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훈 : 선험의 전이

2024.8.13-9.26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문화예술회관은 2024년 8월 13일부터 9월 26일까지 《곽훈 : 선험의 전이》를 개최한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은 2008년부터 대구 화단의 원로작가를 선정하여, 작품세계를 집중조명한다. 올해는 곽훈(b.1941)을 선정하였다. 작가는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 후 1975년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1969년 전위적인 예술단체인 ‘한국아방가르드협회( Avant-garde)를 단체를 결성, 창립 멤버로 활동하였다. 미국으로 떠나게 되며 국내 화단과의 연결 고리는 상대적으로 약해졌지만, 초창기 그의 전위정신은 그의 작가 생애를 관통하는 바탕이 되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회고전 형식으로 초기작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감상할 수 있으며,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이런 전위정신을 느낄 수 있다. 전시의 제목인 ’선험의 전이‘에서 ’선험‘이란 철학적 관점에서 경험이 없이도 알 수 있는 보편적 개념으로, 작가의 작품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원초적인‘것을 바탕으로 작가가 작업을 이어가는 모습을 ’전이‘로 해석하였다.




곽훈이 그동안 천착해 작업해온 4개의 주제-’기氣‘, ’찻잔Teabowl‘, ’겁Kalpa, 겁/소리Kalpa/Sound‘, ’할라잇Halaayt‘로 전시를 구성하였다. ’기氣‘에서는 ’동양의 정신세계를 서양 표현방법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작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형상을 그리고 그 위에 색을 입혔다가, 문지르고 벗겨 내는 것을 반복하여, 캔버스 안에 무한한 역동성을 담아내고 있다.




’찻잔Teabowl‘은 평면작업, 드로잉과 작가가 가마에서 구운 찻잔이 설치되어 있다. 작가는 ’작은 하나의 찻잔이 세상에서 가장 큰 무게와 기능과 공간을 가질 수 있는 어떤 미학을 가지고 있다고 보지요‘라고 말한다. 그에게 찻잔은 구체적인 형상을 넘어 그 안에 담겨 있던 것, 안에 있던 것이 쏟아지게 난 후를 상상하게 만드는 메타포이다.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찻잔이라던가, <가마> 속에 들어있는 찻잔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되는데, 작가의 유쾌한 해석이 돋보인다.






’겁/소리Kalpa/Sound‘은 박물관에 들어온 듯 수많은 고고학적 흔적이 겹쳐진 캔버스가 펼쳐진다. ‘겁(劫)’은 고대 인도에서 가장 긴 시간을 나타내는 단위이다. 작가는 ‘겁’의 시간 속에서 소멸하고 생성하는 생명의 원시성을 보인다. 색채를 두껍게 바른 뒤 나이프로 긁어내며, 색들이 생성되어 쌓였다가 이내 긁혀진다. <겁/소리Kalpa/Sound> 연작 또한 이런 확장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굴 속 벽화로 보이기도 했다가 세월이 오래된 성벽의 표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동양의 철학적 개념과 생명력에 주목해 온 작가의 관심사가 드디어 ‘할라잇Halaayt’으로 이어진다. ‘할라잇’은 알래스카 이누이투 족의 언어로 ‘신의 강림 혹은 신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작가는 고대인들이 고래를 염원하는 샤머니즘적 바람을 시각화하였다. 솟아오르는 고래의 역동성. 거친 파도를 이끌고 헤엄치는 고래. 작가는 화면 속에서 화려하고도 힘찬 붓질로 고래가 캔버스를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다, 마치 하늘과 교감하는 것처럼 물을 뿜는 장면을 보게 만든다. 이번 전시에서는 설치작업 <2,250m depth>이 전시되는데, 2,250m는 고래가 잠수할 수 있는 깊이이다. 고래가 깊은 잠을 자는 심해로 빠져들며 전시는 끝이 난다.




곽훈은 한국 추상 표현주의의 대가이면서도 현재도 새로운 실험에 계속 도전 중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자예술 전람회》(1970, 신문회관) 전경을 16mm 동영상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도 함께 전시하였다. 이는 전자 장치와 현대 음악을 이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전시로 기록되어 있다. 곽훈 작가가 짧은 영상 속 등장하는데, 화면의 리듬과 조명의 움직임이 70년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우 감각적이다. 《곽훈:선험의 전이》는 이런 감각과 실험 정신이 어떻게 그의 화업에 이어져 왔는지 조망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이생강 연구원 ssgg10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