가 표면을 깎은 나무의자 하나가 놓여있다. 깎여나간 나무 조각 편들은 빛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그림자처럼 자리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진리를 향한 탐구와 모색의 가능성이 현 시대에서는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바라보고 있다.

권용주, 양식 연구, 석고, 시멘트, 분말 안료, 가변설치, 2021 (사진: 조준용∥출처: 네오룩)
종이박스, 플라스틱 버킷, 라바콘, 플라스틱 박스, 스티로폼 박스, 화분 받침 등을 채택한 권용주 작가는 석탑의 양식 연구를 바탕으로 한 조각들을 제시한다. 이들은 석탑의 부재를 연상케 하며 작가는 자신의 작업 방식에 있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 마치 석공의 마음으로 돌을 캐고 자르거나 정으로 다듬는 시간들을 온전히 느꼈다. 또한 분말 안료를 더해 색을 가진 옷을 입혔다. 작품들은 조각적 단위로서 하나의 석탑을 이루기 위한 시작의 모습이거나 해체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워크숍 기록

워크숍 기록

영화감독 김지환, <현대의 조각가, 경주 석탑을 마주하다>
작가들은 헤겔의 예술철학, 한국의 석탑 연구, 석탑 답사 등의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인류가 생산한 예술의 철학적 의미를 헤겔의 어법으로 이해해보고, 한국 석탑 양식의 의미와 조형탐구를 통해서 우리 시대 조각의 지평을 생각해본다. 이는 이론에서 현장으로 그리고 다시 전시 공간으로 이동하여 재현되면서 기록과 영상으로 남기고 있다. 그들은 경주 답사를 통해 석탑의 구조, 비례, 질감, 중량감 등을 관찰하고 훼손된 부분에 대한 시간성을 느꼈다. 또한 석탑이 자리한 위치가 주는 풍광과 현재 풍경과의 교차를 통해 세월의 의미를 성찰한다.

한광우, T.D.R game, 복합재료, 가변설치, 2021
한광우 작가의 작품은 ‘탑돌이’에서 기인하였다. 탑돌이란, 승려가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면서 부처의 공덕을 노래하면, 신도들이 뒤를 따라 등을 밝히며 탑을 돌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의식을 말한다. 탑돌이에서 착안한 이 게임은 관객들이 어떤 내용을 소망하고 그 성취를 위해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관계를 묻는다. 그 용기와 호기에서 발생하는 행위가 삶을 의미 있게 변모하기도 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주제로 삼고 있다.
4명의 작가들은 석탑의 조형성과 구조적 특징과 정성스러운 만듦에 대해서, 탑의 형태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과 재생산에 대해서, 그 장소가 품고 있던 인간적인 이야기에 다가선다. 사회 뿐 아니라 예술도 한 시대만을 바라보아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인류가 만들어온 생산 양식, 역사, 문화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때만이 세계를 이론적, 역사적, 정신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등장한 집단적 이상과 염원이 담긴 석탑이라는 매개체는 옛 조상들의 미의식을 확인하고 그로부터 현재를 사유할 수 있게 한다. 나아가 진리를 향한 긍정을 찾아가는 통로를 열어주고 있으니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안채원 chaewon63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