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섬 생태문화프로젝트 《한강 밤섬 관계의 지도》
2025-11-13 ~ 2025-11-25
영등포아트스퀘어


전시장 입구

한강 위에서 늘 보이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섬 밤섬. 《한강 밤섬 관계의 지도》은 이 섬을 둘러싼 시간과 사람, 새와 플라스틱, 도시와 강의 얽힌 관계들을 한 공간에 펼쳐 보이는 시도다. 섬 폭파와 실향, 자연 복원과 람사르 습지 지정으로 이어지는 밤섬의 역사는 이미 서울의 대표적인 “근현대사 풍경”이 되었지만, 이 전시는 그 위에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를 덧그린다. 기록·설치·사운드·영상 작업을 통해 밤섬을 하나의 지형이 아닌 관계를 매개하는 장으로 다시 그려 보려는 것이다.


기획자 최창희와 과거 밤섬 주민 분들

전시 개막행사에서, 밤섬에서 스무 살까지 살았던 한 주민은 섬을 이렇게 기억한다. “양화대교에서 마포, 노량진까지 전부 백사장이었죠. 모래가 뜨거워서 맨발로 걸으면 무좀도 없었고, 땅콩밭이 끝없이 이어졌어요. 전기도 없어서 호롱불 켜고 살았지만,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그의 말처럼 밤섬은 한때 율도라 불리던 사람들의 삶터이자 여름이면 사람들이 몰려오던 휴양지였다. 



1968년 폭파 공사로 62가구 443명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상수역 인근 임시 거주, 창전동으로 이주하면서, 섬은 물 위에 떠 있는 ‘보이지만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럼에도 밤섬 주민들은 매년 정월 초이튿날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사라진 섬의 기억을 다시 불러낸다. 이번 전시에 초대된 그들 증언은, 밤섬을 둘러싼 예술적 상상력의 출발점이자 기준점이 된다.



전시장 초입에는 밤섬에 관한 기억과 기록이 펼쳐진다. 마포공동체라디오 아카이브 존에는 1968년 폭파 당시의 기사, 방송 자료, 주민 인터뷰가 음성과 텍스트로 펼쳐져 관람객을 맞는다. 제목 그대로 “1968 폭파, 그리고 밤섬의 시간”을 되짚는 이 존에서 관람객은 섬이 사라지는 과정과, 두 번의 이주를 겪은 주민들이 어떻게 또 다른 ‘고향 없음’을 안고 살아가야 했는지를 듣게 된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연계한 전시 존에서는 밤섬의 람사르 습지 지정 과정, 조류와 식생 조사, 수위 변화 등의 연구 자료가 다양한 지도와 도표, 모형으로 소개되어, 예술 작업 곁에서 또 다른 방식의 ‘관계의 지도’를 완성한다.


김국화×이병선, 〈F03Bamseom Is. Collecting Traces〉, 2025, 혼합재료, 가변크기

이어지는 것은 작가들의 기획안 전시이다. 참여 작가들은 밤섬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구상한 제안서를 도면, 텍스트, 스케치와 함께 공개했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계획과 미완의 질문들이 하나의 전시물로 제시되면서, 밤섬을 둘러싼 예술 실천을 ‘현재 진행형의 연구’로 보게 만든다. 김국화×이병선의 〈F03Bamseom Is. Collecting Traces〉는 밤섬에서 채힙한 흔적의 냄새와 질감을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설치작업이다. 홍이카는 밤섬의 식물을 주제로 한 기획안 작업을 통해, 지금 이 섬에 뿌리내린 풀과 나무들이 어떻게 폭파 이후의 시간을 증언하는지를 탐색한다.

김순임, River-scape _밤섬〉, 2025, 밤섬에서 채집한 플라스틱과 무명실, 단채널 영상, 가변설치(영상 21분 56초)

전시장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작가들의 상상력이 더 구체화된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김순임의 설치 작업 〈River-scape _밤섬〉은 작가가 9월 말 밤섬에서 직접 채집한 플라스틱 조각을 무명실로 엮어 단채널 영상과 함께 5×7m 크기의 풍경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김순임은 “파라다이스가 해체된 뒤에도 강을 떠돌며 이곳에 쌓여온 플라스틱이야말로 오늘의 도시와 강, 섬을 대변하는 물질”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다시 하나의 빛나는 풍경으로 제시한다. 


성상식 작가의 공연

성상식은 밤섬에서 채집한 환경음과 증언, 강 건너 도시의 소음을 겹겹이 겹쳐 하나의 사운드 스케이프를 구축한다. 관람객은 전시장 한편의 어둑한 공간에서 이 음향을 듣는 동안, 물소리와 새소리, 포크레인의 굉음과 주민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밤의 섬나라”를 통과하게 된다. 

이 외에도 참여 작가들은 사진, 드로잉, 설치, 제안서와 같은 다양한 형식을 통해 밤섬과 맺어온 각자의 관계를 기록한다.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것은 바로 현재형의 증언이다. 오프닝 자리에서 주민은 “밤섬 청소는 매달 했으면 좋겠다”고 거듭 말한다. 작가들의 기획안은 앞으로 밤섬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대하게 한다.


오로민경, 흐름의 진동〉, 2025, 종이, 천, 조명, 빛센서, 스피커 유닛, 가변설치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지만 도심 어디에서나 바라볼 수 있는 섬. 전시장에 펼쳐진 여러 개의 작업과 목소리는 이 복잡한 존재를 한 화면에 고정시키기보다는, 각자 다른 방향의 화살표로 그려놓는다. 관람객 각자가 밤섬과 맺는 새로운 관계, 그리고 한강과 도시, 생태와 개발을 둘러싼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표시해 볼 수 있도록. 그렇게 이 전시는 하나의 답 대신, 밤섬을 중심으로 다시 그려진 우리 시대의 관계의 지도를 조용히 건넨다.


참여작가 | 강신우, 김국화x이병선, 김순임, 성상식, 오로민경, 이다슬, 이인의, 이혜진, 츄리, 홍이카, GUTA(강장원, 고창선, 이태용),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예술감독 | 최창희
주최 및 주관 | 영등포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