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3일부터 인천아트플랫폼 전시장1(B)에서 차기율의 개인전 《화해기 和海記》가 개최됐다. 오프닝은 오후 4시, A동에서 진행했으며 이후에는 전시투어가 있었다. 이 전시는 ‘인천미술 올해의 작가’를 선정하여 개인전을 개최하는 인천아트플랫폼의 제도이다. 이는 2023년부터 시행되어 왔으며 중견작가와 청년 작가를 격년으로 선정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지역미술의 담론 확장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번에는 2025년에 ‘인천미술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차기율의 개인전이다. 차기율은 인천대학교 조형예술학부 교수로 후학 양성에 오랜 시간 이바지했다.

차기율 〈고고학적 풍경-불의 만다라 2026〉, 2026, 소성된 갯벌, 철, 70x300x732cm

차기율 작가는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문명이 꽃피우기 이전의 세상을 고고학적 상상력을 통해 고찰해왔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갯벌과 바다, 도시와 장소들을 넘나들었다. 그럴 때마다 작가는 돌이라든가 곤충 유해, 동물 뼈를 수집했다.



전시는 1층에서 시작하여 2층으로 이동한다. 먼저, 1층에서는 작가가 오랫동안 작업해온 〈고고학적 풍경〉 연작과 〈순환의 여행〉을 전시한다. 긴 철판 위에는 작가가 인천 강화의 갯벌에서 채집한 흙을 소성하여 만든 조각들이 늘어져 있다. 그가 놓은 갯벌 조각 하나하나 모두 제각각의 형태와 미묘한 색감 차이를 보인다. 한때 게가 굴을 파고 생활한 흔적인 구멍이 모여 갯벌 생태계의 리듬을 생성하여 ‘만다라(mandala)’를 연상시킨다.

〈고고학적 풍경〉과 드로잉이 전시된 전경.

그 맞은편에는 〈고고학적 풍경〉을 위한 드로잉이 벽을 따라 전시되어 있다.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 사이〉, 2026, 포도나무, 자연석, 흑경, 가변크기. 인천아트플랫폼 제작 지원.

이어서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 사이〉(2026)가 등장한다. 이 또한 〈고고학적 풍경〉처럼 오랫동안 작업해온 주제이다. 이는 생명과 물질의 순환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을 탐색한다. ‘방주’가 들어간 작품이지만 성경 속의 거대한 배의 형태가 아닌 포도나무를 이어서 무언가를 담고 보호하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번 신작은 포도나무를 재료로 한 300kg에 달하는 대형 설치 작품이다.

공간 자체를 부유하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 사이〉의 가지들에는 풍화와 침식, 각 가지가 품은 시간이 따로 내재되어 있다. 아래에는 자연석이 섬처럼 놓여있다. 돌과 어두운 수면, 부유하는 포도나무 방주는 목적지 없는 여정과 광활함을 표상한다.

〈기억상자〉와 〈기억상자2〉 전시전경

이어지는 2층에서는 새로운 주제로 작업한 작품들을 전시된다. 차기율은 ‘예술가로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동시대 세계사적 현상들을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시작했다고 밝힌다. 먼저 보게 되는 〈기억상자〉(2018-2023)와 〈기억상자 2〉(2026) 연작은 작가가 국내외를 이동하며 직접 수집한 사물들을 활용하여 제작했다.

벽면 위에 설치된 〈기억상자〉는 그가 모아온 사물들을 이어 붙여서 만든 오브제 작품이다. 죽은 새 혹은 생명체의 유해를 상자 위에 부착하고, 가지와 돌, 기계 부품들을 함께 접목하여 본래 사물들이 가지고 있던 성격을 기억의 표상으로 재구성한다. 〈기억상자2〉의 경우, 캐비닛 형태로 제작한 목재 가구 안에 그간 보관하던 많은 유해들을 공개한다.

차기율, 〈폐허의 층위〉, 2026, 테라코타, 철, 33x87x36cm.

〈폐허의 층위를 위한 드로잉〉, 2026, 종이에 콩테, 100x70cm*6

이어서 〈폐허의 층위〉(2026)를 볼 수 있다. 그 앞에는 〈폐허의 층위〉를 위한 드로잉이 있다. 테라코타 얼굴상을 관통하는 철제 기둥이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드로잉들이다. 각 드로잉에는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의 문장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작가는 공동체 간의 보호와 발전을 위한 제도를 비롯한 많은 것들이 결국 서로를 파괴하고 억압하는 장치가 된 것을 표현한다. 작가는 인간이 서로에게 휘두르는 폭력을 직접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흔적과 훼손된 몸, 비극을 노출한다. 이러한 ‘현재의 폐허’는 작가가 스스로 질문한 내용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차기율, 〈돌의 초상〉, 2026, 자연석, 철, 종이에 콩테, 가변크기

마지막으로 신작 〈돌의 초상〉은 이름 없는, 쉽게 지나치는 사물인 돌에게 이름이 있는 자들만 가질 수 있는 초상화를 그려줌으로써 그 존재를 다시 재인식 시킨다. 여기서 작가는 과연 이 세상이 단순히 인간이 규정한 규율과 지식, 시간만으로 구성된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 존재하여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들의 시간과 존재감을 초상화를 통해 돌려준다.

끝으로 이 전시는 노기훈 작가가 촬영한 작가 아카이브 영상으로 마무리된다.