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를 재탐색합니다
UN/LEARNING AUSTRALIA
2021.12.14.-2022.03.06.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서울시립미술관은 작년 12월 14일부터 올해 3월 6일까지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를 진행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과 아트스페이스, 시드니가 공동 기획하였으며, 한국과 호주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 기획의 주요한 태도이자 방법은 ‘배움’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제약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사람들은 고립되었다. 따라서 공동체와 돌봄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쌓아올린 지층의 불확실함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상호 의존과 배움의 가치를 되새겨봐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배움’은 우리를 완결되거나 고정된 지식에 머물지 않게 해주며, 우리의 인식을 확장하고 일깨워주는 과정이 될 것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한 축을 이루는 호주의 예술가와 콜렉티브, 토착민 아트센터 등 35명(팀)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다양한 방식으로 ‘배움’의 방식을 제공한다. 그들은 호주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들을 탈피함으로써 호주의 미술과 사회를 구성하는 복잡한 갈피들을 사유한다. 또한 자주권과 자기결정, 장소에 새겨진 과거-현재-미래, 공동체 속에서의 공유 등과 같은 사유가 포함된 작품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특정 주제나 고정된 관람 시선으로는 묶일 수 없는 형태로 제시되어, 관람객들이 자신만의 경로 탐색하고 호주 사회의 복합성과 현 상황을 조우할 수 있기를 유도한다. 



전시 전경



  한편, 한글과 영어로 함께 쓰인 전시 제목,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UN/LEARNING AUSTRALIA’는 상호 의존적인 배움의 과정을 의역한 결과이다. 이 중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는 내비게이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 ‘UN/LEARNING AUSTRALIA’와 함께 제시되는데, 이는 ‘배움에는 목적지조차 정해질 필요가 없으며, 중요한 것은 실천’임을 의미하고 있다.


탈로이 하비니, <교화>, 2020 | 아치 무어, <연합 국가>, 2014/2017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탈로이 하비니는 <교화>(2020)에서 공동체의 협동을 강조한다. 작가는 식민주의와 폭력적인 자원 추출의 혼란 속에서 토착 지식의 체계와 실천을 계승하고자 한다. 따라서 종종 특정한 목적으로 임시 건물을 짓는 하코 부족 구성원들과 함께 전시장 내에 건물을 지었다. 이는 고정된 구조를 강요하는 거대한 역사에 맞서, 연속성과 일시성의 방식을 제안한다. 
  또한 이 건물과 함께 14개의 깃발이 걸려 있는데, 이는 상상 속의 호주 원주민 국가를 연상시키는 ‘가짜’깃발이다. 아치 무어 작가는 관례를 따라 각 그룹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기표(지역 및 문화적 상징)들로 깃발을 제작하여 국가를 분열시키려 한 식민지 초기의 계획에 반박한다. 


리처드 벨, <대사관>, 2013- | 알렉산드로 카바디니 감독 <닝‘글라 아-나(이 땅의 굶주림>, 1972

  전시장 내에 세워진 또 다른 임시 구조물은 리처드 벨의 <대사관>(2013-)이다. 예술가이자 정치 활동가인 리처드 벨은 1972년 처음 등장한 원주민 텐트의 서사를 소환한다. 원주민 텐트 대사관은 1972년 정부가 원주민의 토지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항의하며 생겨나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호주의 옛 국회의사당 맞은편에 서서 토착민의 자결권과 자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작가가 재탄생시킨 <대사관>은 텐트 안에서 상영되는 <닝‘글라 아-나(이 땅의 굶주림>(1972)와 함께 텐트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동시에 한국 사회 속의 차별과 혐오를 논의하는 장소가 된다.



다니엘 보이드, <무제>, 2021


다니엘 보이드, <무제(37°33’51.2”N 126°58’24.4”E)>, 2021

  서구 식민주의가 어떤 관점으로 토착민과 그들의 역사를 바라보고 재현하였는지 탐구하는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볼록한 점들이 화면 전체를 뒤덮은 다니엘 보이드의 작품은 기존의 이미지를 왜곡시킨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공식적인 기록 사진과 개인적인 사진을 모두 활용하여 자신의 멜라네시아 혈통과 연결 짓는다. 노예화, 이주, 왜곡된 역사를 토로하며, 기억 속의 개인적, 문화적, 기록적 그물망을 형성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니엘 보이드의 수많은 망점은 서울시립미술관 입구 유리 파사드 전면을 장식한 커미션 작업, <무제(37°33’51.2”N 126°58’24.4”E)>(2021)로 이어져, 전시 공간에 새로운 빛의 패턴을 자아낸다. 각각의 점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로 이해될 수 있으며, 수많은 점들은 복수성(plurality)과 다양성(multiplicity)를 의미한다. 관람객들은 이를 통해 시선을 환기하고 시각적 스펙터클을 경험하게 된다.  


아가사 고스-스네이프, <사자의 꿈>, 2019/2021

     한국 관람객의 퍼포먼스로 완성된 작품도 있다. 아가사 고스-스네이프의 <사자의 꿈>(2019/2021)은 매일 한 사람이 전시장에 머무르며 책을 읽는 퍼포먼스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 초대된 8명의 독자들은 따로 시간을 내어 독서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소설가 박서린의 『더 셀리 클럽』을 시작으로 책을 읽어 나가며, 그 다음 각자 자신이 읽을 책을 골라 독서를 지속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방식은 전시장 내에 설치된 책장에 책들이 쌓일 수 있게 하고, 노동에 대한 사유를 자아내며, 사람들 간의 느슨한 연결 관계를 만든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UN/LEARNING AUSTRALIA》는 다양한 공공 프로그램과 온라인 플랫폼을 함께 운영한다. 또한 참여 작가들과 콜렉티브, 아트센터들은 인스타그램 계정 ‘52ARTISTS 52 ACTIONS’(@52artists52actions)에 ‘배우기와 비워내기’의 개념에 반응하는 새로운 디지털 커미션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는 지리적 한계를 넘어서, 호주와 한국의 교차점과 모순을 탐구해보고 새로운 경로를 개척해 나갈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SeMA 러닝 스테이션 : 전환》 전시 전경



  해당 전시 외에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2층에서는 《SeMA 러닝 스테이션 : 전환》(1.15-2.20)이 진행 중이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각기 다른 경험과 기억, 지식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감각을 공유할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공공미팅-배움의 전환>프로그램에서 국내외의 기획자, 연구자, 매개자들이 함께 대화를 나눴으며(1월 15일, 16일 진행), <설계회의>를 통해서는 미술관이 상호성에 기반한 배움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회의를 진행하고자 한다.(1월 25일, 2월 15일) 


관람객들이 박보나 작가의 퍼포먼스에 참여하고 있다.

  <상황>이라는 키워드 안에서는 작품 또는 다른 주체들을 다르게 바라보고 미술관에서 가져야 할 관습적인 몸짓과 마음가짐에서 벗어나 미술관에서 ‘경계 넘기’를 시도해 나갈 예정이다. 이에 박보나 작가와 손현선, 장수미 작가가 참여하여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반면, <리허설>은 배움의 주체들이 상호적인 배움의 과정에서 자신이 놓인 배경과 앎의 테두리를 넘어서기를 시도해볼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이다. 작가들의 워크숍을 통해 ‘앎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배움의 네트워크’를 형성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대화>는 런던 소재의 연구 기관인 애프터올, 그리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런던예술대학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의 학생들을 배움의 현장으로 초대한다. 이들은 소장품을 매기로 하여, 위계에서 벗어나 모두가 앎의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대화’를 전개해나가며,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나눌 예정이다. 《SeMA 러닝 스테이션 : 전환》은 프로그램 참석을 희망하는 사람들 위해 사전 신청을 받고 있다. 자세한 설명은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와 공식 SNS에서 확인 가능하다. 

관람 시간 : 10:00-20:00(화-금)/10:00-18:00(11월-2월)/10:00-19:00(3월-10월)/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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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란 rani75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