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범 : 찬란한 존재들
2026.2.11-2.23
G&J갤러리
이한범(Han Lee, b.1985)의 캔버스는 무척이나 명쾌하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화면을 꽉 채운 강렬한 윤곽선의 캐릭터들과 두껍게 적힌 영문 텍스트들이다. 하지만 이 직관적인 '팝'함 뒤에는 시카고와 서울을 오가며 쌓아온 미술 이론의 탄탄한 지층이 자리 잡고 있다.

작가의 작업 스타일을 규정하는 강한 윤곽선과 과장된 비례는 그의 성장 배경과 맞닿아 있다. 어린 시절 미국에서 보낸 긴 시간 동안 그는 디즈니나 워너브라더스의 고전 애니메이션을 탐닉했다. 대학에서 정통 데생과 사실주의를 섭렵했음에도 그가 결국 선택한 것은 '가장 잘하고 친숙한' 만화적 화법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차용하는 소재의 스펙트럼이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캐릭터를 굳이 그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 '캐릭터 그 자체보다 시사적인 카툰이나 문화적 원형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의 작품에 십이지신, 선녀 도상, 혹은 멕시코풍의 강렬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러한 고전적 소재에 현대적 숨결을 불어넣어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러한 시각적 구성은 무언가 '웅성거리는' 듯한 청각적 에너지를 동시에 내뿜는다. 이는 작가가 2011년부터 이어온 미술 전문 번역가로서의 감각과도 연결된다. 텍스트의 무게를 아는 그는 그림 속 단어 하나하나를 단순한 디자인 요소가 아닌,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는 '조언'으로 기능하게 한다. 이전 전시에서 작가는 기후 변화, 에너지 위기, 팬데믹 등 우리가 직면한 무거운 주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작업으로 풀어낸 바 있다. 다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 '친절'할 뿐이다. Earth, LIFE, Happiness 등과 같은 단어들은 작품 속 캐릭터의 유니폼이나 깃발 위에 새겨져 관람객에게 직설적으로 말을 건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작업은 또 다른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전보다 자유분방하고 추상화된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Untitled〉은 작가가 개인적으로 잠시 힘들었던 순간에 마주했던 환각적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대상을 재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순수한 형식미와 내면의 스토리에 집중했음을 보여준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의 향후 계획이다. 작가는 최근 다시 '인간의 얼굴'로 회귀했다. 모나리자와 같은 고전의 재해석부터 다양한 인물의 표정까지, 그가 주목하는 것은 결국 '인간성'이다. '사람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 정서적으로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그의 고백은, 화려한 팝아트의 외피를 입은 그의 작업이 결국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화가, 이론가, 번역가라는 여러 층위의 정체성을 가진 이한범. 그는 이제 복잡한 담론 뒤로 숨지 않고, 인물과 텍스트라는 가장 솔직한 도구를 통해 대중과 눈을 맞추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