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유약이 스스로 그리는 낙원, 설숙영의 도자회화
세종대학교 세종뮤지엄갤러리 2관에서 열리고 있는 설숙영 작가의 기획초대전 《Crystal Paradise : 낙원》(2026.6.10-6.21)은 도자와 회화가 만나는 지점을 넘어, 물질이 스스로 이미지를 발생시키는 순간을 보여준다. 전시장에는 ‘Blue Paradise’를 비롯해 ‘Interstellar’, ‘Space’, ‘In the Garden’, ‘Memories’ 등 결정유의 빛과 자연 이미지를 결합한 도자회화 50여 점이 소개된다. 푸른 수국, 물고기, 별, 말, 정원과 같은 형상들은 화면 위에서 장식적 소재에 머물지 않고, 불과 시간, 유약의 흐름이 만든 또 하나의 풍경으로 확장된다.

〈Memories〉(2023) 세부
설숙영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은 그가 본래 한국화, 그중에서도 채색을 공부했다는 사실이다. 대학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고 한국화를 배운 그는 결혼 이후 오랜 공백기를 거쳤고, 1990년대 말 일본 생활 중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는 포슬린 페인팅을 접했다. 그러나 작가는 곧 그 방식이 “예쁘게 그리는” 기술에 머물 수 있다는 한계를 느꼈다고 말한다. 단순한 장식이나 모방이 아니라,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대학원 진학과 도자회화 실험으로 이어졌다.

전시전경
흥미로운 대목은 작가가 대학원 시기에 청화, 곧 코발트 안료를 중심으로 논문을 썼다는 점이다.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청화 기법과 연결해 연구한 그는, 도자 위에 ‘그리는’ 행위가 한국 도자 전통 안에서 충분히 탐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한국화의 채색 감각, 청화의 푸른 색감, 도자 표면에 대한 관심은 이후 결정유 작업의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실제로 그의 화면에서 반복되는 코발트 블루와 청록의 깊이는 단순한 색채 선택이 아니라, 작가의 회화적 출발점과 도자 연구가 중첩된 결과다.

소개영상 스틸컷
작가가 결정유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무렵이다. 일반 안료로는 얻기 어려운 깊이감과 공간감, 층위를 찾던 그는 결정유에서 “우주의 신비를 본 것 같다”고 표현한다. 결정유는 가마 속 온도, 유약의 성분, 냉각 속도에 따라 전혀 다른 무늬를 피워내는 까다로운 재료다. 작가는 유럽 작가들의 데이터를 참고하고, 여러 차례 시행착오 끝에 자신에게 맞는 소성 단계와 유약 운용 방식을 찾아갔다. 작품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20년 이후다. 그러므로 설숙영의 화면은 직관적 감성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반복된 실험과 데이터 축적, 실패의 기록 위에서 형성된 결과라 할 수 있다.

〈Galaxy〉(2023) 세부
그가 말하는 ‘부분 융합’도 주목할 만하다. 결정이 아름답게 피어났더라도 화면 어딘가에 “몇 퍼센트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작가는 자개나 세라믹 조각, 금속성 재료를 더한다. 이는 단순히 장식성을 강화하기 위한 개입이 아니다. 결정유가 만든 자연 발생적 배경 위에 회화적 형상과 공예적 재료를 결합함으로써 화면의 밀도와 감상 경험을 높이는 방식이다. 사진 속 원형 작품처럼 검은 바탕 위로 푸른 결정과 수국 이미지, 자개의 반짝임이 겹쳐질 때, 화면은 밤하늘이자 물속이며 동시에 정원처럼 읽힌다.

〈Interstellar〉(2025)
작가는 앞으로 작업이 점차 추상으로 이동할 것 같다고 말한다. 현재는 말, 수국, 물고기 같은 구체적 형상이 남아 있지만, 그는 이미 형상보다 결정유 자체가 만들어내는 감각과 공간에 더 끌리고 있다. 결정의 피어남, 색의 깊이, 표면의 광택, 우연히 발생하는 층위가 앞으로는 화면의 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 컴퓨터공학자는 그의 작품을 두고 고난도의 ‘디퓨전 프로세스’와 닮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작가가 기본 조건을 만들지만, 최종 이미지는 물질이 스스로 생성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비유다.

전시장에서의 설숙영 작가
《Crystal Paradise : 낙원》은 그래서 단순히 아름다운 도자회화 전시가 아니다. 한국화의 채색 감각, 청화 연구, 포슬린 페인팅의 경험, 결정유 실험, 자개와 금의 부분 융합, 그리고 비구상으로 향하는 현재의 전환점이 한자리에 모인 전시다. 설숙영의 낙원은 완성된 이상향이 아니라, 흙과 불, 유약과 시간이 서로 공명하며 계속 생성되는 세계다. 그 앞에서 관람자는 작가가 통제한 것과 통제할 수 없었던 것이 함께 빚어낸, 조용하지만 강한 빛을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