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희 : 자연스러운 인간
2021.12.16.-2022.02.27.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서울시립미술관은 작년 12월 16일부터 올해 2월 27일까지 송상희 개인전 《자연스러운 인간》을 진행한다. 송상희는 현대 사회의 모순에 대해 다양한 미디어를 수용하여 섬세한 서사 구조로 풀어낸다. 신화, 언론 보도, 사록 등 여러 문헌을 집요하게 수집하고 역사적 상흔이 남은 장소를 직접 탐방한 결과를 음악, 드로잉, 문학 등 타 예술과 함께 영상화하는 실험을 직속해 오고 있다. 송상희 작가는 지난 20여 년간 여러 전환기를 맞이하였는데, 초기에는 대한민국의 다양한 여성상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여, 여성이 속한 사회, 국가, 세계로 사유를 확장해나갔다. 따라서 사회적 통념과 위계, 전쟁, 식민사관, 자본주의로부터 소외된 삶을 조명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소외된 존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연스러운 인간’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전시의 제목이기도한 ‘자연스러운 인간’은 니체의 『선악의 저편』에서 인용한 문구이다. 그는 절대적 이원론은 비판해 왔으며, 현실에서 “자연 그대로의 인간(homo natura)이라는 끔찍한 본바탕이 다시 분명하게 인식되어야만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전시 입구


전시 전경

  《자연스러운 인간》은 인간의 ‘끔찍한 본바탕‘으로 되돌아가 자연 그대로의 인간 모습을 되돌아보고, 그 사이에서 실마리를 얻고자 기획된 전시이다. 언제부터인가 서로를 배척하는 사회, 신자유주의 속의 무한 경쟁, 그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 속에 존재하는 다면적인 개개의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작가는 다양한 촬영기기와 정보 전달 매체를 드로잉과 오브제와 함께 조합하여 참여자와 상호 영향적인 관계를 형성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보인다. 이는 미디어 간의 경계를 초월한 예술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관람객들과의 능동적인 소통을 유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새롭게 의뢰한 커미션 작업 6점과 국내 미공개 작품 1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전경





<사과>(2021)

  전시장에서 첫 번째로 만나게 된 작품은 <사과>이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이나 문학에서 언급되는 사과에 대한 다양한 내용과 이미지를 중첩시키거나 교차시켜 만든 영상작업이다. 사과는 중세 때부터 선악과의 상징이었으며, 작가는 이를 진리와 거짓, 선과 악, 좋음과 나쁨 등 다양한 이분법적 구분을 재고하기 위한 모티프로 활용한다.
  영상은 3채널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영상은 코끼리가 동물쇼를 하는 영상, 우주 실험에 이용된 침팬지 ’햄‘의 기록 영상과 함께 카프카의 『변신』에서 발췌한 인용구를 보여준다. 여기서 사과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 활용된 존재에게 주는 보상 혹은 벌이라는 양가성을 지닌다. 반면, 두 번째 영상은 갈릴레이의 지동설과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핵개발 실험을 조합한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에게 득이자 독이 되기도 하며, 진리 또한 가변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영상은 튜링의 전기 『이미테이션 게임』과 애니매이션 <백설공주>를 참조한다. 튜링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숨겨진 주역이었지만 성소수자였기 때문에 영국 사회에서 범죄자로 규정되어 화학적 거세를 강요받는다. 영상은 튜링이 청산가리가 발린 사과를 먹고 자살했다는 설과, 1937년 <백설공주> 애니매이션을 좋아했다는 일화에 기초하여 제작되었다. 독사과를 먹고 죽었던 백설공주가 결국에는 다시 살아난 것처럼, 현대에 이르러 튜링이 재평가되고 있음을 제시한다.



<대지의 노래>(2021)

  이어서, <대지의 노래>는 작가가 하늘, 바다, 길, 건물 바닥 등 다양한 장소와 자연물들을 카메라로 담은 영상 아카이브 설치 작업이다. 화면에는 기름유출 피해지역인 태안군의 의항리에서 모항까지 가는 바닷길이 등장하기도 하며, 화학공장 화재로 인해 대기오염이 발생한 네덜란드 마을에서 무더기로 버려진 방울배추들을 목격하고 공 형태로 제작한 카메라를 발에 굴려 촬영한 내용 담겨있기도 하다. 
  또한 작가는 역사적 상흔이 있는 장소를 방문하여 영상으로 남겼다. 희미한 바람개비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낮은 돌무더기 사이를 거니는 영상은 2010년에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부모보다 먼저 죽은 아이들이 묻힌 일본의 오소레산을 방문하여 촬영한 것이다. 작가는 망자를 추억하고 진혼하기 위해 양쪽 신발에 카메라를 달고 그 시선을 화면에 담았다.
  그 밖에도, 30년 전 방사능이 휩쓸고 지나가 유령도시가 된 체르노빌과 프리피야트, 우크라이나, 제 1차 세계대전 희생자들의 묘지가 있는 프랑스 베르덩, 16세기-19세기의 대서양 노예  무역 거점이었던 영토 등을 다루며 대지가 지닌 상처들을 담담히 위로한다. 



<꿈>(2021)



<빈산에 사람은 없고 물 흐르고 꽃 피었네>(2021, 안견의 <몽유도원도>모작)



<지구에서 날아온 전자벌레>(2021)


<지구에서 날아온 전자벌레>(2021) 중 영상 작업 부분

   <꿈>은 과거-현재-미래,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단채널 영상과 오브제로 구성된다. 먼저 영상 <꿈>은 안견의 <몽유도원도> 속 복사꽃 밭과 강화도 화순의 고인돌 공운의 나무가 중첩되며 꿈과 현실의 분간이 어려운 장면으로 시작한다. 복사꽃 밭에서 마주한 풍경은 잊힌 죽음들을 암시하는 참담한 모습을 비춘다. 비좁은 고시원, 구의역 지하철 승강장, 양재천, 청계천, 불광천 등 배경이 되는 각 장소는 뉴스에서 한번쯤 접했을 빈곤과 소외로 인한 사회적 타살을 암시한다. <꿈> 영상 속 현장에서 비춰지는 오브제들은 전시장 내에 다시 개별적으로 전시되며, 익명의 화자와 나누는 문자 메시지에서 단순히 원작의 모방이 아니라 전혀 다른 개체 혹은 생물체로 거듭난다. 그 중 영상 속 구의역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도구로 소모되는 사람들이 우주를 떠도는 소행성과 같이 묘사되듯, 문자 메시지에서 소행성은 20억 년 전 지구에서 기계적인 노동을 강요받았던 ’전자벌레‘로 지칭된다. 이처럼 <꿈>의 무릉도원에는 끝내 실현되지 못한 유토피아들이 가득하다.



<말걸기>(2021)


<말걸기>(2021) 영상 작업 부분 확대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상인 <말걸기>는 16개의 분할된 다중화면과 단일화면이 교차되며 6개의 드론 스피커와 말걸기를 이어가는 구조이다. 송상희는 시민을 향한 무차별적 테러가 발생하거나, 민족분쟁의 아픔을 지닌 장소를 직접 방문한다. 지금은 평범한 일상이 지속되는 곳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이 생채기를 지닌 장소들을 영상으로 조각조각 분할시킴으로써,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때로 이들은 서로를 닮아 연결된 풍경을 만들어 내기도한다. 영상 속에는 존 버거의 『결혼을 향하여』에서 발췌한 텍스트가 더해지는데, 이 이야기 속 인물들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불분명한 상태에 놓이기도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이 낯선 이와 대화를 나누듯, 다중화면의 화자와 드론 스피커는 ’너와 나‘의 존재에 대하 말걸기를 시도한다. 소설 속의 인물들이 절망과 희망이 오가는 삶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처럼, 다시 평온한 일상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슬픔의 기운이 공존하는 장소에서 서로를 향한 혐오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편견에 맞서고, 상처를 보듬는 송상희의 작품은 각종 혐오가 넘쳐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공생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송상희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모두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관람 시간 : 10:00-18:00(11-2월 동절기, 토, 일, 공휴일)/10:00-20:00(화-금) /월요일, 1월1일 휴관

윤란 rani75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