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영: Welcome to Joy’s World! Ⅲ Open Studio
2025-10-12 ~ 2025-11-26
이종영 평창동 작업실



아상블라주의 사전적 의미는 “평면적인 회화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기법. 또는, 그렇게 완성된 작품. 일상생활 용품이나 폐품 따위를 조합한 오브제 작품”이다. 하지만 이종영(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1975년 졸업)에게 아상블라주는 버려진 사물들을 조합하는 기법을 넘어, 교사로서·엄마로서·여행자로서 살아낸 시간, 타인의 역사와 상처, 집과 동네의 기억까지 한데 겹쳐 엮어 올리는 ‘삶의 형식’에 더 가깝다.



평창동 산꼭대기 오래된 집이 오늘만큼은 한 사람의 생애와 상상력이 켜켜이 포개진 미술관이 된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교단에 서며 방학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해 온 작가는, 30여 년을 살아온 이 집 구석구석에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만난 풍경, 주워 모은 오브제들을 펼쳐 놓았다. 거실과 옥상, 둘레길과 마당을 따라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크게 세 가지 결로 나뉘어 관객을 맞이한다.



첫째는 ‘조이(Joy)’라 이름 붙인 인형과 함께하는 사진·혼합매체 작업이다. 납작한 인형을 유리창에 테이프로 붙여 하늘을 나는 여자처럼 찍고, 경복궁역의 독도 모형 위에 올려 떠가는 발자국으로 만들며, 해외 여행지 쇼윈도에 비친 풍경 속으로 조이를 밀어 넣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 카페의 벽, 박물관 디스플레이 같은 일상의 배경 위에 작가는 잡지에서 오린 이미지와 드로잉, 포토샵으로 만든 물방울과 물감을 더해 ‘날아갈 듯한 기분’을 시각화한다. 



큰 조이와 작은 조이, 어린 시절의 조이가 번갈아 등장하는 이 연작에서 인형은 자화상이자 분신이다. 남편과 아이들, 교사로서의 자신을 잠시 내려놓고 홀로 날아오르고 싶은 마음, “남자 없어도 되겠다”고 웃어 넘기는 단단한 유머가 인형의 몸을 통해 가볍고도 뭉클하게 되살아난다.



둘째 결은 엉겅퀴와 질경이, 남미와 발칸의 풍경으로 이어지는 식물·여행 연작이다. 교사 시절 매일 새벽 안산을 오르내리며 마주한 거대한 엉겅퀴는,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던” 때 작가에게 필요했던 생명의 상징이었다. 엉겅퀴를 종이 사이에 넣고 프레스로 찍어 으스러진 흔적을 남기거나, 질경이가 춤추듯 흔들리는 모습을 확대해 6미터 길이의 설치로 확장해 생명력의 리듬을 드러낸다. 



한편 방학마다 떠난 여행에서 만난 마추픽추와 티티카카 호수, 갈대를 엮어 만든 섬, 일찍 죽어간 농민 혁명가 콘도르 칸키의 이야기는 캔버스 위 실과 바느질, 여러 번 덧칠한 물감과 검은 선으로 다시 엮인다. 인디오들의 짧은 수명, 소금 호수와 차가운 바람,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가 된다는 믿음이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실선과 새의 형상으로 바뀌며, 개인의 여행기는 식민의 역사와 타인의 삶을 품은 서사적 풍경화로 변모한다.



세 번째 축은 집 안팎에서 주워 모은 폐오브제를 살려낸 조각·설치 작업이다. 차에 여러 번 밟혀 납작해진 캔 커피와 과자 봉지, 깨진 장독과 유리, 공사장에서 떨어져 나온 콘크리트 조각, 고속도로 입구에서 건져 온 돌과 화산석, 손가락 하나가 빠져야 비로소 사람이 되는 장갑까지, 버려진 것들은 작가의 손에서 다시 몸을 얻는다.



레진을 부어 균열 난 유리를 고정하고 그 위에 작은 인형을 얹어 “님은 저 강을 건너고 말았어”라는 상실의 장면을 만들고, 탑처럼 쌓은 돌과 주전자, 페트병에는 설악산 돌탑과 기도원의 기억, 기후 위기를 향한 불편한 마음이 겹쳐진다. 일회용품과 쓰레기가 예술품으로 재탄생하는 순간, 집은 기도처이자 작업실, 그리고 지구의 상처를 더듬는 작은 실험실이 된다.



이렇게 조이의 모험, 식물과 여행의 서사, 폐오브제의 부활이라는 세 갈래의 작업은 모두 이 집이라는 그릇 안에서 만나 서로를 비춘다. 아이들을 키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세계를 돌아보고 다시 이 산동네를 오르내린 세월이 방과 옥상, 담벼락 위에 촘촘히 쌓였다. 관객은 작가가 걸어온 계단과 둘레길을 따라 천천히 집 안을 돌며, 버려진 것들과 작은 인형, 먼 나라의 산과 우리 동네의 풀잎이 한 화면에서 만나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오래 살아온 집에서 시작된 이 전시는 결국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교단에서, 부엌과 옥상에서 주워 올린 것들을 예술로 길어 올린 한 여성 작가의 삶의 모험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