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회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25》
2026,12,27-2026.3.28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겨울의 끝자락,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전 세계의 상상력이 집결했다. 지난 12월 27일 개막해 오는 3월 28일까지 이어지는 《제59회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25》는 단순히 그림책의 삽화를 나열한 자리가 아니다. 


1964년부터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이어져 온 62년 전통의 세계 최대 규모 아동 도서 축제, 그 심장부에서 길어 올린 가장 뜨겁고 순수한 예술의 현장이다.


전 세계 89개국에서 무려 4,374명의 작가가 도전장을 내밀며 역대 최다 참가 기록을 세웠다. 이 중 심사위원들의 엄격한 안목을 통과한 작가는 단 2%, 29개국 77명뿐이다. 이 바늘구멍 같은 경쟁을 뚫고 이번 전시에 출품된 385점의 원화는 ‘77가지 시선, 일상 속 행복을 물들이다’라는 주제 아래 관람객들에게 말을 건넨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책이라는 물리적 한계에 갇혀 있던 그림들이 생명력을 얻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인쇄물로는 미처 다 담아낼 수 없었던 붓의 세밀한 결, 물감의 입체적인 질감, 그리고 작가의 고뇌가 묻어난 미세한 선들이 원화라는 이름으로 선명하게 다가온다. 특히 2024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자인 시드니 스미스의 도록 표지 원화는 이번 전시의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한국 작가들의 약진도 눈부시다. 선정된 77인 중 이름을 올린 안경미, 이윤소, 오다라, 양효주 등 4인의 작품들은 우리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적 위상을 확인시켜 준다.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서커스 호랑이의 이야기를 담은 양효주 작가의 '야만인'처럼, 작품들은 저마다의 서사를 통해 정체성과 본연의 가치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과거 그림책이 아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면, 오늘날의 그림책은 성인을 위한 가장 직관적이고도 깊은 예술 장르로 거듭나고 있다. 환경, 젠더 감수성, 다문화 등 동시대의 교육적 담론을 담아내면서도, 글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여운을 그림의 여백과 색감으로 채워 넣는다.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볼로냐의 작가들이 건네는 위안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전시장을 나오는 길, 긴 여운을 간직하고 싶어 이번 전시에 참여한 오다라 작가의 그림책『불량감자』(페이퍼독, 2024)를 한 권 샀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곳에서 마주했던 찬란한 상상력의 온기가 다시금 전해질 것만 같다.


아직 찬바람에 움츠러드는 지금, 실내에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이 전시는 창작의 영감을 갈구하는 크리에이터부터 아이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펴고 싶은 가족까지 모두에게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