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인 9색
2022.01.18.-2022.02.05.
갤러리베누스


  갤러리 베누스는 1월 18일부터 2월 5일까지 개관기념전 《9인 9색》을 개최한다. 2022년 1월 미사강변에 새롭게 자리 잡은 갤러리 베누스는 관람객들에게 미술품 관람과 구매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기능하고,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다양한 기획을 선보이는 등 해당 지역의 문화 허브로 자리매김할 목표를 지니고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유명한 신진작가들을 지원하여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도모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특정 미술 분야나 유행에 치우치지 않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온 9명의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장 내부는 이상원, 이사라, 김미숙, 하명은, 민경아, 이예림, 지미한, 조정은, 윤영혜 작가의 작품으로 가득 채워져, 각각의 개성 넘치는 대화들을 이어간다. 



전시 입구


전시 전경(갤러리 제공)


이상원
  먼저, 이상원 작가는 중학교 2학년 무렵, 서울로 이사를 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붐비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말한다. 낮밤 없이 붐비는 도시, 대학시절 학교 가까이에 있던 한강시민공원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은 작가에게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군중이 그려낸 인상적인 풍경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200호 이상의 큰 캔버스를 수많은 작은 사람들로 채우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부감시점이나 파노라믹 시점을 적용하게 되었다.
  이 그림들을 멀리서 바라보면, 화면 전체가 동일한 색이나 형태로 무한 반복되는 올 오버 페인팅(all over painting)처럼 보인다. 비록, 작가의 그림은 군중의 이미지라는 구상적인 표현방식에서 시작했지만, 빈틈없이 꽉 채워진 화면과 비슷해 보이는 군중 개개인의 모습은 우리의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해주기도 하면서, “우리가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만큼은 만인이 동등한 무게로 존재한다는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라는 작가의 가치관 또한 뒷받침하고 있다.



이상원, <Red and Blue>, 2013


이상원, <The Crowd>, 2021

이사라
  이사라는 행복하고 호기심 가득한 꿈의 세계, Wonderland를 탄생시키는 작가이다.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인형들에서 영감을 받아, 화면 안에 개성 넘치는 소녀, 요술 봉, 풍선 등을 등장시킨다. 여기에 밝고 다채로운 컬러가 더해져 이사라 작가의 작품은 우리를 동심의 세계로 인도한다. 
  독특한 표현 기법도 돋보인다. 작가는 날카로운 칼을 이용해 스크래치를 내어, 네거티브 드로잉(Negative Drawing)을 시도하는데 이로 인해, 매우 섬세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또한 수차례의 물감을 얇게 덧칠하며 매끈하게 표현된 표면 위에 다양한 물성을 이용하여, 마치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연출시킨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상반된 표현기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작가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더욱 다채롭게 해주는 요소로 작동한다. 마치 소중한 보석 상자와 같은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꿈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이사라 작가의 작품들


이사라, <Wonderland-이루어질꺼야!>, 2021


김미숙
  김미숙 작가의 작업에는 수많은 점들이 등장한다. 점은 모든 형태의 시작이며 사람이 눈으로 인지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조형요소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모든 형태의 출발점인 점에서 출발하여, 이를 선과 평면으로 확장시키고 생명력과 우주의 원리를 담고자 한다. 점으로 구현해낸 여체와 꽃의 형태를 봐도 그렇다. 생명의 잉태, 인간과 자연, 우주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작품의 여백에 사용된 오방색 또는 여러 가지 색과 모노톤의 다양한 색은 치유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작가는 다양한 색에서 발산되는 파장에너지와 인체의 치유에너지를 연관 지어 설명하면서, 색이 주는 치유력을 강조한다. 작가의 그림은 일종의 ‘아트테라피 (art therapy)’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그리고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이 색다른 힐링의 시간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김미숙 작가의 작품들



김미숙, <Flower>, 2019


하명은
  하명은 작가는 개성 넘치는 팝아트를 선보인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에는 팝아트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키치‘와 ’페티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의 결과를 모방하는 ‘키치’는 그저 과정으로 존재하고, 궁극적으로는 ‘탈회화적 추상/탈회화적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대가들의 작품으로부터 과감하게 잘라낸 이미지 조각들을 한없이 확장하여 붙여나갈 수 있도록 작업을 이어나가고, 조각난 이미지들로 감상의 혼란을 유발한다. 작품 속에서 대가의 작품들은 하나의 사물이 되고, 작가는 그 사물의 본질을 뽑아 자신의 작품의 본질 일부로 재구성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하명은 작가의 작품은 생산의 익명성, 선명한 선과 색채의 사용이라는 팝아트적 요소를 분명 포함하고 있지만, 이는 외형상의 접근에 불과하다. 개념과 작업 행위까지 고려한다면, 더 깊은 의미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결국 하명은 작가는 탈회화적 추상과 구상까지 아우르는 ‘탈회화적 회화’를 제시하고 있으며, 고정적인 미술사조에서 벗어난 확장된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명은 작가의 작품들



하명은, <18개 브러쉬>, 2021(위) | 하명은, <For BRUSH TREE NO.7>, 2016(아래)


민경아
  민경아 작가는 책거리 민화의 형식과 내용에 지금이라는 시대성과 여기라는 정체성을 교차시킨다. 옛 책거리민화를 보다가 ‘어쩌면 이리도 현대적인 양식일까’ 라는 생각은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 화폭 안에 다양한 시점이 존재하고, 고정된 것 없이 미끄러지기 일보직전인 사물들. 불안해보이지만, 각각의 소재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모두 좋은 의미를 지닌 사물들로 채워져 있다. 
  작가가 구현해낸 현대판 책거리는 서로 아무 연관이 없는 사물들이 엉뚱하게 결합되어 본래의 용도가 아닌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기도 한다. 이때 관람객들은 마주치는 대상에 담긴 자신만의 추억과 기억을 소환하여, 당대적이면서 사적인 책거리를 완성하게 된다.



민경아, <책거리 Books & Things>, 2021(왼) | 민경아, <책거리 뒤샹>, 2021(오)



민경아, <그나저나 다른 곳을 바라보는>, 2020(왼) | 민경아, <서울 범내려온다 새날아든다>, 2021(오)


이예림
  이예림 작가는 작품은 혼자서 도시를 거니는 한 사람의 시선에서 시작하는데, 이 시선은 작가 개인의 시선이기도하다. 작가라는 꿈을 지닌 채, 퇴사 후에 홀로 여행을 떠난 그는 낯선 도시인 뉴욕에서 마주친 건물들을 스케치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그곳에 대한 특별한 감상을 지고 있지 않았던 작가는 뉴욕 여행 이후 도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상하이나 방콕 등 여러 도시에서 몇 년 간 살게 되면서 도시를 거닐고 관찰하였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도시를 지키는 것은 늘 건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건물의 종류는 다양하다.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건물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건물들일 것이다. 이는 복잡한 내면을 숨긴 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일상과 닮아 있기도 하다. 작가는 견고하지만 부드럽고, 직선적이지만 유기적인 선이 얽힌 건물들을 그려내며,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을 드러낸다. 



이예림 작가의 작품들


이예림, <Village>, 2020


지미한
  지미한 작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떠오르는 추억의 소재들을 꺼내어 보고 탐닉하면서 이를 캔버스에 옮긴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Oldies But Goodies 시리즈에는 작가가 좋아했던 영화, 음악, TV프로그램, 소유했던 물건들, 당시 유행했던 브랜드의 로고와 기호, 한번쯤 듣거나 보았던 명곡과 명화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2018년에 개봉했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언급한다.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룹 ’Queen’과 ‘Freddie Mercury’를 추억하게 하였으며, 혹은 그 인물과 문화를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그들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작용하기를 바란다. 관람객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소재들을 보며, 추억에 잠기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지미한, <Oldies But Goodies 18>, 2020



지미한, <Time to Jazz No.27>, 2022


조정은
  어느 날 작가는 화분을 선물 받게 된다. 그러나 이는 곧 시들어 버리게 되고, 제대로 돌보지 못한 미안함과 더 이상 시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붓을 들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조정은 작가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그린다. 그림을 다 완성한 후에는 그림 속의 대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작업 초기에는 한 화면에 한 가지 사물을 기록하다가, 수원 행궁동의 다실바 의상실 사장님이 폐품을 모아 만든 화분을 본 것을 계기로 여러 사물들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사물이 본래의 역할에서 벗어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작가는 쓸모없어진 사물들의 윤회를 그려낸다. 또한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팬지꽃의 꽃말은 ‘나를 생각해주세요.’라고 한다. 이 꽃말을 되새기며, 사물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일상을 채우는 평범한 것들의 사라짐을 추억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정은, <다실바 화분 #14>, 2018(왼쪽) | 조정은, <다실바 화분 #35>, 2022(가운데) | 조정은, <다실바 화분 #29>, 2021(오른쪽)


윤영혜
  윤영혜 작가는 저부조의 마티에르를 부여한 ‘클레이 페인팅(Clay painting)으로 이미지의 물성을 극대화하거나, 회색조의 페인팅 위에 흰색 물감을 오일과 섞어 불투명하게 덧입힌 ‘화이트 글레이징(White glazing)’ 기법을 통해, 안개가 낀 듯한 흐린 풍경을 그린다. 따라서 관객들은 이미지의 모호성은 강화되고. 흩뿌려지고 희미한 읽기 어려운 이미지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무심하고 해독 자체가 불가능한 불친절한 작품을 표방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작품 이면에서 비로소 해석과 소통의 문을 여는 무엇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윤영혜 작가의 <‘n’의 풍경>은 n이 스스로 지우기와 다시 쓰기를 통해 변신을 거듭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를 지우고 타자를 수용하는 n들의 집합을 보여주는 작가의 회화는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게 된다.    


윤영혜, <‘n’의 풍경> 시리즈, 2021


윤영혜, <Eating Flower>, 2018

  
  한편, 갤러리 베누스는 오는 2월 8일부터 2월 26일까지 《박재영: Warm happiness in life(일상의 따뜻한 행복)》전시를 앞두고 있다. 구상과 비구상 분야를 넘나드는 박재영 작가의 작품을 보며 ‘일상의 따뜻한 행복’을 되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자세한 소식은 갤러리 베누스 블로그와 공식 SNS에 게시될 예정이다.

관람 시간 : 11:00-18:30(화-토)

갤러리 베누스 블로그
갤러리 베누스 공식 SNS : 인스타그램 @_gallery_venus_
윤란 rani75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