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를 찾은 길에 제주유리박물관을 방문했다. 제주유리박물관은 서귀포시 상예동 중산간서로 1403에 자리하고 있다. 중문관광단지의 번화한 관광시설에서 조금 벗어나 제주 중산간의 자연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2008년 3월 1일 문을 연 박물관으로, 약 8,000여 평의 부지에 실내 전시장과 넓은 야외정원, 유리공예 작업공간 등이 함께 조성되어 있다.

박물관장은 유리공예가 정문건(鄭文建, 1945~)이다. 정문건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거쳐 영국 Royal College of Art에서 수학했으며, 이후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 현대 유리공예의 정착과 확산에 힘써왔다. 한국 현대 유리미술의 초기 세대를 다룬 연구에서도 그는 1980~2000년대 국내 유리예술의 기반을 형성한 주요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언급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건물 안에 작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라는 일반적인 형식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박물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야외 공간이다. 제주의 돌과 나무, 잔디와 식생 사이로 다양한 유리 작품들이 놓여 있다. 꽃과 버섯, 동물처럼 친숙한 형상에서부터 조형성이 두드러지는 작품들까지, 유리가 자연 속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유리는 빛을 통과시키고 반사하는 재료이기 때문에 실내의 고정된 조명 아래에서 볼 때와 야외의 햇빛 속에서 마주할 때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관람로의 펜스와 주변의 작은 장식까지 유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실내로 들어오면 박물관의 성격이 조금 더 분명해진다. 이곳에는 유리 전시실뿐 아니라 가마 작업실, 브로잉실, 유리 가공실, 강의실 등이 갖춰져 있다. 즉 완성된 결과물을 보여주는 전시장이면서 동시에 실제로 유리를 제작하고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을 함께 갖춘 셈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눈여겨볼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유리 만들기 체험이다. 유리는 우리 주변에서 매일 만나는 재료지만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경험할 기회는 많지 않다. 높은 온도의 가마에서 녹은 유리를 꺼내고, 불고, 돌리고, 형태를 잡아 하나의 물건으로 완성하는 과정은 완성된 유리제품만 보아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제주유리박물관에서는 유리 블로잉을 비롯해 직접 유리공예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유리 꽃병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소개되어 있다. 전문 작업자가 뜨거운 유리를 다루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도움을 받아 직접 형태를 만들어보는 과정은 이곳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큼 중요한 경험처럼 느껴졌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다니다 보면 작품의 내용만큼이나 관심이 가는 것이 ‘왜 하필 이곳에 이런 공간을 만들었을까’ 하는 점이다. 제주유리박물관의 경우에는 그 답 가운데 하나가 부지 자체에 있는 것 같았다. 유리를 건물 안에 가두어 놓는 대신 제주의 햇빛과 숲, 돌과 풀 사이로 꺼내놓았다. 빛의 방향과 시간, 날씨에 따라 유리의 색과 반사가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정원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전시장처럼 작동한다.

그리고 그 전시의 마지막에는 관람객이 직접 유리를 만들어보는 경험이 기다린다. 보는 박물관에서 만드는 박물관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